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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콘 Aug 08. 2018

119를 불렀다.

날 위한 119는 어딨을까

 겨울이었다. 온 몸으로 두꺼운 옷을 둘러도 추운 계절의 주말, 잔뜩 옷을 꺼내입고 주차장으로 향했다. 겨울 새벽의 운동은 춥지만, 뛰고나면 상쾌함이 가득했다. 찬 공기 사이로 열이 나는 기분을 느끼는 것이 좋아서 새벽 축구를 빼먹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차에 타려고 하는 순간 가까이에서 고양이의 울음 소리가 났다. "야옹~" 평소라면 동네에 길 고양이가 많은 것을 감수해서 그냥 지나쳤을텐데 그 날은 느낌이 묘했다. "야옹~" 아련하고 외로운 작은 고양이의 울음소리가 너무나 가까이서 났다. 차 주변을 돌고, 차 아래를 살펴도 고양이가 보이지 않았다. "야옹~" 차 바닥을 살피다 고개를 들었을 때 드디어 목소리의 주인과 눈이 마주쳤다. 주먹보다 작은 고양이가 자동차 본네트 안 어둠 속에서 형광의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고양이랑 눈이 마주치는 순간, 한숨부터 나왔다. "이놈아, 거기가 어디라고 들어가냐." 본네트를 열고 고양이를 잡으려고 했는데, 이 놈이 손을 피해서 더 깊은 곳으로 숨어 버렸다. "요놈아, 형 운동가야하는데..." 한숨을 쉬면서도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아마도, 추웠을 것이다. 매우 추운 겨울 바람에 몸을 따뜻하게 숨길 곳도 없었을 것이다. 잠도 제대로 못자다가 추위를 피할 곳을 찾다가 아마도 차를 발견했을 것이다. 형이 일 때문에 늘 해가 뜨기 직전에 집에 오는데, 아직 따뜻한 차 온기에 작은 구멍틈으로 몸을 비벼서 들어갔을 것이다. 아마도, 엄마의 품이 생각났을 것이다. 아직은 엄마 고양이의 보살핌이 필요할 만큼 작은 아이였다. 아무래도 손을 대면 더 멀리 들어갈 것 같아서, 119를 불렀다. 이런일도 불러야하나 싶었지만 굉장히 친절하게 대응해주셨다. 20분 정도의 시간이 지나고 대원 두분이 오셔서 상태를 보았다.



 "허허, 이녀석도 많이 추웠나 봅니다." "네에, 그런거 같아요." 멋쩍은 웃음을 지으면서 춥고 이른 시간에 불러서 죄송하다는 인사를 여러번 했다. "겨울철에는 종종 있는 일입니다. 허허" 대원들은 매우 자연스럽게 도구를 이용해서 작은 고양이를 빼내었다. 어떻게 하실거냐는 말에 "키울 능력이 안됩니다. 데려가 주세요." 인사를 전했다. 잘가거라 이른 아침의 손님아.

추위, 외로움, 고독이 두려운 어린 고양이는 차 본네트의 작은 구멍에 몸을 비벼서 따뜻함을 찾았다. 혼자가 오래되면 고독해지고 두려워진다. 세상에 나밖에 없을 것 같은 두려움, 혼자 남겨진 것만 같은 고독함이 마음을 약하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아직 온기가 남은 엔진을 찾아서 들어왔을 것이다. 사람도 다를게 없지 않을까. 


 아무렇지 않은 척 웃어도 마음 한곳에서는 공허한 그림자가 웃는 만큼 길어지고 커진다. 허무가 마음을 다 감싸는 날이면 어디든 따뜻하게 품어줄 무언가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119를 부를 수도 없다. 제 마음이 공허하고 차가워집니다. 구해주세요. 할 수가 없다. 맘 놓고 전화를 해서 부를 사람도 없는 날이면 더욱 고독해진다. 온 밤의 정적이 마음을 감싸고 혼자 남은 것 같은 생각에 우울해진다.

 마음이 약해져서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도 있고, 마음이 외로워서 어긋난 사랑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곁에 누군가가 있어줬으면 하는 외로움에 선택의 폭이, 시야가 작아질 수 있다. 그 누가 나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어딘가에 늘 119처럼 도움이 필요할 때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 그런 사람이 있다면 늘 감사하고 고마워해야 한다. 날이 추워질 때 뿐이 아니라 일상적인 어느 날에도 마음이 외로워질 때 따뜻한 온기가 필요할 때, 같이 오뎅탕에 소주라도 한잔 할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 인생에 계속해서 남아주면 좋겠다. 119 대원들처럼 허허 웃으면서 넉살이라도 떨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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