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감한 얼굴의 의사에게 물었다
선생님, 약은 얼마나 먹어야 하나요
그냥 정말, 내 입이 알아서 움직였다.
내가 질문을 했다는 걸 인지하기도 전에 질문을 끝맺었다.
의사는 잔인하리만치 무감한 얼굴로 말했다.
그건 보장할 수 없구요, 그냥 영양제 먹듯이 먹어야만...
그 뒤는 잘 기억이 안 난다.
그렇군요.
이제 그만 와야겠다
하고 다짐했을 뿐이다.
집에 가려고 버스를 기다리는데 정말 하늘이 잿빛이었다
분명 맑은 날씨인데, 잿빛 가루가 날리는 듯 했다.
가망도 희망도 없네.
어떡하지, 하는 생각도 안 들었다.
그냥.
그냥 망했네.
더 망칠 거 없나.
아 힘들어.
집 가서 잠이나 자야지.
했다.
당시엔 그 누구도 내 얘기를 들어 주지 않았다.
난 그 사실을 충분히 인지했지만, 딱히 큰 동요를 느끼지 못 했다.
그냥 그렇구나.
놀라울 것도 없었다.
그냥.
그냥 멍하게 살았다.
하루종일 멍하니 살았다.
갑자기 내 세상만 페이드아웃 되는 느낌.
흑백의 진공 상태가 되어 버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느낌.
오히려 소리라는 개념이 방해가 되는 세상.
큰 절망도 희망도 없다.
그냥 흑백으로 산다. 영원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