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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원이 10시간전

을의 미소와 말

콜라주 & 빌드업

※ 콜라주 재료
[삼행시]꽃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꽃을 이야기했다
[삼행시]억눌린 감정과 말하지 않은 기억
[삼행시]눌변과 침묵으로
[삼행시]여자는 농부였다





꽃잎의 향기 같다는 ‘을’의 미소를 지었다. 낮에는 열심히 일했다. 아침부터 지루하고 빠듯한 일정을 소화하다 보면 눈이 자주 충혈 됐다.

삶은 견디는 거라며 은밀하게 가라앉은 감정의 찌꺼기를 모른 척하다, 어느 날 문득 꽃가루 알레르기처럼 감정이 소용돌이치며 올라왔다. 그립다는 감정을 여태껏 의지로 잠재울 수 있었다고 말하던 때에도, 언제든 복병처럼 도사리는 감정의 기복을 온전히 통제할 순 없었다.

‘에이취!’

재채기를 하기 시작하면 한 번에 끝나는 일은 드물었다. 콧물이 흐르면 휴지로 닦았다. 온 몸을 들썩이며 다시 재채기를 하면서, 주위 눈치를 보았다. 앗수르의 맹렬한 대군처럼 내 몸에서 빠져나갔으며, 연이어 다리우스 황제의 정복군처럼 가슴을 치는 그 무언가로 잠시 얼얼했다. 유별나지 않은 마음과 달리 몸이 유별남을 들킨 것 같은 기분으로 부끄러워졌다. 피동형처럼 떨어지는 눈물을 재빨리 훔쳤다.

사장님께서는 낭만에 대하여 말하는데, 그런 추억은 하품 나올 에피소드에 불과했다. 어째서 연애를 안 하냐는데, 엄마에게도 듣지 않는 잔소리를 사장에게 듣는다. 그렇다고 그걸 온전히 말하기는 어려웠다. 그랬다가는 파국의 래디컬한 신념으로 낙인찍힐 게 뻔했다. 어찌할 수 없는 감정의 고립을 감당하였다.

억지로 말을 짜내기보다는 눌변인 것이 나았다. 린스로 윤기를 낸 머리처럼 감각이 좋은 말로 벼린 정서적인 표현을 잘 선택한 덕분에, 하여튼 완벽한 균형감 지닌 말을 한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애초에 자신이 없다면 말을 하지 않는 편이 낫다. 그 편이 때때로 타인에게도 은혜롭다. 괜히 기탄없이 말하려다가 실수로 억 소리 날 비밀을 누설할 염려도 적다. 말실수를 한 것인지 계속적으로 복기해보는 부담도 덜하다. 실수를 하고 나면 찜찜했다.

“엇! 뭐여 이거?”

예상치 못한 날카로운 반응에 대해 남자들은 당황했다. 울 애기보다 못한 담력을 가지고 이때는 어찌 당당하게 사내임을 드러내던지 지루한 자들은 원래 목소리라도 크게 내려는 법이다. 만사에 자랑할 수 있는 것이라곤 자기 덩치밖에 없었다.

그때부터 여자의 별명은 ‘엇 나가면 안 된다’였다. 정확히 하자면 그녀의 별명은 ‘엇’이었던 셈이다. 엇나감이 생기면 마을에 나쁜 일이 생긴다는 농담이었으므로, 여전히 여자를 농담으로 기억하였지만, 농담이 아니기도 했다. 겨자를 입에 문 것처럼 쉽사리 눈물이 잔뜩 고이는 걸 미리 알았더라면 아무도 귀담아 들어주진 않았을 것이다.

들판을 누비던 은색 갈기 휘날리는 백마가 꽃밭을 지날 때 을지문덕 같은 소녀가 힘차게 날아올라 ‘이빠이’ 우렁차게

‘으리야앗!’

이라며 말에게 ‘을이야’라고 주지시켜 주었다. 어쩌면 그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였다. 그러자 말은, 여자는 기막히게 빠른 속도로 질주하였고, 햇살이 느껴졌다. 그렇다. 그런 순간을 상상한 적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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