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여백 5

길을 따라

by 봄비가을바람

바람 따라 하나둘 떨어진 은행이 밟히고 껍질이 벗겨지고 짓이겨져 여기저기 나뒹굴었다.

온몸으로 도시의 소음과 온갖 토악질로 뱉어놓은 오염된 공기를 아무 불평 없이 빨아들이고 삼켜 구역질 나는 냄새도 감수하며 노란 가을 옷을 입고 서 있었다.

지나는 발길에 밟혀 뜬금없는 핀잔에도 아무 대구 없이 묵묵하다.




by 봄비가을바람



거리는 가을이 내려앉아 마음마저 무겁게 가라앉혔다.

여운은 서늘해진 공기에 몸을 움츠렸다.

지나는 사람들의 시선은 바쁘게 발밑을 좇아 제 갈길을 가고 스치는 바람은 등 떠밀어 쓸쓸한 생각을 밀어냈다.



가족공원 입구에 들어서자 길가에 늘어선 꽃집에서 손님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눈물이 오고 가는 길에 호객행위라니.

씁쓸한 생각에 발길을 돌릴까 하다가 꽃집으로 들어섰다.

"작은 것으로 하나 주세요."

여운은 작은 꽃다발을 들고 약간 경사진 길을 한발 한발 아껴 걸으며 발걸음마다 부모님과의 시간을 세어 보았다.

뭔가 궁금한 것이 있을 때마다 막힘없이 술술 대답해 주던 아빠는 여운에게는 선생님이고 세상 앞으로 안내하는 길잡이였다.

덤벙대다 여기저기 쿵하는 여운을 말없이 보듬고 달래던 엄마는 삶이 주는 행복과 사랑을 가르쳐 주었다.



납골함 유리문에 꽃다발을 붙이고 작은 함에 나란히 담겨 있는 모습에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익숙해지지 않는 빈자리는 영원히 채워지지 않을 여백으로 남을 것을 알고 있다.

훗날 다시 만날 거라는 위로는 공염불처럼 귓가를 간지럽히고 사라졌다.

남은 사람이 해야 하는 것은 견디는 것이다.

언제일지 모를 끝을 향해 나아가는 것밖에 없기 때문이다.



납골당을 나와 오던 길을 뒤돌아 또 한발 한발 여운은 다짐과 함께 그리움을 담았다.

방금 돌아서 나온 길에 두 분의 배웅하는 목소리가 들리는 듯 자꾸 돌아보았다.

앞으로 갈 길에는 여운을 다독이고 추슬러줄 부모님은 더 이상 곁에 없다.

언제나 혼자 뭐든 다 할 수 있는 것처럼 강한 척한 것은 곁에 믿는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여운은 두렵다.

이제는 기댈 곳이 너무 멀리 있다.

한 달음에 달려가 안길 수도 없고 온갖 투정을 전화기에 쏟아부울 수도 없다.

하지만 멈출 수는 없다.

남은 자가 할 일이 있기 때문이다.

앞에 놓인 길을 따라 계속 걸어가야 한다.






by 봄비가을바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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