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글 & 칼럼
[목차: 저작권 태양계와 원시블랙홀]
◑ Part1. 지식재산권, 무형자산의 사유재산화
◑ Part2. 저작권 태양계와 원시블랙홀
♬ 저작권에도 기만적인 요소가 있다 ~#3
♬ 어째서 지식재산권 중 저작권인가?
♬ 저작권 태양계
♬ 태양계 너머 원시 블랙홀, 탈저작권
♬ 탈저작권과 카피레프트에 관한 주석
♬ 카피레프트여, 수면 위로 드러나라
♬ 태양계가 속한 우리은하, 문화향유권
♬ 문화적 다양성을 보호해야 할 의무
◑ Part3. 몽상, 예술민주사회주의
- 저작권의 기만적 유형 중 두 번째 유형으로는 저작권의 핵심이 사실상 재산권이라는 점이다.
- 저작권의 기만적 유형 중 세 번째 유형으로는 저작권 갑부를 들 수 있다. 단적으로 저작권 경쟁에서 승리하여 탄생한 저작권 갑부 자체가 저작권의 기만적 한계를 보여준다.
물론 한국의 K팝, 또는 디즈니 <겨울왕국>에 표절 소송을 걸었던 페루 여성의 사례처럼 예외도 있지만, 오히려 이 때문에 후발 주자들도 공정한 게임을 기대하며 저작권 윤리에 찬성한다. 만일 애초에 불균형이 견고하다는 것이 노골적이었다면 그들로서는 그 논리를 쉽사리 수용하지 못했을 것이다. 결국 모든 지역의 기업과 아티스트에게 희망을 주기에 보편적인 명분도 얻지만, 실익에 관련된 열매는 미국이나 유럽권으로 귀속하는 경우가 많다.
왜 엑스트라가 된 거 같지?
“한때 저작권 윤리를 강조했죠. 그건 맞는 말이애요. 누군가 땀 흘린 노력을 쉽사리 가로채는 행위는 파렴치해요. 그러나 그 윤리를 지나치게 강조할 때 그 배경에는 우연히도 가장 혜택을 입을 존재들은 대개 서구에 편재되어 있어요. 윤리의 개발을 통해 명분을 강화하였지만, 대개 윤리는 당대의 이해 관계와도 긴밀히 맞물려 있을 때가 많죠. 그것을 구별하여 인간이라면 절대적으로 지켜야 할 기본만을 추출하는 노력도 필요해요.”
“윤리란 말이 온전히 허상도 아니지만, 윤리적 지침이 절대적으로 순수하다고 온전히 믿을 필요도 없죠. 이것을 세계 패권의 관점으로 전환하여 보자면 ‘지식재산권이 패권을 쥔 서구에 이익이 되는가 아닌가’ 하는 것에 따라 지식재산권 윤리와 관행은 달라질 수 있어요. 만일 그것을 보호하는 것이 세계를 주도하는 기득권 국가나 기업에 그리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다른 방향으로 선회할 개연성은 언제든 있다는 거죠.”
저작권의 기만적 유형 중 두 번째 유형으로는 저작권의 핵심이 사실상 재산권이라는 점이다. 지식재산권에 속한다는 점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결국 무형자산을 사유재산화하는 것의 대표적 권리이니 당연한 일이다. 또 그 때문에 저작권이 반드시 저작권자에게 영구적으로 귀속되지는 않는다.
저작권은 그 본질상 저작재산권의 성격을 명확히 하여 사고 팔 수 있다. 결국 인기 콘텐츠의 경우 기업에서 막대한 비용을 들여 저작권을 사들이곤 한다. 개인이 남의 저작권을 사들이는 경우는 드물다. 남의 저작권을 사야 한다면 그만큼 큰 수익을 예상하기 때문이고 그만큼 막대한 인수 비용이 책정되기 때문이다. 거래를 통해 미래 가치까지 현재 시점에 실현한다면 그건 저작권자의 선택이니, 이 자체를 나쁘다고 할 순 없다.
그런데 시장의 우위를 점하는 갑인 기업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러다 보니 기업이 의지를 지니고 시장을 왜곡하려고 할 때 저작권자는 자신의 무형자산인 사유재산을 부당하게 기업에게 양도해야 하는 상황에 처할 수 있다.
그들은 불공정한 방식으로 저작권자를 착취하기도 한다.
앞서 Part1에서도 언급했듯이 만화가가 부당한 계약으로 2차 저작권 문제로 죽음을 택했다. 한 그림책 작가는 자신의 캐릭터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했고, 결국은 되찾지 못했다. 넷플릭스의 불공정 계약 논란을 보거나 영화계에서 투자하는 자본가가 창작자보다 저작권 귀속 문제에서 우위에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저작권도 자본의 우위를 보여주는 방향을 흘러간다고 볼 수 있다.
모두 재산권이라는 개념을 실질적 핵심으로 두고 있기에 발생하는 문제다. 거래가 가능하다는 것.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시장 환경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지만, 재산권을 이동할 수 있다는 특성 때문에 기업은 더 많은 재산권을 확보하려는 방향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다. 아무리 정화해도 그 원칙을 무시하고는 자본주의 시장이 존재하기 어렵다.
때때로 그게 뒤틀린 왜곡된 환경 속에선 올바르게 창작자를 보호해 주지 못한다는 걸 뜻한다. 점점 시장 상황이 나빠지고 기업 우위의 시장으로 흐른다면, 언제든 심각해질 수 있다. 이익을 추구해야 할 기업의 의지가 워낙 강해서, 당장의 문제를 바로잡아도, 지속적으로 뒤틀릴 개연성이 있다. 기업은 이익 극대화를 위해 착취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해서, 약자의 저작권을 갑질로 포획하려는 욕망에 시달린다. 재산권 영역이기에 본질적으로 근절하기 어렵다.
단순히 저작권의 본질을 왜곡해서 벌어지는 일이라기보다는 저작권의 특성을 그대로 살릴 때 드러나는 왜곡이라는 점에서 저작권이 지닌 근원적 한계에 속한다. 본질을 왜곡한 게 아니라, 저작권의 본질 때문에 생긴 일이라, 마치 인간의 탐욕을 조절하며 살아야 하듯이, 그 본질 때문에 부정적 상황이 심화되지 않도록 조절해야 한다.
“여전히 기업과 기득권은 자본주의의 팽창을 포기하지 않았으니까요. 뭐라도 돈이 될 만한 구석이 있다면 기득권 친화적인 논리를 개발해 낼 수 있죠.
그러한 상황을 막을 수 있더라도 하나는 확실해요. 자본이 개인 저작권자보다 우위라는 것이요. 창작 의욕을 고취해 문화적 가능성을 끌어 올린다기보다는, 자본주의의 가능성을 더 넓히려는 것이었죠. 기득권 입장에서는요.”
저작권의 기만적 유형 중 세 번째 유형으로는 저작권 갑부를 들 수 있다. 단적으로 저작권 경쟁에서 승리하여 탄생한 저작권 갑부 자체가 저작권의 기만적 한계를 보여준다. 그들을 통해 창의적 노동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만큼 상대적으로 일반 노동은 저평가받는다. 실제로는 일반 노동자의 기여를 통하여 자본주의가 유지되는 것이지만, 기득권 세력으로선 그들이 반등할 수 있는 기회, 신분 상승의 기회로 창의적 노동의 가치를 제시함으로써, 희망 고문을 한다.
나 아직 죽지 않았어. 난 할 수 있어.
“실로 어마어마하네요. 그냥 차원이 다르네요.”
심지어 같은 시간을 일해도 이 정도로 차이가 나야 하는가 싶을 만큼, 성공한 창의적 노동으로 벌어들인 보상 규모는 일반 노동의 그것과 비교할 수 없다. 창의적 노동으로 저작물을 창작했을 경우, 사후에도 70년 동안 보장받는다. 사후 보장 그 자체는 찬성하지만, 창의적 노동이 과연 일반 노동에 비해 압도적인 수준 차를 보일 만큼 가치 있는지 의심이 든다.
“다음엔 저 별을 사다가 당신께 바치는 것이 목표라오.”
그 차이가 과하다는 것을 증명할 순 없지만, 적어도 저작권 갑부란 명징한 존재 때문에 일반 노동을 우리 스스로 쉽게 저평가한다는 점은 말할 수 있다. 또 경쟁에 패배하여 창의적 노동을 하지 못하는 채로 저부가가치의 노동을 하면서 양극화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점도 무의식적으로 합의하게 한다. 체제 친화적인 가치의 내면화다.
“이 많은 별 중 나 하나쯤 인연 닿을 별 하나 없겠소? 아, 아, 그러고 보니 서울에도 집 하나 없소만. 그도 역시 내가 못난 탓이오. 유행 따라 그들을 흉내 내려 해보았건만 역부족이오.”
“그래서 체제의 규칙을 내면화하죠. 한 번도 패배한 적 없는 것 같은 강고한 체제, 그런 체제의 순응자가 되려는 무의식적 노력을 하는 시점이 있는 것 같아요. 노동자가 노동자를 지지하지 않고 오히려 기득권층의 논리를 내재한 채 행동하고 선택하는 게 그런 이유가 아닐까 제 마음대로 생각해 본 적이 있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