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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콘 Feb 14. 2019

모든 것이 디지털이 된 세상에서

영화 <아논>을 보고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미래 사회에 대한 예측들은 많다. 거리에는 날아다니는 자동차가 난무하고, 자동화된 기계들이 세상을 가득 채우는 이미지들은 여러 영화나 미디어를 통해서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영화 <아논>은 화려하고 번쩍거리는 세상이 아니라 무채색한 미래가 그려진다. 모든 것이 공개되고 디지털화된 세상은 오히려 심플하고 색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이 꽤나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IMDB 평점


우선 영화 <아논>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고 생각보다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아만다 사이프리드가 주인공이 되었지만, 언급조차 되지 않은 것을 보고 조금 의아한 느낌이 들었다. 영화 평점 사이트인 IMDB에서도 나쁘지 않은 평가를 받았는데 말이다. 그러나, 영화를 보고 나면 흥행할만한 영화가 아니라는 것은 알지만, 그렇다고 재미가 없지는 않았다. 그저 굉장히 회색 빛깔의 시대 느낌이 나기 때문에 영화를 보다가 조금 우울해질 수도 있고, 청소년 관람 불가이기에 홍보가 덜 된 것은 아닐까 생각해봤다.


#영화 <아논>이 바라본 미래


영화 <아논>의 세계에는 감출 수 있는 것이 없다. '에테르'라는 중앙 서버에 모든 사람들의 기록이 연결된다. 경찰들은 에테르 서버에 접속해서 모든 사람들을 감시할 수 있다. 디지털화된 사람들은 눈으로 보이는 모든 것을 에테르에 저장한다. 유명한 연예인을 길에서 우연히 보게 되면 친구들끼리 "그 눈 삽니다."라고 장난처럼 말하는데, 영화<아논>의 세계에서는 10분 전에 내가 본 기록을 상대에게 보낼 수 있다.


'눈으로 바라본 모든 것이 기록되는 세계'가 바로 영화 <아논>이 그리는 미래다. 모든 눈이 디지털화가 되어있다. 마치 현빈의 드라마 <알함브라 궁전>에서 나오는 디지털 렌즈처럼 세상이 모드 증강현실화 되어있고, 모든 정보가 기록되고 확인된다.


꽤나 신선하지않는가?


영화 <아논>의 세계에선 속된 말로 '구라'가 통하지 않는다. 직업, 나이 등이 공개되고 계좌이체도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보낼 수 있다. 그 모든 것이 증강현실처럼 내 시야에 보이게 된다. 그래서인지 세상은 굉장히 무채색이다. 길거리에 넘쳐나는 광고는 증강현실로 대체되어있고, 길을 가다가 맘에 드는 시계가 있으면 증강현실로 착용이 가능하다.


범죄자들도 범죄 기록을 숨길 수 없다. 시스템이 자수를 권고하고, 알리바이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눈에 기록된 영상을 꺼내와서 확인할 수 있다. 경찰들은 앉아서 기록을 확인하고 범죄자를 잡는다. 그런데 이 세상에 누군가 '에테르'를 해킹해서 살인을 저질렀다. 그런데 경찰도 잡을 수가 없다? 이건 문제가 심각해진다.


인식할 수 없음...


#어디에나 불법행위가 존재한다.


생각해보자, '구라'가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서 불법행위가 불가능할까? 아니다. 언제나 범죄자들의 상상력은 일반인을 뛰어넘는다. 바람을 피우거나, 가짜 알리바이를 만들거나, 마약을 사기 위해서 사람들은 블랙마켓에서 해커들을 고용한다.


'기억을 조작해주는 해커' 블랙마켓에서는 눈에 본 기억을 조작해주는 해커들이 존재한다. 그들이 지우고 싶어 하는 기억들을 골라서 지워준다. 마약을 사는 순간에 누구도 마주친 적 없이 영상을 바꾸고, 바람을 피우고 해커를 불러서 해당 시간의 알리바이를 만든다.


'구라'가 없는 세상에서도 사람들은 '구라'가 필요하기에 생각보다 블랙마켓은 활성화가 되어있다. 그런데 이 기억을 지워주는 사람이 기억을 해킹해서 사람을 죽인다. 잡을 방법이 없기에 1급 형사 살 프리드먼이 위장 수사를 벌인다. 잘 나가는 금융권 매니저로 위장해서 기억을 지우기 위해 아만다를 부른다. 아만다의 극 중 내용은 이름이 없다. 그녀의 기록은 모든 것이 기록된 '에테르'에 존재하지 않는다.


디지털 시대에도 콜 걸은 존재한다.


#누군가 날 해킹하고 있어, 도와줘


영화 <버드 박스>와 비슷한 재앙이라 생각이 들었다. 영화 <버드 박스>는 시야를 잃는 영화였지만, 영화 <아논>은 모든 것이 공개된 시야에 대한 내용이다. 눈에 보이는 것만 믿을 수 없는 세상이기에, 누군가 내 시야를 해킹해서 거짓을 고해도 알 방법이 없다.


불이 나지 않은 방에 불이 나는 영상을 심어서 착각을 줄 수 있고, 거리에 차량이 많은데 차량이 없는 듯 속여서 사고를 나게 만들 수 있다. 누군가 내 시야를 해킹했다고 속여도 해킹된 시야가 진실로 바뀐다. 모든 것이 편해진 디지털 세상의 빈틈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아만다, 즉 노네임은 실력이 뛰어난 해커다. 아무도 그녀를 기억하지 못하고, 그녀는 눈에 띄는 것을 싫어한다. 그런데 누군가 노네임의 고객들을 죽인다. 그러면서 노네임이 죽인 척 꾸미고, 경찰은 노네임을 잡기 위한 수사를 벌인다.


노네임과 살


#신선한 소재와 다르게 너무나 많은 빈틈


소재는 신선했지만, 풀어내는 방법에 빈틈이 많았다. 노네임인 아만다가 범인이 아니라는 것은 우선 누구나 알지만, 범인이 범인이어야 하는 시간대가 맞지 않는다. 그저 흘려지나가기에는 너무나 큰 논리적 결함이 아닐 수 없다.


또한, 너무나 쉽게 갈등이 해결된다. 위험스럽긴 하지만 크게 위험은 없다. 잘 짜인 극본처럼 문제가 해결되었고 발달된 기술에 비해 문제 해결이 너무나 쉬웠다. 결국 디지털 시대에서 해결하는 방법은 '아날로그'적인 방법이었다.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는 알겠지만, 이를 풀어내는 방식에서의 깊이가 조금 부족하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그러나 소재 자체는 마음에 들었다. 첫 시작도 굉장히 논리적이었고, 미래의 모습이 합당했다. 기술이 많이 발전했으면서도 크게 발전되지 않은 세상의 모습이 더 적응하기 편했다. 영화도 꽤 선정적이어서 자극적인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나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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