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가 운 사연

(가족소설) 다자녀 가장의 삶에 관하여

by 가리느까

여러분 가정에서 TV 리모컨은 누구 차지인가요?

우리 집은 (초4) 막내 아이입니다.

'EBS2'에서 어떨 때 어린이 프로를 한 주간 모아 보여줄 때가 있는데 그때는 채널 이동 금지입니다.


자녀 교육을 위해 유선이나 케이블 TV 넣지 않았습니다만, 뉴스나 스포츠 방송도 마음대로 못 보는 편입니다.

내가 중3 때였던가, 주말에 '유머 1번지'인가 무언가 하던 TV프로그램이 끝날 무렵에 팝 칼럼니스트 김광한 씨가 나와 해외가수 뮤직비디오를 아주 찔끔 보여주고는 했는데요(그때는 공중파가 전부였음).

그때 아버지는 TV 바로 앞에서 혼자 바둑 두며 타 방송 드라마를 틀어놓은 채 귀로만 듣고 계셨습니다.


그때-1980년대 중반-만 해도 '공부(해야)하는 학생이 무슨 TV야' 하는 묵시적이고도 사회적인 분위기가 팽배할 때라 '감히' 아버지가 보고 듣고 계시는 TV의 채널을 돌리는 '만행'은 상상도 할 수 없었지요.


아버지 옆에서 쭈뼛대며 살그머니 리모컨을 집으려는데 마치 호랑이굴에 들어가 먹이를 훔쳐 나오는 듯한 긴장감이 들었던 기억이 있는데요.

한 번은 결국 성공하지 못해서(그날 듀란듀란의 'The Replex'가 나왔습니다) '형과 함께 쓰던' 방에서 베개에 머리 처박고 운 적도 있습니다.


다시 40년(2025 - 1985) 후로 돌아와서, 평소에 TV로 뉴스 정도만 보는 편인데, 막내 아이에게 타박을 듣습니다.

어느 날, 뾰로통해 있는 막내 아이를 제쳐두고 스포츠 뉴스를 보는데 이제는 미국에서 뛰는 '리오넬 메시' 기사가 나왔습니다.

축구에 관심 없는 아이들도 메시가 뭐 하는 사람인지 정도는 알고 있지요.

한참 뉴스에 빠져 있을 때, 막내 아이가 물었습니다.

"메시야?"

게임 말고도 아이가 관심 가지는 분야가 있다는 것이 기특해서 말끝을 한껏 올리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 아들. 메시도 알고~ (좋아)."

그랬더니 갑자기 아이가 외쳤습니다.


"몇 시냐고!"



스포츠 뉴스 언제 끝나냐는 막내 아이의 호령에 그날 태평양 너머 사는 메시는 울었다고 미국 특파원이 비공식으로 전해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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