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그렇지만 오리지널이 즉 고객님이 미러링 휴먼을 명백히 다른 사람으로 느낀다고 한다면 그에 대한 안전장치는 준비되어 있습니다. 미러링 휴먼은 오리지널의 인증이 있기 전까지는 법적으로 인격권을 부여받지 못하고 오리지널의 재산으로 취급됩니다. 미러링 프로세스가 끝난 후 일주일 내에 고객님은 본인의 미러링 휴먼과 면담을 하고 그 처우를 결정할 권리와 의무가 있습니다. 인격권이 없는 상태의 미러링 휴먼이라 할지라도 그에게 불필요한 고통을 가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으니 면담에 주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면담 후 존속을 선택하여 미러링 휴먼에게 법적 권리를 부여해 독립적으로 살아가게 할 수도 있고 혹은 파기를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선택을 유보할 수는 있지만 그 경우 미러링 휴먼은 본사에서 동결보관하며 그를 개인적 용도로 사용하는 것은 금지됩니다. 존속이나 파기를 선택할 경우 되돌릴 수 없으니 면담을 신중히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파기하게 되면 미러링 휴먼은 고통을 느끼게 되나요? 죽음을 느끼듯이?’
‘면담 직후 미러링 휴먼은 오리지널의 결정이 있을 때까지 동결상태로 들어갑니다. 모든 기능이 일시에 멈추기 때문에 어떤 지각도 사고도 하지 못하게 되죠. 그 상태에서 고객님이 존속을 택하여 다른 공간에서 그를 재동작 시키면 그는 순간이동을 했다고 느낄 것입니다. 파기를 선택하면 동결된 미러링의 데이터를 복구 불가능한 삭제방식으로 완전소멸 시키게 됩니다. 그걸 죽음으로 본다면 개인적으로는 가장 이상적인 형태의 죽음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상담은 라이프애프터 사가 운영하는 메타버스의 현실구역에 위치한 라이프애프터 본사에서 이루어졌다. 본사를 메타버스에 두고 있는 것은 그들이 가진 기술력에 대한 자신감의 표현이다. 라이프애프터 사의 BCI(뇌 컴퓨터 인터페이스)는 출시 초기부터 높은 완성도로 경쟁업체들보다 우위에 섰으며 그들이 운영하는 메타버스 플랫폼은 현실을 가장 정교하고 세련되게 재현하는 것으로 이름이 높았다. 그런 기술력을 바탕으로 몇 년 전 세계 최초의 휴먼 미러링 서비스를 출시하였을 때 그들은 세상을 완전히 바꿀 것이라는 찬사를 받았고 동시에 완전히 똑같은 내용의 비난을 받았다. 휴먼 미러링은 여전히 뜨거운 어젠다로 찬반양론이 팽팽한 사회적 긴장을 만들고 있지만 미러링 휴먼의 숫자는 꾸준히 늘고 있다. 메타버스를 이용하는 사람이라면 미러링 휴먼과 알게 모르게 조우했을 가능성이 크다. 메타버스에서 ‘살아가는’ 미러링 휴먼들은 수 천 명 정도라고 알려져 있다. 그중에 일부 급진적인 이들은 인간의 생물학적 재현을 위해 많은 연산자원을 사용하는 휴먼폼을 버리고 자신의 포맷을 AI와 비슷한 디지털폼으로 바꾸기도 한다고 들었다. 가용한 대부분의 연산자원을 정신활동에만 사용하는 그들은 현실구역보다는 초현실구역에서 주로 활동하고 있고 이제 인간이라고 부르기 어려운 존재가 되었다는 소문이다. 과장된 공포와 혐오로 채색된 이런 소문들은 반 미러링 활동가들의 입에서 돌림노래처럼 쏟아져 나오지만 대개는 걸러 들어야 할 소음이라고 생각한다. 나에게 중요한 것은 나의 미러링이 나와 같은 목적을 공유하고 그것을 반드시 행할 의지력이 있느냐는 점이다. 다른 모든 것이 완벽하게 동일하더라도 그 부분에서 조금이라도 차이가 느껴진다면 그는 내가 아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