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서 살 것인가

양계장에서 독수리가 나오지 않는다.

by 풍요로움

왜 우리 사회의 모든 것은 저마다의 개성이 존중받지 못하고 단 하나의 모습을 향해 가는 것일까? 획일화되고 정형화된 사회적 틀에 대한 문제제기가 <어디서 살 것인가>이다.


1장 양계장에서는 독수리가 나오지 않는다.

대한민국에서 창의적 인재가 나오지 않는 이유가 교도소와 같은 학교 건물 때문이라는 것이다. 오래도록 변함없이 상자 모양의 4~5층 건물과 대형 운동장을 고수하는 학교 건축은 너무나 획일적으로 거대하다. 이 같은 곳에서 창의성을 기대하는 것은 닭에게 독수리로 자라라고 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요즘에는 학교 건물에 빈 교실이 많다고 한다. 그곳을 이용해 테라스라도 만들고 빈 교실이 없는 학교는 옥상을 개방해야 한다고 작가는 제안하고 있다. 하다못해 교무실이라도 4층으로 옮기고 1층은 아이들의 공간으로 내주어야 한다고, 다양한 공간에서 창의와 창발이 꽃피울 수 있으니 말이다. 모두가 똑같은 공간에서 생활한다면 전체주의적 사고만 자랄 뿐이다. 조금만 튀어도 관종이 되고 서로를 견제하는 사회는 비극이다. 모든 아이가 특별해지고 서로를 부추기는 세상을 건설하는 데 기본이 되는 것은 학교 건물이라고 생각한다고 공간이 사람을 만들기에 그렇다고 작가는 말하고 있다.


그러니 아이들에게 자연을 허하라! 수렵채집 시대를 거쳤던 사피엔스는 본능적으로 자연을 좋아한다.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사는 동물만이 뇌가 발달한다. 미디어의 발달로 실내에 갇혀있는 인간의 뇌를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이제는 공간에 대한 다른 생각, 다른 시선을 가져야 한다.

일본 도쿄의 후지 유치원은 가운데 정원을 품고 있는 도넛 모양의 건축물이다. 중앙 정원과 교실이 연결되어 아이들이 온종일 뛰어다니며 스스로 공간을 구성하는 놀이의 즐거움을 만끽한다. 우리도 이제 변신이 필요하다. 유현준 교수는 몇 곳의 학교를 대상으로 건축의 가치를 구현하는 중이라고 한다.


2장 밥상머리 사옥과 라디오 스타에서는 해외의 내로라하는 천재들이 어떤 건축물에서 탄생했는지 살핀다. 사실상 우리 사회에서 권력의 위계가 가장 많이 드러나는 곳은 사무실 공간이다. 말단 사원은 입구 쪽에 앉아 있고 부장은 창문을 등지고 앉아 사무실 전체를 감시할 수 있는 곳에 앉아 있다. 층간 소통은 전무하다. 30층 회사라면 30 등분되어 있는 샘이다. 이런 구조에서 공공의 공간이라 할 곳은 탕비실 정도다. 전망 좋은 곳에 아일랜드식 탁자라도 마련해서 서로 얼굴을 마주 보고 차라도 한잔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걸어서 나갈 수 있는 정원이 있다면 더욱 좋다.


정형화된 아파트 실내도 바뀌어야 한다. 아파트에서도 실내복으로 다닐 수 있는 사적 외부 공간을 마련해야 한다. 지금은 모두 똑같은 집에 살다 보니 가치판단 기준이 집값밖에 없다. 친구가 40억짜리 타워팰리스에 살아도 나만의 마당 있는 작은 집이 좋다고 생각할 수 있어야 하는데, 획일화된 가치 속에서는 그것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자존감이 낮아진다. 집값, 연봉, 키, 체중 등 정량적 비교를 하다 보니 모두가 불행해진다.


3장 힙합 가수가 후드티를 입는 이유

현대인이 누릴 수 있는 사적 공간이 점점 부족해지고 있음을 지적한다. 할렘에 사는 가난한 흑인들은 자기만의 공간이 없다. 그래서 자신만의 영역을 표시하기 위해 후드티를 입는다고 하는데 참신한 해석이 흥미로웠다. 권력의 위계와 공간을 보면 그 사람의 제스처가 이해된다. 그리고 사회의 건강지수를 평가하는 척도가 되는 것이 도서관과 공원이다. 사회적 계급이나 경제 수준과 상관없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 도서관과 공원인데 그곳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들어선 사회가 건강하다. 클수록이 아닌 많을수록 좋다. 10만 권 장서를 자랑하는 대형 도서관 하나보다 1만 권 장서를 소유한 도서관 10곳이 낫고 1만 평짜리 공원 하나보다 1000평짜리 공원 10개가 낫다.


6장 파라오와 진시황제가 싸우면 누가 이길까?

발상 자체가 예술이다. 고고학자와 건축가는 비슷한 면이 있다. 고고학자가 화석을 통해 당시를 상상하는 것처럼 건축가도 고대 건축을 보고 그 사회를 상상하고 추측한다. 파라오와 진시황제는 권력의 과시와 생존을 위해 피라미드와 만리장성을 지었다. 그렇다면 누가 더 막강한 권력자였을까? 하는 것이 저자의 예술적 발상이다. 그래서 이 건물들의 거대한 무게를 운동에너지와 위치에너지 공식으로 환산해보니 둘의 힘의 차이가 드러난다. 결론적으로 진시황이 파라오보다 2.3배 강했다. 건축은 종합예술이라서 특별히 학창 시절에 다양한 과목을 강제 수학한 우리나라 사람들은 건축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다. 그래서 건축으로 사람을 이해하고 세상을 판단하는 것도 빠르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건축으로 세상을 바꿔보자고 저자는 제안한다.


우선 서울거리를 모두 걷고 싶은 거리로 만든다면 화목한 서울이 완성될 것이라고 작가는 제안한다. 강남과 강북이 걸어서 연결되는 곳이라면 그 둘의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그곳들을 이질화시키는 주범인 집값 차이도 줄어들 것이라고 한다. 그러니 서울숲과 로데오거리, 강남과 강북이 이어지는 보행자 다리를 만들자고 제안한다. 서울의 모든 구역이 핫플레이스가 되게 하는 것이 저자의 목표다.


이 책의 가치를 이해했다면 이제 우리 스스로가 나만의 공간을 발견할 차례다. 우리는 행복을 추구하는 존재들이다. 어떤 공간이 나를 행복하게 하는지 그 공간의 이름을 만들어보고 아주 소소한 것에서부터 공간의 혁신을 실천해보는 건 어떨까?


초, 중, 고 건물들은 정말 구치소와 비슷하다. 담장이 있는 대표적인 건축물, 담을 넘으면 큰일이나 날 것 같고 전체주의적인 사고를 할 수밖에 없는 곳이다. 두 건축물이 같아 보인다는 생각을 왜 미처 하지 못했을까?

학교는 시험으로 평가하고 모든 것엔 정답이 있다고 가르친다. 하지만 항상 정답을 요구하는 사회는 발전할 수가 없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사실 정답이 없다. 다양한 관점에서 답을 찾아봐야 한다. 12년 동안 모든 것엔 정답이 있다는 사고로 세뇌당하면 창의적인 생각을 할 수가 없다. 답이 있고 반복되는 것들은 AI가 대체될 것이고 창의적인 사고를 가질 수 있는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할 때 행복감도 느낄 수 있는데 똑같은 사고와 정답을 요구하는 학교교육과 비슷한 구조의 학교 건물과 아파트에서 사는 우리에게 창의적인 생각과 발상이 나오기를 기대하는 것은 양계장에서 독수리가 나오는 것을 바라는 것과 다름없다.


유현준 교수는 학교 건축물만 자유로워도 생각이 달라질 거라고 한다. 빌딩으로 꽉 찬 도시보다는 탁 트인 공원이 많은 도시가 행복지수가 더 높다고 한다. 정답보다는 나에게 맞는 답을 찾아가도록 생각하게 해 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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