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글 & 칼럼
[목차: 저작권 태양계와 원시블랙홀]
◑ Part1. 지식재산권, 무형자산의 사유재산화
◑ Part2. 저작권 태양계와 원시블랙홀
♬ 저작권에도 기만적인 요소가 있다 ~#3
♬ 어째서 지식재산권 중 저작권인가?
♬ 저작권 태양계
♬ 태양계 너머 원시 블랙홀, 탈저작권
♬ 탈저작권과 카피레프트에 관한 주석
♬ 카피레프트여, 수면 위로 드러나라
♬ 태양계가 속한 우리은하, 문화향유권
♬ 문화적 다양성을 보호해야 할 의무
◑ Part3. 몽상, 예술민주사회주의
- Part2에서는 지식재산권 중 저작권의 사례로 범위를 좁히려 한다. 그랬을 때 지식재산권에 본질적으로 내포된 기만적 요소가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선명하게 드러난다고 판단했다.
- 저작권의 기만적 유형 중 첫 번째 유형은 예술가의 창의적 노동에 대한 경제적 보상이 사실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 저작권에도 기만적인 요소가 있다
지금까지 Part1에서는 지식재산권을 오용했을 때를 다루었다. 기업과 소비자가 잘못된 의지를 과도하게 드러냈을 때, 으레 그렇듯 태생적인 시스템에 있던 균열이 더욱 심화되었다.
물론 그것은 기업의 의지와 상황의 변화에 따라 쉽게 틀어질 수 있는 지점이다. 모든 시스템은 근원적 균열을 내포하고 있다. 완벽한 시스템은 없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그리고 때때로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그 균열을 포착하고 변질하는 방향으로 흐르곤 한다.
그것을 심화하는 존재들, 그 균열 덕분에 공정한 규칙을 맞추는 모양새를 띠면서 당당하게 승리한 것으로 미화되는 부류, 그렇게 기득권으로 올라서는 사람들에게 그 체제를 수리할 책임이 있다.
다만 여기서는 잘잘못을 따지려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정확히 분석해 보려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 틈새의 균열이 어떤 식으로 벌어지는지 예상해야, 대비도 가능해진다. 즉 지식재산권을 활용하는 주체뿐 아니라, 지식재산권 자체에도 근원적인 모순이나 한계는 없을까?
Part1에서는 지식재산권을 잘못 이용했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를 살펴보았다. 저작권의 본질을 오용하여 활용하는 것은 개선하면 된다. 그것은 단지 역작용이지 저작권 개념의 본질 안에서 움튼 독소는 아니다. 어렵지만, 극복이 불가능한 건 아니다.
그런데 애초에 지식재산권에 그런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요인이 있다면 반드시 그 문제를 대면해야 한다. 완벽한 해결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그러나 어차피 걱정할 필요는 없다. 불가능한 것이든 어려운 것이든 대개는 잘 해결되지 않은 채 혼란한 문제로 드러나기 마련이니.
그 순간에 최선을 다할 뿐이다. 문제의 최소화를 위해.
즉 지식재산권을 잘 못 다루어서 문제가 발생하기도 하지만, 애초에 지식재산권 자체에 내포된 문제 때문에 암처럼 재발하는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지하며, 이 지점에서 출발해보자.
그리고 Part2에서는 지식재산권 중 저작권의 사례로 범위를 좁히려 한다. 그랬을 때 지식재산권에 본질적으로 내포된 기만적 요소가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선명하게 드러난다고 판단했다.
“세 가지나 있다고? 그러다 사가지 없다고 욕 먹을 텐데…. 저작권을 틀렸다고 하자니, 꼭 도둑의 논리를 합리화하는 것 같아 부담스럽죠.”
잠깐만 말을 뱅뱅 돌리자. 사실 이 글을 쓰기로 마음먹은 것은 가난한 저작권자들에 관한 뉴스를 읽은 후였다. 저작권이 사실상 무용한 경우도 있었다. 한국의 재즈맨들이 힘겹게 사는 모습을 보면서, 또 수많은 인디 음악가들이 녹록지 않은 경제적 문제에 봉착하기도 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 저작권이라는 게 정말 유의미한지 궁금증이 일었다. 이 지점을 말하기 위해 지식재산권을 말했다고 하는 편이 맞다. 원래 좁히기로 되어 있었다.
더 나아가 저작권 이외의 논리는 불가능한 것인지, 그러한 논리를 적용한다면 어떤 모습을 떠올릴 수 있는지 조금은 공격적으로 몽상해 보려고 한다. 없는 이야기로 나아가려면 현재 논의하는 지점을 좁히는 것이 좋다. 그 지점에서만이라도 제대로 몽상하기 위해서.
물론 이 외에도 저작권이 유독 기만적 특수성을 보인다고 판단했다. 이는 본문에서 서술하려고 한다. 이때 다른 지식재산권에선 그런 기만성이 없는지, 또 어째서 유독 저작권에서 기만적 특수성이 두드러지는지 언급할 것이다. 그래야 저작권이라는 지점으로 좁히는 선택이 정당화되기 때문이다. 우선 저작권의 기만적 유형 3가지를 살펴보자.
저작권의 기만적 유형 중 첫 번째 유형은 예술가의 창의적 노동에 대한 경제적 보상이 사실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물론 인기를 끄는 저작권자들에게는 막대한 경제적 보상이 있다. 그런데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에게 이러한 혜택이 충분히 돌아간다고 보기는 어렵다.
즉 저작권이 다양한 예술과 비인기 예술가에게 항상 우호적으로 작동하지는 않는다. 비평을 통하여 자존감을 세우는 방식으로 대응하기는 하지만, 시장에서 적응하지 못하는 실험적인 예술과 순수 예술은 점점 대중에게 박한 평가를 받기 마련이다. 그나마 클래식처럼 고전으로 인정받는다면 국가적 지원을 받겠지만, 그러지도 않은 장르라면 그마저 여의치 않다. 문화의 다양성에 기여하지만, 시장에서 철저하게 패배하여 저작권으로 현실적 수익을 올리기 어렵다.
저작권은 사실 인기와 판매량으로 증명한 시장 친화적인 창작 집단에만 우호적이다. 20세기부터는 이게 자본의 흐름 속에서 워낙 잘 작동한 편이라 저작권 갑부가 탄생한다. 갑부가 된 예술가는 섬을 사기도 하지만, 어떤 예술가는 충분히 좋은 예술을 창작하고도 방구석에서 굶어 죽는다. 저작권 경쟁에서 반드시 대중의 선택에서 소외되어 사실상 저작권이 있으나 마나 한 상황에 처한 저작권 누락자들이 반드시 생긴다.
모두의 선택을 받을 수 있다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더없이 좋겠지만, 실제로는 그러기 어렵다. 저작권은 모든 다양한 예술가의 창작 의욕을 고취한다기보다는 시장에서 인기 있는 몇몇 콘텐츠를 산업적으로 보호하는 데에 더 요긴하게 쓰인다. 팔리는 콘텐츠를 더 집중적으로 생산한다.
반면 창의성과 문화가 관련될 때 저작권은 사실 많은 창작자들에겐 유명무실에 가까운 권한이 되기도 한다. 생계를 유지하기에는 터무니없는 돈을 받아야 해서, 사실 다른 일을 주업으로 삼아야 할 때가 많다. 한 인디 가수가 스트리밍 업체에서 일정 저작권료 이상이 발생하지 않아서 사이버 머니로 지급받은 것을 자조하는 노래를 만든 적이 있다. 그 가수는 오래지 않아 생활고에 시달리다가 지병으로 별세했다. 유사한 사례는 제법 있다.
그리고 범위를 세계로 확장하면, 색다른 국면도 눈에 띈다. 사실상 자본주의에 적응하는 콘텐츠에 유리하게 설계된 것이 저작권이라 보았는데, 특허권이나 저작권 등을 행사할 만한 주체는 서구권의 기업이나 아티스트일 때가 많다. 결국 자본주의를 설계하고 주도하는 기득권이 대개는 서구 중심으로 구성된다. 실제로 이 권리는 서구 친화적이라는 의미다. 정확히는 서구 중심의 자본주의자들에게 유리하다.
인기 있는 콘텐츠를 획득할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그들로서는 지식재산권 관련 윤리를 유지하는 쪽이 결과적으로 패권을 유지하는 데에 유리하다. 설령 의도하지 않았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