소설
[목차: 한여름에 우주]
제1장. 그때 우주
제2장. 우주의 부재
제3장. 우주에 하나
[소개글]
- 이 성장소설은 스냅사진처럼 짧게 찍은 어떤 풍경을 통하여 이야기를 진행한다. 콩트처럼 운영하지만, 내용은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구상하였다.
- 우주로부터 선물 받은 록 음반에 대한 우주의 장광설을 듣는다. 그러나 케첩이 옷에 묻자, 블루의 사장 형을 만나는데 옷이 그렇게 되었다면서 투덜거린다.
♬ 네이팜데스와 메가데스
“야, 김종훈! 왜 똥폼을 잡냐?”
우주는 얼음을 깨물어 먹으면서 콜라컵으로 탁자를 톡톡 두드렸다. 그러고 보니 나는 팔짱을 끼고 우주가 호출기를 바지 주머니에 찔러 넣는 장면을 멍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줘봐, 메가데스.”
“왜?”
“왜긴? 선물했으면 선물 준 사람 앞에서 뜯어봐야 예의 아니야?”
“CD플레이어 안 가져왔어.”
“짜식, 그게 문제였어?”
우주는 자신의 가방에서 CD플레이어를 꺼내 내게 살짝 흔들어 보였다. CD플레이어엔 공포의 네이팜데스가 걸려있었다. 우주는 그걸 들어내며 나를 재촉했다. 나는 마지못해 우주의 선물을 가방에서 꺼내 포장지를 뜯고는 CD곽 통째로 우주에게 건넸다. 우주는 메가데스를 플레이어에 걸고 이어폰 한쪽을 내 오른쪽 귀에 꽂아주었다. 고문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벽에 걸린 시계는 7시 1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불행히도 서너 곡쯤 듣고 움직여도 시간이 충분했다. 우주는 호들갑을 떨며 명곡부터 들려주겠다며 버튼을 눌렀다. 천천히 음악 소리가 커지며 장중한 연주가 흐르기 시작했다.
“「Symphony of Destruction」이라는 곡이야.”
“파괴의 교향곡?”
“응.”
과연 곡명처럼 웅장하게 건물을 짓더니, 곧 그걸 몽둥이와 톱으로 무지막지하게 부수는 것이었다.
“어때?”
우주는 곡이 끝나자 내 반응을 살피고 다음 곡으로 넘어갔다. 그렇게 세곡쯤 넘어가자 우주가 다시 물었다.
“어때? 이 곡이랑 앞 곡들은 완전히 다르지?”
“글쎄. 그래도 네이팜데스에 비하면 완전히 다른 편이네.”
세 곡째 듣고 내가 말했다.
“그렇지. 그렇지. 잘 들어보면 네이팜데스도 좋지만 메가데스가 더 깊이 있으면서 대중적이야.”
대중적? 우주는 분명 ‘대중적’이라고 표현했다. 여기서 ‘대중적’은 대중에게 인기가 있다는 뜻일까, ‘대중의 적’이라는 뜻일까. 솔직히 후자에 표를 던지고 싶었다. 나 같은 대중을 붙잡아서 고문하는 메가데스. 그래도 네이팜데스보다는 곡이 저마다 다르게 들려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메가데스 중에서도 이번 앨범은 가장 다양해서 참을 만했다.
네이팜데스는 생각만 해도 뒷골이 댕긴다. 그들의 1집이라며 우주가 들고 왔던 음반, 어우, 끔찍하다. 우주는 데스메틀밴드라며 내게 듣기를 정중히(?) 강요했다. 꼼짝없이 학교보충수업시간에 우주의 감시 아래 네이팜데스를 들었는데 나에겐 씻을 수 없는 충격이었다. 충격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곡의 시작과 끝을 구별할 수 없었다. 시작과 끝을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곡들이 비슷했다. 말하자면 앨범 자체가 한 곡이었다. CD 표지에 적힌 곡은 분명 여러 곡이었지만 아무리 집중해서 들어도 한 곡이었다.
둘째, 한 곡이긴 한 곡인데 교향곡과는 또 달랐다. 긴 시간 동안 풀어나간다는 점에서 둘은 비슷한 면도 있었지만 교향곡은 지루하더라도 음의 세기, 악기의 수, 선율의 전개 등이 다양해서 자칫 흐름을 놓치면 다른 곡을 듣는 것으로 착각하기 일쑤다. 반면 네이팜데스를 들을 때는 그런 걱정을 붙들어 매도 괜찮다. 가래 끓는 목소리, 늘어지는 리듬, 선율의 부재, 일정한 세기로 지루하게 밀어붙이는 연주, 한정된 악기의 단조로운 음색. 잠깐 딴 생각하다가 들어도 네이팜데스의 곡은 네이팜데스의 곡이었다. 첫 번째 곡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여길 때 이미 몇 곡이 지나간 상태일 테니 긴장하고 살펴라.
셋째, 이런 요상한 곡이라면 건강에 좋다든지 긴장을 풀어준다든지 하는 음악 외적인 순기능이라도 있으면 좋겠지만, 당연히 없는 데다, 오히려 음악 외적인 역기능이 있었다. 네이팜데스는 음악을 듣다가 졸려서 혼절 직전까지 간 나를 자주 깨웠다. 음악에 익숙할 즈음 꼭 순간적으로 박자를 빠르게 하고 더욱 자극적인 쇳소리를 냈기 때문이다. 그렇게 깨면 마치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 심지어 공부도 못하게 가래 끓는 소리로 귓가를 더욱 세차게 긁어댔다. 네이팜데스는 뒷골 당기게 하고 스트레스 쌓이게 했다.
“인제 그만 가야 하지 않을까?”
다섯 번째 곡이 흐르자 인내심이 바닥난 내가 넌지시 우주에게 물었더니,
“한 곡만 더 듣고.”
시간은 7시 30분을 지나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세곡 정도 더 듣고 뛰어서 블루에 가야 할 듯싶었다. 더운 날 영화도 보기 전에 땀으로 몸을 적셔야 하다니……. 생각이 이쯤에 이르자 메가데스의 음악은 짜증스러운 헐떡거림으로 변하고 있었다. 기타독주에 이르자 메가데스의 기타리스트인 마티 프리드먼이 온갖 신경질을 다 부리는 까다로운 성격을 보여주었다.
그러다 절정에서는 마티 프리드먼과 사나운 여인이 서로의 머리채를 붙들고 날카로운 고음을 질러대는 것이다! 팽팽한 긴장감은 독주가 끝나면서 무승부로 끝나는가 싶더니, 앗, 그만 마티 프리드먼이 머리채를 놓쳤다. 여인은 마티의 머리를 앞뒤로 흔들면서 승리를 자축했다. 결과는 여인의 1대0 승리. 마티 프리드먼이 코피를 흘리고 있었다.
“우주인, 네 티셔츠에 케첩.”
우주 티셔츠에서 잔뜩 폼 잡은 모습을 취하고 있던 마티의 코에 살짝 케첩이 묻어있었다.
“이런, 어떻게! 이게 뭐야!”
우주는 호들갑을 떨면서도 케첩이 번지지 않게 케첩 묻은 부위를 팽팽하게 만들었다.
“아무래도 화장실 가서 물 묻혀 닦는 게 나을 거야.”
“응, 그게 나을 듯해.”
마티 프리드먼의 패배로 간신히 음악 듣는 고문이 끝났다. 나는 우주가 화장실에 간 동안 잽싸게 CD플레이어를 우주가방에 챙겨 넣고 CD곽을 내 가방에 집어넣었다. 갈 준비를 마치자 우주가 투덜거리며 걸어 나왔다.
“이게 무슨 꼴이야. 사장오빠가 뭐라 그러겠어.”
우주는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며 물에 젖은 마티 프리드먼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케첩이 엷게 퍼졌지만 자세히 살피지 않고는 잘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우주는 손가락으로 케첩이 있던 자리를 쉴 새 없이 문질러댔다.
“어떡하지? 어떡하지?”
“걱정하지 마. 사장형, 절대 못 봐.”
♬ 칫, 사장오빠, 사장오빠!
우주는 한번 한다고 하면 꼭 하는 성격이라 블루에 가지 말자고 꼬드기는 행위는 처음부터 포기했다. 단지 음악은 듣지 않아도 되는 것만으로도 만족했다. 더구나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지만 블루를 안 가게 된다면 자칫 몇 시간을 꼼짝없이 음악을 들어야 하는 대사태(?)가 발생할 수 있었다. 예술영화가 아무리 지루해도 메탈음악보다는 나았다. 영화를 보면서 잠시 졸 수 있는 반면, 메탈음악을 들으면서는 그럴 수 없었기 때문이다.
우주와 나는 서둘러 버거킹을 빠져나와 걸음을 재촉했다. 걸으면서도 우주는 여전히 옷에 신경이 쓰이는 모양이었다. 그녀는 자꾸 마티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야, 기타리스트 얼굴 다 닳겠다. 그만 좀 만져. 이제 나한테도 안 보여.”
“그래도……. 혹시.”
“사장형 절대 못 봐. 그나저나 아까 너, 엄마한테 연락 왔잖아? 연락해야지?”
“응. 해야지.”
우주는 동요하지 않았다. 벌써 4개월이 지났다. 그 뒤로 우주는 표정에서 지중해 한 끝자락도 보여주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그뿐만이 아니다. 우주가 술을 마시고 부모님이 이혼한다고 말한 이후로 그녀는 그들과 그녀의 변화된 삶에 대해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다. 독한 건지 강한 건지 몰랐지만 그녀는 분명 어두운 면을 남에게 드러내지 않으려 했다. 바다를 모두 숨겨버릴 정도의 침착함. 어쩌면 그런 침착한 자기관리가 그녀의 뛰어난 성적으로 이어졌을 것이라고 나름대로 결론 내려 보곤 했다. 집에서 엄마에게 대든 일이 뭐 잘났다고 죄다 친구들에게 말하고 투덜거리고는, 곧 후회하는 나와는 달랐다.
그녀는 블루를 가기 위해 길을 꺾어야 할 때 길과 길이 교차하는 지점에 놓인 공중전화박스에 들어가 문을 꼭 닫았다. 나는 우주와 불과 30센티미터의 거리 안에 있었지만 어쩐지 그녀에게서 차단당한 기분으로 서 있었다. 수화기를 들고 뭔가를 말하면서 나를 흘끔거리자 나는 멀찌감치 떨어졌다. 그녀의 얼굴에 잠시 미소가 어렸다가 이내 침착해지더니 어두워지기도 했다. 마티의 얼굴이 다시 젖어버린 듯했다. 케첩 피도 찔끔 보일 것 같았다. 우주한테는 비밀이지만.
우주가 공중전화박스에서 나왔을 때 그녀는 버거킹의 에어컨 바람에 날려버렸던 땀방울을 다시 얼굴에 달고 있었다. 우리는 별말 하지 않고 골목길을 올라가 블루로 향했다. 자주 오르던 길이지만, 오늘따라 경사가 더 급하게 느껴졌다. 이를 축하하는지 어디선가 매미 소리가 울렸다.
“뛸까?”
우주가 갑자기 말했다.
“응.”
나는 거절할 수 없었다. 더웠지만, 더워서 온몸이 땀으로 축축했지만 오르막을 뛰었다.
“몇 시야?”
“7시 51분.”
동시에 숨을 헐떡이며 우주가 묻고 나는 답했다.
“왜? 담배 피울 시간 있나 해서?”
“아니! 사장오빠도 있는데. 혼나지. 그냥 혹시 상영시간에 늦었나 해서.”
‘칫. 사장오빠, 사장오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