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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미러링 0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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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경윤 Oct 21. 2024

미러링

1화

미러링의 과정은 듣던 대로 무척 피곤한 것이었다.

10일에 걸친 총 72시간의 미러링 프로세스를 거치며 나는 완전히 녹초가 되어버렸다. 대부분의 시간을 비좁은 스캐너 안에서 신체와 뇌기능을 다양하게 활성화시키기 위한 일련의 과제를 수행하며 보내다 보니 안 그래도 불편한 어깨가 더욱 아파왔다. 상용화된 기술 중 가장 최첨단의 것이 이렇게 어수선하고 불편한 방식으로 작동하는 것에 새삼 놀랐다. 하지만 나라는 존재의 정보를 디지털로 복제하는 일이 간단치 않다는 사실은 안도감을 주기도 한다. 세상 거의 모든 것이 실제와 구분 불가능한 정밀도로 디지털 구현이 가능해진 이상 그 구현의 난이도가 구현대상의 특별함에 대한 척도가 된다. 고등생물일수록 미러링의 난이도가 상승하는 것은 당연하고 그에 따른 비용은 급상승한다. 미러링 휴먼의 숫자가 아직 많지 않은 것은 미러링에 대한 거부감도 있지만 비용문제가 더 크다. 미러링을 만드는 비용도 만만치 않지만 만들어진 미러링은 어딘가의 메타버스에서 컴퓨터의 연산자원을 소모하며 존재해야 하기에 유지비 또한 막대하다. 몇 년 안에 이 과정과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여줄 새로운 기술이 등장할 것이라고 하지만 기술이 안정화되는 데는 엔지니어들이 말하는 시간의 두 배는 더 필요

한 법이다. 나에게는 시간이 부족하다 부족하지 않은 쪽은 오히려 비용 쪽이다. 


의사는 내게 남은 시간을 5년 4개월로 예측하였다. 현대 의학의 수준과 내가 그 의사에게 지불하는 돈을 생각하면 매우 정확한 숫자일 것이다. 선고와도 같은 진단이 내려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미러링 서비스를 운영하는 라이프애프터 사에 상담을 신청하였다. 내겐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 있고 5년 조금 넘는 시간은 부족하다 내 병의 특성상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쇠약해질 것이고 그 고통 속에서 내 목적을 달성하는 것은 더욱 힘들어진다. 그러니 음식이 상하기 전에 냉장고에 넣어두는 것이 올바른 선택이다. 다만 미러링은 냉장고보다 훨씬 뒤에 나온 기술이고 그렇기에 신뢰성 면에서 냉장고가 오랜 시간 쌓아온 명성에 비할 바가 아니다.


‘염려하시는 바는 잘 알고 있습니다. 물론 미러링은 오리지널의 완벽한 복제가 아닙니다. 오리지널에 대한 근사치를 재현하는 것이죠. 하지만 그 근사치가 대단히 정밀하여 원본과 구분할 수 없다는 것은 많은 실험을 통해 검증이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백한 차이를 느낀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오디오 케이블을 바꾸면 소리가 달라진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처럼 말이죠. 저는 그런 말을 믿습니다. 인간의 감각은 매우 부정확한 것이니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틀림없이 차이를 느끼는 것입니다. 하지만 미러링 직후의 블라인드 테스트에서 오리지널과 미러링을 유의미한 수준으로 구분해 낸 결과는 도출된 적이 없습니다. 객관적이고 정밀한 측정치를 비교해 보면 분명히 원본과 미러링은 차이가 있습니다. 재현 해상도의 문제도 있지만 사실 미러링 프로세스가 끝나고 미러링 휴먼이 독자적인 데이터로 분리된 직후부터 차이가 발생하지요. 그것은 인간을 구성하는 육체적 정신적 요소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계속 변하기 때문입니다. 변화를 겪는 것은 오리지널도 미러링도 동일합니다. 하지만 적어도 몇 달 이상이라면 모를까 짧은 시간의 변화를 인간의 감각으로 구분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니 미러링이 끝난 시점에서 동결된 미러링 휴먼과 오리지널은 사회적으로 동일한 정보를 가진 인간으로 인식됩니다.’


라이프애프터 사의 상담사는 차분하고 분명한 말투를 지닌 사람이었다. 이런 신뢰감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미러링 휴먼인 것은 분명 라이프애프터 사의 미러링 서비스에 대한 믿음을 높여준다. 이 상담사는 틀림없이 상당한 보수를 받고 있을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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