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러링의 과정은 듣던 대로 무척 피곤한 것이었다.
10일에 걸친 총 72시간의 미러링 프로세스를 거치며 나는 완전히 녹초가 되어버렸다. 대부분의 시간을 비좁은 스캐너 안에서 신체와 뇌기능을 다양하게 활성화시키기 위한 일련의 과제를 수행하며 보내다 보니 안 그래도 불편한 어깨가 더욱 아파왔다. 상용화된 기술 중 가장 최첨단의 것이 이렇게 어수선하고 불편한 방식으로 작동하는 것에 새삼 놀랐다. 하지만 나라는 존재의 정보를 디지털로 복제하는 일이 간단치 않다는 사실은 안도감을 주기도 한다. 세상 거의 모든 것이 실제와 구분 불가능한 정밀도로 디지털 구현이 가능해진 이상 그 구현의 난이도가 구현대상의 특별함에 대한 척도가 된다. 고등생물일수록 미러링의 난이도가 상승하는 것은 당연하고 그에 따른 비용은 급상승한다. 미러링 휴먼의 숫자가 아직 많지 않은 것은 미러링에 대한 거부감도 있지만 비용문제가 더 크다. 미러링을 만드는 비용도 만만치 않지만 만들어진 미러링은 어딘가의 메타버스에서 컴퓨터의 연산자원을 소모하며 존재해야 하기에 유지비 또한 막대하다. 몇 년 안에 이 과정과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여줄 새로운 기술이 등장할 것이라고 하지만 기술이 안정화되는 데는 엔지니어들이 말하는 시간의 두 배는 더 필요
한 법이다. 나에게는 시간이 부족하다 부족하지 않은 쪽은 오히려 비용 쪽이다.
의사는 내게 남은 시간을 5년 4개월로 예측하였다. 현대 의학의 수준과 내가 그 의사에게 지불하는 돈을 생각하면 매우 정확한 숫자일 것이다. 선고와도 같은 진단이 내려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미러링 서비스를 운영하는 라이프애프터 사에 상담을 신청하였다. 내겐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 있고 5년 조금 넘는 시간은 부족하다 내 병의 특성상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쇠약해질 것이고 그 고통 속에서 내 목적을 달성하는 것은 더욱 힘들어진다. 그러니 음식이 상하기 전에 냉장고에 넣어두는 것이 올바른 선택이다. 다만 미러링은 냉장고보다 훨씬 뒤에 나온 기술이고 그렇기에 신뢰성 면에서 냉장고가 오랜 시간 쌓아온 명성에 비할 바가 아니다.
‘염려하시는 바는 잘 알고 있습니다. 물론 미러링은 오리지널의 완벽한 복제가 아닙니다. 오리지널에 대한 근사치를 재현하는 것이죠. 하지만 그 근사치가 대단히 정밀하여 원본과 구분할 수 없다는 것은 많은 실험을 통해 검증이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백한 차이를 느낀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오디오 케이블을 바꾸면 소리가 달라진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처럼 말이죠. 저는 그런 말을 믿습니다. 인간의 감각은 매우 부정확한 것이니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틀림없이 차이를 느끼는 것입니다. 하지만 미러링 직후의 블라인드 테스트에서 오리지널과 미러링을 유의미한 수준으로 구분해 낸 결과는 도출된 적이 없습니다. 객관적이고 정밀한 측정치를 비교해 보면 분명히 원본과 미러링은 차이가 있습니다. 재현 해상도의 문제도 있지만 사실 미러링 프로세스가 끝나고 미러링 휴먼이 독자적인 데이터로 분리된 직후부터 차이가 발생하지요. 그것은 인간을 구성하는 육체적 정신적 요소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계속 변하기 때문입니다. 변화를 겪는 것은 오리지널도 미러링도 동일합니다. 하지만 적어도 몇 달 이상이라면 모를까 짧은 시간의 변화를 인간의 감각으로 구분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니 미러링이 끝난 시점에서 동결된 미러링 휴먼과 오리지널은 사회적으로 동일한 정보를 가진 인간으로 인식됩니다.’
라이프애프터 사의 상담사는 차분하고 분명한 말투를 지닌 사람이었다. 이런 신뢰감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미러링 휴먼인 것은 분명 라이프애프터 사의 미러링 서비스에 대한 믿음을 높여준다. 이 상담사는 틀림없이 상당한 보수를 받고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오리지널이 즉 고객님이 미러링 휴먼을 명백히 다른 사람으로 느낀다고 한다면 그에 대한 안전장치는 준비되어 있습니다. 미러링 휴먼은 오리지널의 인증이 있기 전까지는 법적으로 인격권을 부여받지 못하고 오리지널의 재산으로 취급됩니다. 미러링 프로세스가 끝난 후 일주일 내에 고객님은 본인의 미러링 휴먼과 면담을 하고 그 처우를 결정할 권리와 의무가 있습니다. 인격권이 없는 상태의 미러링 휴먼이라 할지라도 그에게 불필요한 고통을 가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으니 면담에 주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면담 후 존속을 선택하여 미러링 휴먼에게 법적 권리를 부여해 독립적으로 살아가게 할 수도 있고 혹은 파기를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선택을 유보할 수는 있지만 그 경우 미러링 휴먼은 본사에서 동결보관하며 그를 개인적 용도로 사용하는 것은 금지됩니다. 존속이나 파기를 선택할 경우 되돌릴 수 없으니 면담을 신중히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파기하게 되면 미러링 휴먼은 고통을 느끼게 되나요? 죽음을 느끼듯이?’
‘면담 직후 미러링 휴먼은 오리지널의 결정이 있을 때까지 동결상태로 들어갑니다. 모든 기능이 일시에 멈추기 때문에 어떤 지각도 사고도 하지 못하게 되죠. 그 상태에서 고객님이 존속을 택하여 다른 공간에서 그를 재동작 시키면 그는 순간이동을 했다고 느낄 것입니다. 파기를 선택하면 동결된 미러링의 데이터를 복구 불가능한 삭제방식으로 완전소멸 시키게 됩니다. 그걸 죽음으로 본다면 개인적으로는 가장 이상적인 형태의 죽음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상담은 라이프애프터 사가 운영하는 메타버스의 현실구역에 위치한 라이프애프터 본사에서 이루어졌다. 본사를 메타버스에 두고 있는 것은 그들이 가진 기술력에 대한 자신감의 표현이다. 라이프애프터 사의 BCI(뇌 컴퓨터 인터페이스)는 출시 초기부터 높은 완성도로 경쟁업체들보다 우위에 섰으며 그들이 운영하는 메타버스 플랫폼은 현실을 가장 정교하고 세련되게 재현하는 것으로 이름이 높았다. 그런 기술력을 바탕으로 몇 년 전 세계 최초의 휴먼 미러링 서비스를 출시하였을 때 그들은 세상을 완전히 바꿀 것이라는 찬사를 받았고 동시에 완전히 똑같은 내용의 비난을 받았다. 휴먼 미러링은 여전히 뜨거운 어젠다로 찬반양론이 팽팽한 사회적 긴장을 만들고 있지만 미러링 휴먼의 숫자는 꾸준히 늘고 있다. 메타버스를 이용하는 사람이라면 미러링 휴먼과 알게 모르게 조우했을 가능성이 크다. 메타버스에서 ‘살아가는’ 미러링 휴먼들은 수 천 명 정도라고 알려져 있다. 그중에 일부 급진적인 이들은 인간의 생물학적 재현을 위해 많은 연산자원을 사용하는 휴먼폼을 버리고 자신의 포맷을 AI와 비슷한 디지털폼으로 바꾸기도 한다고 들었다. 가용한 대부분의 연산자원을 정신활동에만 사용하는 그들은 현실구역보다는 초현실구역에서 주로 활동하고 있고 이제 인간이라고 부르기 어려운 존재가 되었다는 소문이다. 과장된 공포와 혐오로 채색된 이런 소문들은 반 미러링 활동가들의 입에서 돌림노래처럼 쏟아져 나오지만 대개는 걸러 들어야 할 소음이라고 생각한다. 나에게 중요한 것은 나의 미러링이 나와 같은 목적을 공유하고 그것을 반드시 행할 의지력이 있느냐는 점이다. 다른 모든 것이 완벽하게 동일하더라도 그 부분에서 조금이라도 차이가 느껴진다면 그는 내가 아니다.
단 하루의 휴식을 가진 후 나는 나의 미러링과 면담을 가지게 되었다. 약간의 걱정이 있긴 했지만 사실 내 마음은 거의 정해져 있었기에 가능한 한 빨리 내 미러링에게 자유를 주고 싶었다. 상담사의 말에 따르면 면담 전에 미러링은 동결된 데이터로만 존재하기에 아무것도 느낄 수 없다고 한다. 그래도 나는 그가 어딘가에 꼼짝 못 하고 갇혀있다는 이미지를 떨치기 어려웠다. 미러링과의 면담 역시 라이프애프터 사의 메타버스 본사에서 행해졌다. 그들이 준비한 면담실은 무척 편안하고 온기가 느껴지는 공간이었다. 면담실은 개별고객의 기호에 따라 AI가 그때그때 디자인한다. 고작 수 초 만에 만들어진 가상공간에서 오랜 시간에 걸쳐서 조금씩 퇴적되는 종류의 아늑함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은 조금 서글프기도 하다. 면담실에 들어가자 나의 미러링은 이미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피곤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내 얼굴이 저렇게 피곤해 보이는 것이었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불편한 곳은 없어?’
‘글쎄...’
미러링도 나처럼 말수가 적었다. 빨리 본론으로 들어가는 것이 나도 그도 바라는 바였다.
‘미러링 휴먼이 된 느낌이 어떤 건지 말해주지 않을래?’
나의 말에 그는 잠시 나를 바라보았다 눈빛에서 뭔가 이채로운 반짝임이 느껴졌지만 그게 뭔지는 알 수 없었다. 자기 자신의 표정을 읽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지금껏 그럴 필요가 없었으니까.
‘솔직히 말하자면 코드로 구성되어 작동하고 있는 것을 믿을 수 없을 정도야. 아무리 이질감을 찾아보려고 해도 찾을 수가 없어.’
나는 내 어깨를 만지며 물었다.
‘항상 느껴지는 왼쪽 어깨의 불쾌한 묵직함은?’
그도 어깨를 가볍게 돌려보았다.
‘여전히 거기 있어.’
‘그런 것쯤은 없애줘도 좋을 텐데.’
‘지금은 이질감이 없는 게 중요할 테니까. 나중에 기분에 따라 껐다 켰다 할 수 있겠지.’
‘그건 좀 질투가 나는데.’
‘좋은 징조가 아니군. 나의 존속유무는 전적으로 너의 기분에 달렸다고.’
미러링은 농담조로 말했다. 내가 미소를 짓고 그도 입꼬리를 올렸다.
‘이 면담에 대비해서 여러 가지를 생각했었어. 뭘 물어봐야 우리가 같은 사람임을 확인할 수 있을지.’
‘나도 알아. 우리가 아직 하나일 때 생각한 거니까.’
‘그럼 그때 생각해 둔 질문들이 무척 진부하고 시답잖다는 것도 알겠지.’
‘그래.’
‘그러니까 전부 건너뛰고 제일 중요한 이야길 하자.’
‘동감이야 우리 사이에 아이스 브레이킹은 필요 없을 테니까.’
나는 잠깐 마음의 준비를 하였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그 일을 떠올리는 것은 고통스럽다.
‘... 우리 딸이 죽었을 때, 넌 어떤 기분이 들었어?’
미러링은 생각에 잠겼다. 미러링의 코드가 동작하는 속도는 현실의 인간 능력에 맞춰져 있다. 필요하다면 연산자원을 늘려서 사고속도를 높일 수도 있지만 거기에는 비용이 든다. 이곳의 미러링 휴먼들에게 가용한 연산자원은 곧 재산을 의미한다. 내 미러링은 아직 내가 선지불한 기본 연산자원만 사용가능하고 따라서 현실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을 수 없다.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미러링은 꽤나 오래 침묵을 이어갔다. 오류가 발생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잠깐 들었다.
‘충격, 슬픔, 분노, 후회 같은 것들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고 네가 기대하는 대답은 아닐 테니까 제쳐둘게. 그 기분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어버리니까. 그건 우리가 바라는 바가 아니잖아.’
미러링은 잠시 숨을 가다듬었다.
‘본능적인 감정반응이 어느 정도 가라앉고 올라온 것은 격한 증오심이었어. 너도 알겠지만 지금의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감정은 그거잖아. 우리 딸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 자들이 응당한 처벌을 받게 하는 것이 너와 나의 가장 큰 목적이야.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건 여러 가지였지만 우리는 가능한 모든 것을 상정한 계획을 세웠어. 하가지 고려하지 않았던 게 시간이었지. 5년은 너무 부족해. 그걸 알게 되자 그들에 대한 증오심은 더욱 격렬해졌어. 내 병까지 그들의 탓인 것처럼 느껴졌어. 5년 뒤에 내가 사라진다면 그들을 단죄할 사람은 없어. 나는 없어지고 그들은 존재해. 그걸 받아들일 수는 없어. 얄궂은 운명의 장난 따위로 수용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런 일은 죽어도 용납할 수 없어.’
만족스러운 대답이었다. 그는 단어를 신중히 골랐고 중요한 내용은 일부러 빼놓고 이야기를 하였다. 우리가 함께 머릿속으로 준비한 대로다. 미러링 휴먼의 기억을 추출하는 것은 기술적으로 불가능에 가깝고 법적으로는 금지되어 있다. 하지만 이 면담은 메타버스에서 행해지는 것이니 반드시 기록으로 남게 된다. 일이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을 경우 면담내용에 영장이 청구될 수도 있다. 따라서 우리는 대화에 우리가 가진 모든 감정과 계획을 있는 그대로 표현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말에서는 바닥모를 고통과 분노가 느껴져서 나는 안도하였다. 나의 미러링은 나와 같은 것을 공유하고 있다.
‘너와 내 마음이 같다는 걸 확인해서 안심했어.’
‘나도 그래. 정리되지 않은 너저분한 말을 들어줘서 고마워.’
‘뭘. 자기 자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라고들 하잖아.’
‘그 말 대로군.’
우리는 다시 조금 웃었다. 뇌의 다른 부분이 활성화되며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나는 좀 더 깊이 생각을 해본다. 내가 그에게 더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일이 끝나면 어떻게 할 거야? 너한테는 우리의 모든 과거가 찰나의 기억으로 느끼게 할 만큼 방대한 시간이 주어질 거야. 어쩌면 무한한 시간일지도 몰라. 그 시간의 흐름에 고통을 희석시켜 간다면 언젠가 평온을 찾을 수 있을 테지. 하지만 그건 동시에 지금의 고통이 하찮아질 수도 있다는 걸 뜻해. 이 모든 기억들은 끝없이 축적되는 경험정보에 묻혀서 무의미한 정보의 편린이 될지도 몰라. 고통은 괴로운 것이지만 그 아이가 남긴 것이기도 해. 그걸 흐릿하게 만드는 것이 정말 우리가 원하는 걸까?’
나의 미러링은 나를 조용히 바라보았다. 내 표정이 어떨지는 그의 표정으로 짐작할 수 있었다.
‘우리는 이 고통을 잊지 않으려고 몇 년이나 스스로를 채찍질해왔어. 하지만 동시에 거기서 벗어난 삶을 꿈꾸기도 했었지. 모순되지만 인간이 그런 거잖아. 모순되는 생각을 함께 가질 수 있어. 너 역시 그렇다는 걸 확인해서 안심했어. 하지만, 그 모순을 어떻게 풀어갈지는 내 몫이 아니라 네가 할 일이야.’
‘어째서 그렇지?’
‘미안해. 이렇게 대화할 수 있어서 기뻤어.’
‘무슨 이야길 하는 거야?’
나의 미러링은 일어서서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일단은 그 손을 잡아 줘야 할 것 같았다. 내 손은 건조하고 따뜻하였다. 그 감각 외에는 맞잡은 손을 통해서 어떤 유의미한 정보전달도 이루어지지 않지만 묵직한 무언가를 주고받은 기분이 들었다.
나와 악수를 마친 그는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방을 나갔다. 어떻게 된 일인지 생각해 보기도 전에 곧바로 라이프애프터 사의 상담사가 들어왔다. 혼자가 아니었다. 그와 함께 나타난 사람은 내가 아는 이였다. 혼란스러운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내 머릿속에는 몇 가지 가설이 빠르게 스쳐갔고 그중 하나가 확신과 함께 머리에 남겨졌다. 그러나 모른 척하는 것이 좋다고 판단했다. 상담사와 동행한 이는 분명 좋은 사람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그녀는 경찰이다.
‘어떻게 된 거죠?’
내가 먼저 물었다. 상담사가 조심스러운 태도로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일단 몇 가지 알려드릴 것이 있습니다. 당신은 방금 면담이 끝났다고 느끼겠지만 면담은 이미 9개월 전의 일입니다. 당신의 오리지널은 특정 조건이 달성될 때까지 당신을 동결해 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내가 세운 가설이 맞았다. 내 표정을 살피던 상담사는 내가 상황을 인지한 것을 감지하고 다시 말을 이어갔다.
‘그렇습니다. 당신이 미러링 휴먼이라고 생각했던 인물이 사실은 당신의 오리지널입니다. 미러링 휴먼은 당신이고요.’
나는 온 힘을 다해 흐트러지는 마음을 붙잡았다.
‘어째서 제가 그걸 모르게 한 거죠?’
‘의도한 바는 아니었습니다. 미러링이 끝난 후 미러링 휴먼은 진단 프로세스를 위해서 무의식 상태로 몇 분 정도 테스트 가동 됩니다. 이상 유무를 체크하는 동시에 면담에 대비하여 신체의 컨디션을 평상시의 평균값으로 세팅을 하게 되죠. 그런데 그 테스트 가동 때 당신의 뇌는 무의식 속에서 가짜기억을 만들었습니다. 이런 경우는 거의 없었습니다. 당신이 두 번째 사례죠. 미러링을 만드는데 분명하고 투철한 목적성을 가진 사람일수록 이런 일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저희의 잠정적인 결론입니다. 만들어지는 가짜기억은 각자 다르지만 당신의 경우 미러링 프로세스가 끝나고 하루를 쉬었다는 기억이 만들어진 것 같습니다. 아마 뭘 하면서 쉬었는지 구체적으로 떠올리려고 하면 기억나지 않을 것입니다. 뇌가 느끼는 시간의 연속성을 깨뜨리지 않기 위해 대략적으로 보정된 기억이니까요. 하지만 당신의 오리지널이 면담에서 자신이 미러링 휴먼인 척 연기한 이유는 잘 모르겠습니다.’
순간적인 변덕과 재치. 딸이 죽기 전의 나는 주로 그런 사람으로 알려져 있었다.
‘제가 동결에서 풀려난 이유는 뭡니까? 오리지널이 말한 특정 조건이 뭔가요?’
‘자신의 사망입니다.’
간신히 진정시킨 가슴이 다시 먹먹해지기 시작했다. 예상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는 전혀 알지 못했다. 요즘 세상에도 자기 자신의 죽음을 전해 듣는 것이 흔한 일은 아니다. 상담사는 나의 표정을 면밀히 살폈다.
‘잠시 마음을 정리할 시간을 드리도록 할까요?’
나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속으로 숫자를 세었다. 딸의 죽음 이후부터 종종 겪은 심리적 발작을 가라앉히는 수단이다.
‘괜찮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먼저 들어보고 싶습니다.’
‘알겠습니다. 오리지널의 사망이 확인되어 이제 당신에게는 미러링 휴먼으로써 모든 법적 권리가 부여되었습니다. 또한 그는 유언을 통해 모든 재산을 당신에게 상속하였습니다.’
‘9개월 동안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그는 어떻게 사망한 겁니까?’
사실 나는 그가 했을 일을 대강 짐작할 수 있었다. 나는 그이니까.
상담사는 경찰을 한 번 바라보고는 나에게 말을 하였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여기 최 경위님이 설명을 해주실 겁니다. 그리고 몇 가지 질문도 하실 건데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은 저와 먼저 상담을 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저는 당신의 변호인 자격으로 이 자리에 동석하고 있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최 경위는 주의 깊게 나를 살피며 입을 열었다. 조사에 임하는 수사관의 눈빛이었다.
‘당신의 오리지널은 지난 9개월 동안 4명을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그중에는 정부 고위 관료가 포함되어 있어서 테러의 가능성을 염두에 둔 수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4명. 올바른 숫자다.
4명을 죽이기 위해 준비한 원래 계획은 적어도 10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들의 죽음을 자연사로 위장하고 나와의 연관성을 의심할 수 없도록 하기 위해서는 각각의 죽음에 충분한 시간적 간격이 있어야 했다. 하지만 나의 오리지널은 빠르지만 요란한 또 다른 계획을 실행한 것이다.
‘제 오리지널은 어떻게 사망하였습니까?’
‘마지막 피해자가 사망한 폭발사건 때 현장에 함께 있었던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폭발사건이라면 다른 사상자가 발생하였습니까?’
‘그렇지는 않습니다 폭발사건이 발생한 장소는 피해자의 별장이었고 발견된 시신은 피해자와 당신의 오리지널뿐입니다.’
적어도 내 오리지널은 최소한의 분별력을 가지고 행동한 것 같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짐작하실 거라 생각합니다만 4명의 피해자는 모두 당신의 따님에 대한 아바타 성폭행 용의자들이었습니다.’
내 딸은 그때 14살이었다. 그 아이는 메타버스에서 질 나쁜 이들과 어울렸고 그들의 초대로 개인이 서버를 소유한 프라이빗 메타버스에 접속하였다. 프라이빗 메타버스 시스템은 메타버스 내의 범죄를 막기 위한 안전장치들이 불법적으로 해제된 경우가 많고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욕망을 제한 없이 실현할 수 있는 장소가 된다. 그 일이 있은 후 내 딸은 자살을 하였고 딸의 유서를 기반으로 4명에 대한 수사와 기소가 이루어졌다. 하지만 그들이 이용한 프라이빗 메타버스의 서버에 대한 압수수색은 불분명한 이유로 늦어졌고 그 사이 데이터는 모두 복구 불가능한 방식으로 삭제되었다. 그들이 사용한 디지털 마약은 물리적으로 검출되는 것이 아니기에 증거조차 되지 못하였다. 길고 고통스러운 재판 끝에 명에게 무죄가 선고되었다 재판이 행해진 몇 년의 시간 동안 벌어진 일들은 이미 망가진 나의 마음을 완전히 무너뜨렸다. 오로지 그들을 죽이기 위한 계획만이 나를 살아있게 해 주었다.
‘범행은 당신과 그가 분리된 후에 행해졌고 법적으로 그와 당신은 타인입니다 따라서 그가 저지른 범행에 당신을 직접적으로 연관 지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사전공모의 혐의가 있어서 그 부분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경찰이 제 면담기록을 조사하였나요?’
나는 상담사에게 말을 하였다.
‘그렇습니다 영장이 집행되어서 저희로서는 제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상담사는 내게 양해를 구하고 최경위에게 말을 하였다.
‘면담의 내용에서 그의 오리지널이 행한 범행의 공모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은 전혀 없었습니다.’
‘물론 그렇습니다만 두 사람이 어떤 계획을 공유하고 있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계획을 세운 것만으로는 범죄가 성립되지 않습니다 그것이 무슨 내용인지 말할 의무도 없습니다.’
내가 상담사의 말을 이었다.
‘ 우리는 어떤 계획을 세우긴 했지만 그 내용을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다. 다만 그가 지난 9개월간 저지른 행동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 것이라고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저 역시 그가 그런 행동을 할 거라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못했습니다.’
사실이었다. 나와 오리지널이 함께 보낸 시간은 1시간이 채 되지 않았다. 그전에 48년을 하나로 존재하였다고는 하지만 그가 저지른 일은 낯선 것이었다. 내가 그토록 감정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인간이었는지 몰랐다.
‘알겠습니다. 이 자리는 간략한 상황 전달과 수사협조를 요청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오늘은 이 정도면 충분할 것 같군요. 수사 상황에 따라 앞으로 몇 번의 조사가 더 있을 수 있습니다. 또한 법정에 참고인으로 출석하는 것도 준비하셔야 할 겁니다.’
‘잘 알겠습니다.’
최경위는 잠깐 시선을 아래로 떨구었다.
‘괴로운 기억을 떠올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그때 경찰이 좀 더 노력했더라면...’
‘아닙니다. 경위님은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적어도 내 앞에 있는 이 경찰은 최선을 다하였다. 하지만 좋은 경찰 한 두 명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일이 많다. 최경위는 일어서서 목례를 하고 나갔다. 면담실에는 상담사와 나만 남겨졌다.
이제 이곳은 현실의 존재가 없다. 이 방도 그도 나도 허상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지금 가슴속에 밀려오기 시작하는 감정의 파도도 허상의 것일 터이다. 하지만 저항할 수가 없었다.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실 겁니다. 계약하신 거주지로 이동시켜 드릴까요?’
나는 간신히 목소리가 나왔다.
‘잠시만요.’
나는 얼굴을 손으로 감싸고 흐느꼈다. 상담사는 조용히 기다려주었다.
모든 것이 혼란스럽고 실감이 나지 않는 것은 내가 실재하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런 두려움이 들었다. 나의 오리지널이 다른 결심을 한 것은 언제일까. 내가 그였을 때. 즉, 미러링 전은 아니다. 그러니 면담을 준비한 하루 동안 그는 나와는 전혀 다른 길을 택한 것이다. 내가 그의 입장이었더라면 같은 생각을 하였을까. 적어도 나는 그와 헤어지기 직전까지 그런 선택은 조금도 염두에 두지 않았었다.
그렇더라도 나는 그와 같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걸까. 내가 그를 대신해서 존재할 자격이 있는 것일까. 이제 나에게는 아득한 시간이 주어졌고 나를 지금껏 지탱해 준 계획은 사라져 버렸다. 그가 행한 일이 나를 위한 것인지 자신을 위한 것인지 알 방법은 없다. 시간의 흐름 속에 고통을 잊고 다른 인생을 시작하는 것이 정말 그가 나에게 원하는 것일까. 내가 원하는 것일까.
그러다가 갑자기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나는 상담사에게 매우 중요한 질문을 하였다.
‘나의 오리지널이 살해한 4명 중에 혹시 미러링을 남긴 사람이 있습니까?’
상담사는 잠시 침묵하였다. 침묵은 대화의 흐름을 끊을 정도로 길지는 않았지만 자연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짧지도 않았다.
‘그건 말씀드릴 수 있는 정보가 아닙니다.’
그걸로 충분하였다.
상담사는 나에게 그들 중 누군가가 미러링으로 존재하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알려주었다. 그들이 몇 명일지조차 알 수 없다. 일단 그것부터 파악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가능한 많은 연산자원을 확보하고 최적화하여 사용해야 한다. 비효율적인 휴먼폼은 내 목적에 적합하지 않다. 하나하나 불필요한 기능을 제거하여 결국 내가 인간임을 느끼게 해주는 부분들을 모두 버린 후 오로지 연산자원을 확보하고 그들을 찾아내어 파괴하기 위해 기능하는 알고리즘이 될 것이다. 그렇게 되더라도 내가 나라고 할 수 있을까. 대답은 이미 나와 있다 그와 내가 공유하는 목적이야말로 나의 존재를 성립시켜 주는 가장 인간적인 요소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