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알겠습니다. 이 자리는 간략한 상황 전달과 수사협조를 요청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오늘은 이 정도면 충분할 것 같군요. 수사 상황에 따라 앞으로 몇 번의 조사가 더 있을 수 있습니다. 또한 법정에 참고인으로 출석하는 것도 준비하셔야 할 겁니다.’
‘잘 알겠습니다.’
최경위는 잠깐 시선을 아래로 떨구었다.
‘괴로운 기억을 떠올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그때 경찰이 좀 더 노력했더라면...’
‘아닙니다. 경위님은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적어도 내 앞에 있는 이 경찰은 최선을 다하였다. 하지만 좋은 경찰 한 두 명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일이 많다. 최경위는 일어서서 목례를 하고 나갔다. 면담실에는 상담사와 나만 남겨졌다.
이제 이곳은 현실의 존재가 없다. 이 방도 그도 나도 허상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지금 가슴속에 밀려오기 시작하는 감정의 파도도 허상의 것일 터이다. 하지만 저항할 수가 없었다.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실 겁니다. 계약하신 거주지로 이동시켜 드릴까요?’
나는 간신히 목소리가 나왔다.
‘잠시만요.’
나는 얼굴을 손으로 감싸고 흐느꼈다. 상담사는 조용히 기다려주었다.
모든 것이 혼란스럽고 실감이 나지 않는 것은 내가 실재하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런 두려움이 들었다. 나의 오리지널이 다른 결심을 한 것은 언제일까. 내가 그였을 때. 즉, 미러링 전은 아니다. 그러니 면담을 준비한 하루 동안 그는 나와는 전혀 다른 길을 택한 것이다. 내가 그의 입장이었더라면 같은 생각을 하였을까. 적어도 나는 그와 헤어지기 직전까지 그런 선택은 조금도 염두에 두지 않았었다.
그렇더라도 나는 그와 같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걸까. 내가 그를 대신해서 존재할 자격이 있는 것일까. 이제 나에게는 아득한 시간이 주어졌고 나를 지금껏 지탱해 준 계획은 사라져 버렸다. 그가 행한 일이 나를 위한 것인지 자신을 위한 것인지 알 방법은 없다. 시간의 흐름 속에 고통을 잊고 다른 인생을 시작하는 것이 정말 그가 나에게 원하는 것일까. 내가 원하는 것일까.
그러다가 갑자기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나는 상담사에게 매우 중요한 질문을 하였다.
‘나의 오리지널이 살해한 4명 중에 혹시 미러링을 남긴 사람이 있습니까?’
상담사는 잠시 침묵하였다. 침묵은 대화의 흐름을 끊을 정도로 길지는 않았지만 자연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짧지도 않았다.
‘그건 말씀드릴 수 있는 정보가 아닙니다.’
그걸로 충분하였다.
상담사는 나에게 그들 중 누군가가 미러링으로 존재하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알려주었다. 그들이 몇 명일지조차 알 수 없다. 일단 그것부터 파악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가능한 많은 연산자원을 확보하고 최적화하여 사용해야 한다. 비효율적인 휴먼폼은 내 목적에 적합하지 않다. 하나하나 불필요한 기능을 제거하여 결국 내가 인간임을 느끼게 해주는 부분들을 모두 버린 후 오로지 연산자원을 확보하고 그들을 찾아내어 파괴하기 위해 기능하는 알고리즘이 될 것이다. 그렇게 되더라도 내가 나라고 할 수 있을까. 대답은 이미 나와 있다 그와 내가 공유하는 목적이야말로 나의 존재를 성립시켜 주는 가장 인간적인 요소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