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슴도치도 자기 자식은 예쁘다고 한다.
감히 내 상처가 염려되는, 가까이 갈 수 없는 그것에, 그 어미는 온몸으로 품는다.
부모 자식 간에는 당연한 일이 몇 사람만 건너도 내외하는 것도 아니고 무관심이 당연해진다.
처음 일을 시작한 1년 차일 때에 학생들의 걱정과 고민을 상담하며 함께 울기도 했다.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힘이 될 거라는 짐작으로 열기 어려운 무거운 입을 기어코 떼게 하고는 감당이 안 되었다.
그리고 그다음부터는 학생 스스로 무거운 이야기는 하지 않으려 했다.
선생님 눈에서 눈물까지 빼는 일은 만드는 게 아니라는 예의에 관한 원칙을 정해버린 것이다.
작년, 코로나 19로 비대면 수업으로 전환되며 외국인들은 일상생활 속 소소한 고충이 더 많아졌다.
전과 다르게 비대면으로 인터넷이나 전화로 일을 처리하는 일이 많아지며 코로나 19가 발현하며 입국한 경우는 기초학습부터 대면 학습을 받지 못해 한국어 능력에 따라 어려움이 가중되기도 했다.
수업을 진행하며 학습에 대한 질문보다 예전과 달라진 생황 속 불편 및 해결 방법 안내가 많았다.
수업 중에 외국인으로서 해결 방법을 서로 알려주고 함께 걱정하는 잔잔하게 정이 오고 갔다.
하지만, 꼭 선을 넘는 사람이 있다.
학습자나 교수자, 누구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수업할 때마다 꺼내놓는 사람이 있었다.
수업이 끝난 후, 같은 나라 학생이나 선생님에게까지 따로 연락을 했다.
학습이나 수업에 관한 것이면 상관없는데 주말, 밤 12시에도 연락이 왔다.
"선생님, 저 돈 없어요."
"가족들 도와주고 싶어요."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동안 귀국하며 연락이 더 잦아졌다.
"한국에서 살고 싶어요."
"비자 방법 도와주세요."
걱정을 나누고 관련 기관에 연계까지 했는데 마음에 드는 지원을 못 받으니 계속 연락을 하는 것이었다.
수업 전체에 지장을 줄 정도가 되어 기관에 그동안의 사정을 설명했다.
그리고, 더 이상 연락이 오지 않았다.
고슴도치처럼 무조건 함함할 수는 없다.
내 가족이면 당연한 일일 수 있지만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지켜야 할 선이 있다.
서로를 배려하고 선을 지켜야 한다.
그리고 무조건 달려들어 다 해 줄 것처럼 희망고문도 해서는 안 된다.
품을 수 있는 만큼만 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