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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원이 Jul 31. 2024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를 떠올리며

삼행시 & 콜라주

※ 콜라주 재료
[삼행시]빛이 탁 트인 공중을 날아가 바다에 꽂혔다
[삼행시]청운의 꿈과 뜬구름
[삼행시]꽃불 번지는 밤하늘에 수놓인





빛이 탁 트인 공중을 날아가 바다에 꽂혔다. 바다를 내보이던 PC의 바탕화면이 어둠속으로 묻히고, 꺼진다. 꺼진 화면으로 내가 보인다. 괜찮다. 육지에 부딪혀 부서졌을 빛이 수면을 뚫고 약간의 굴절을 견디면 될 테니, 공들인 삶을 간신히 유지하며 울적한 마음마저 모두 뒤로 물리고, 일단 집으로 수면을 취하러 가자.

버스를 타고는 터지는 눈물을 닦으며, 도시의 풍경을 기억하며 집으로 돌아올 것이다. 여의도에서는 불꽃놀이가 한창이었다. 벚꽃은 흐드러지고, 꽃불은 공중으로 피어올랐을 때 여의도 근처를 지났다. 사람이 가득할 여의도로 들어갈 수는 없었다. 그래도 인파로 넘쳐, 아직은 쌀쌀할 수도 있을 봄밤은 활기로 가득했다. 꽃불은 이곳의 한기를 꺼뜨리기 위하여 피어났다.

꽃불 번지는 밤하늘에 수놓인 눈물처럼, 어쩌면 아무래도 꽃불과 닮지 않은 눈물처럼, 밤하늘에서 터져 올라 계산된 원리로 화려하게 퍼지지만 절대적으로 모든 것을 에누리 없이 예측하는 일은 눈물을 닦아내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어떤 추억은 늘보처럼 밤하늘에 오래도록 붙어있고자 했다. 그렇게 게으르고 지긋지긋하게 옆에 숨어 있었다.

그 기억 속에는 과락한 장수생이 세 들어 살았다. 청운의 꿈을 품었던 그 남자는 고시 공부를 하다가 낭인이 되어서 떠돌았다. 반복되고 언제 끝날지 알 수 없을 시험의 실패를 실망처럼 끝없이 확장하고 있었다. 불운을 탓하며 미련의 여운을 붙들고, 그럼에도 도무지, 좋은 일이란 없을 것 같다. 고마운 일도 없을 것 같았다.


그는 어느 날부턴가 극우 논객의 음모론으로 울분을 달랬다. 색깔론의 매력에 빠졌다. 고시가 폐지되고 로스쿨로 제도가 재편되는 것에 분노하며, 밤마다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야’라고 되뇌었다. 하필 그 이름이 노무현이었을 뿐이지, 아무개라 하여도 될 법하였다. 이제는 로스쿨을 갈 비용이 부족하므로 취직을 해야 한다며, 아무도 불러주지 않은 회사를 벌써 입사한 것처럼 말했다. 물론 한두 번인가 마음을 다잡고 취직을 한 적도 있다. 3개월이 채 되지 않아 그만두었기는 했다. 조금만 더하면 될 것 같았다. 그렇게 고시가 폐지되는 순간까지 왔고, 그는 시험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시험 폐지를 항의하는 것에 관심을 보였다.

늘 희생양이나 핑계가 필요했다. 그는 조선족을 혐오했다. 그는 그렇다고 한국인을 좋아한 것도 아니다. 그는 경쟁자들이 고시 바닥을 떠나는 것을 좋아했지만, 낯선 로스쿨 환경을 전적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싫어했다. 그는 자신에게 익숙하고 유리한 것을 정의라 믿었다. 그는 자신에게 그만한 이유가 있고, 그것은 모두에게 정상적인 것으로 수용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는 자신을 인정해주는 사람만을 좋아하는 편이었다. 아니다, 어쩌면 그건 그만의 특징이라기보다는 모두가 지닌 연악한 자기 연민일 수도 있었다. 애처롭게도 전혀 그렇지 않았음에도, 그 자신을 뜬구름처럼 아무런 배경 없이 흩날리며 공중에 부유하는 존재들처럼 여겼다.

그렇다고 거기에 서서 영원히 배제되는 것은 두려워, 그런 철저한 소외의 조짐이라도 느껴지면 잽싸게 그 지점에 빠져 나와 선을 그었다. 그리고 진짜로 의지가지없이 뜬구름처럼 아무런 배경 없이 흩날리며 공중에 부유하는 존재들을 비난했다. 자신이 그런 부류가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그랬을 것이다. 그것이 살길이라 여겼다. 가장 만만한 존재를 비난의 공격 대상을 삼는다고 자신이 위험해지진 않았다. 사람들의 질시를 달달한 설탕처럼 뿌려대면 그 마력적인 맛을 은근하게 음미하려는 사람들이 꼬이기 마련이었다. 외로웠던 그는 그런 시선을 즐겼다. 안전하게 누군가를 비난함으로써 집단의 동의를 이끌어내고 인정받는 기분이 들었다.

청운의 꿈을 꾸었지만 어느 날 뜬구름에 매달려 있었다. 떨어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누구라고 끌어내리고 그 자리에 의지하려 했다. 곧 다시 떨어질 것을 알았지만.


집에 들어서면 집에 불이 켜지고, 홀로 있던 강아지가 나를 맞는다. 견주의 다리를 디딤돌로 선 강아지를 보며 눈물은 어느덧 마르고 웃음이 난다.

“꽃돌이는 꼿꼿하구나.”

그래, 너라도 은근한 자신감으로 아름다운 세상이라 믿으며, 이 집이 너의 모든 세상이었으면 좋겠다.

늠름한 꼬리 흔드는 자신감으로 내 다리에 닿으려는 너의 힘찬 앞발도 귀엽다. 워리어처럼 월월 짖기도 하는 넌, 서울의 챔피언 강아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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