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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원이 May 25. 2024

한국어로 학술 문장을 쓰는 게 어려워요 #4

서술절, ‘~은/는’ 보조사 특징 & 피동 능동 관계성

4) 서술절: 주어가 서술어보다 많은 특징
5) ‘~은/는’ 보조사 특징,
  - ‘목적어와 주어 등을 한 문장에서 동시에 겸할 수 있는 성분 중첩’ 특징
  - ‘목적어인지 주어인지 혼동되는’ 특징
6) 능동형과 피동형으로 써도 둘 다 맞는 것 같은 주술 관계의 특징(김치가 숙성하다/김치가 숙성되다)
  - 능동형을 가급적 권장 받다 보니 숨겨진 주어 성분을 고려해야 함
  - 피동형으로 두느냐, 능동형으로 두느냐 하는 것에 따라 ‘은/는’의 역할이 달라지면서 성분 중첩 특징이 꼬임. 즉 한 문장에서 ‘은/는’의 성분 중첩이 있다면 문장을 쪼개주어야 함. 압축된 문장을 쓰기는 어렵다.     


서술절은 많은 언급을 했다. 특히, 주어가 서술어보다 많은 특징 때문에 어려운 문장에서는 까다로운 개념의 주어가 어디와 호응하는지 헷갈린다. 문장이 길어지고 관형절로 정보가 가득 끼어들고, 숨겨진 주어와 함께 서술어가 피동으로도 능동으로도 자연스러울 때 갑자기 고심은 깊어진다. 그런데 여기에 알고 보니, 해당 주어가 서술절은 안은문장의 주어라고 하면 일반적인 서술어가 아니라 ‘의자는 다리가 네 개다’에서 ‘다리가 네 개다’라는 문장을 서술어 역할로 찾아야 한다. 어려운 단어로 구성된 만연체의 관형절 낀 문장에서 그 옥석을 가려내는 노력을 논문 내내 힘주어 살펴야 하는 셈이다.

그러다 보니 어떤 면에서 “우리나라는 그런 특징이 있다”라는 서술절 안은문장 구조보다는 차라리 “우리나라는 그런 특징을 가진다”라고 고치게 된다. ‘가진다’라는 특징을 가질 수 없는 동사라 해도 그렇게 써버린다. 그러면 정확하게 주술이 정통적인 방식으로 꽉 맞물리기 때문이다. 심지어 때로는 관념적 개념의 의인화된 주어라 해도 허용하기 마련이다. 개념의 향연인 학술 문장에서 주술로 꽉 맞물리고 피동이냐 능동이냐 하는 것으로 주체와 행위의 관계성을 명료하게 하려고 할 때 나름대로 실용적인 면이 있는 셈이다.

이는 어쩌면 서술절이라는 특징을 보이는 우리 문장이 지니는 까다로움인데, 이건 아무리 문장을 잘 다루어도 쉽사리 명쾌한 문장을 제시하기는 어려운 지점이라 하겠다. 처음부터 문장을 잘 쓰려 해도 꼭 한 번은 더 짚어야 할 지점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런가 하면 서술절을 안은문장에서 주로 보이는 ‘은/는’ 보조사, 화제어이기 때문에 목적어였다가 도치되어 전치되는 경우 주로 붙는 ‘은/는’ 보조사 등등 우리 문장에는 보조사의 역할이 커서 문제가 된다. 단순히 ‘을/를’로 대체해보고 ‘이/가’로 대체해서 정확한 성분을 판별하는 정도라면 괜찮겠지만, 실제로 ‘은/는’은 조금 더 복잡하게 움직인다.           


※ 변화무쌍한 보조사 ‘~은/는’ 잘 쓰면 좋지만, 때로는 쉽지 않다

펄라이트는 무게가 가벼워 취급이 용이하고 / 많은 양의 수분을 흡수시켜 이용할 수 있으며, 수분흡수력이 뛰어나다.       


위 참고 글에서 ‘펄라이트는’는 하나의 성분이 아니라 서술절 안은문장의 주어이면서, 일반 문장의 주어이고, 동시에 (생략된 주어와의 관계 속에서) 목적어일 때도 있다.  

이런 문장이 잘 배치된다면 효율적인 면이 있지만, 학술문장처럼 어려운 내용을 정교하게 다루어야 할 때는 (여러 유형의) 주어이자 목적어로 기능한다면 그 하나를 규정하는 것에도 애를 먹는다. 만일 그런 중첩된 관계를 지속적으로 나열해놓았다면 그야말로 가독성 지옥이 된다. 피동과 능동의 서술어로 주체를 정교하게 규정하려는 분야라면 더더욱 미묘한 내용을 표현하는 데에 한계가 생긴다.      



마지막으로, 능동과 피동 역시 둘 다 자연스러울 때가 제법 많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김치가 숙성하다 / 김치가 숙성되다     


라고 하면 둘 다 어색하지 않다. 이는 사동형으로 전환할 때도 ‘김치를 숙성시키다 / 김치를 숙성하다’ 모두 가능하다는 의미다. 이런 상황에서 앞선 가독성 저해 요인들이 맞물리면 이것도 되고 저것도 자연스러운 것 같은 혼란에 빠진다. 이 역시 피동과 능동이 모호하게 처리되는 우리 언어의 특징 때문에 생기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의인화 주어를 암묵적으로 허용하는 경우에는 어떨까?     


과학은 우리의 삶에서 검증된다.       


일단 학술 문장에서 자주 보이는 피동 유형으로 보자.  

이를 가급적 능동형으로 바꾼다면 관념적 개념의 주어를 치우지 않는 이상 그것이 능동적으로 어떤 서술적 행위를 하는 것처럼 보이게 된다. 이를 우리 식대로 이상하지 않게 바꾸려 한다면 ‘(과학자는) 우리의 삶에서 과학을 검증한다’라고 해야 한다. ‘정부에서 (담당자가) 10개년 경제개발계획을 발표한다’라고 생략된 주어를 호출해야 한다. 그런데 이게 또 문장을 무겁게 한다. 다행히 ‘정부에서’는 스스로 주어로 인정받게 되면서, 이러한 빈도를 줄일 수 있었다.

그래도 능동형의 주체는 대개 사람 등일 가능성이 높아서 개념화된 관념적 주어 대신 숨어서 서술어의 능동적 주체가 되곤 한다. 피동으로 두면 안정적인데, 서술어를 능동으로 전환하면서 ‘은/는’의 보조사라면 그 성분이 달라져버리기도 한다. 영어의 수동형과 능동형에서 그렇듯이 위 문장에서 ‘과학은’에서 ‘은/는’은 주격조사 역할을 병행하다가, ‘검증한다’로 바뀌는 순간 숨겨진 주어(과학자가)의 존재감이 커지고, ‘은/는’은 갑자기 목적어 역할을 병행한다. 위치도 바뀌지 않고도 가능하다(과학은 우리의 삶에서 검증한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듯한데 주객 관계성의 심대한 변화가 생겼는데 단지 ‘검증된다’가 ‘검증한다’로 바뀜으로써, 학술문장에서는 큰 요동이 눈에 보이지 않게 친 셈이다.

차라리 아예 영어의 수동 문장처럼 바깥으로 ‘by by’ 해준다면 좋은데, 그건 학술문장에서 어쩔 수 없이 허용하는 것으로, 일반적으로는 그렇게 쓰지 않는 것을 권장한다. 결국 주술 등의 정확한 관계성 연결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국어 문장은 종종 어정쩡한 상태로 남는다. 

차라리 못맞춤법 놀이를 해서, 학술문장뿐 아니라 일상어에서도 피동의 적극적 위상 변화를 고려하면 좋을 듯하다. 아니면 학술문장에서만큼은 묵인하는 것이 아니라, 공식화하는 것은 어떨까. 



           


※ 사동형은 문법적으로 모호해지고, 느슨해지고, 까다롭더라도 문장의 가독성을 저해하는 요인까지는 아닌 듯하다. 그냥 헷갈리면 사동형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쓰면 의미가 통하는 데에는 큰 무리가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AI는 능동적 주체인가 도구인가’ 묻는 것이나, ‘~하게 하다’로 해야 하나 ‘~시키다’인가 하는 미묘한 사동 설정 문제 역시 다른 언어권에도 있을 만한 보편적인 인식 문제일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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