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우리가 먹은 무언가로 시작된다

by 채진아

아는가? 김치의 최적 발효 타이밍을. 김장 후 김치통에 빈틈없이 들어간 김치는 더욱 빨갛게 무르익어 발효되어 간다. 한 달 뒤 김치냉장고에서 무거운 김치통을 두 손으로 옮겨 뚜껑을 열면 톡 쏘는 냄새가 난다. 김치 한 포기를 손으로 돌려 김칫국물에 면해 있는 쪽으로 배추를 돌리면 빨간빛으로 윤기가 흐르며 어서 먹어달라는 듯 관능적인 자태를 뽐낸다. 나는 촉촉하게 젖은 배춧잎을 엄지손가락과 집게손가락을 이용해 뜯는다. 뜯은 배춧잎을 반으로 찢어 한입에 먹기 좋게 돌돌 말아 입으로 넣는다. 그때의 김치는 냉장고에서 갓 나온 시원함과 아삭한 식감으로 인해 감칠맛이 가장 잘 살아 있다. 나는 이맛살을 찌푸린다. 너무 맛있는 맛을 보면 짜증이 난다는 걸. 나는 엄마에게 어떻게 김치를 만들었는지 물어보지 않는다.

김치와 쌍벽을 이루는 엄마의 음식이 하나 더 있는데 그건 오이지다. 여름에 담근 오이지는 동치미 역할을 대신한다. 공장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잠시 쉬러 사무실에 들어온 아빠는 엄마의 오이지를 찾는다. 초록과 밝은 연둣빛을 띠고 있던 오이는 엄마의 손에서 절여지면 서서히 올리브색으로 변한다. 흐물흐물해진 오이는 새큼달큼할 뿐 여전히 아삭아삭한 식감을 자랑한다. 절인 오이지를 썰어 물에 담가놓으면 달콤한 신맛이 물에 베면서 동치미 역할을 하는 것이다. 아빠는 국그릇에 엄마가 담아 놓은 오이지 물을 시원하게 들이켠다. 식당에서 나오는 동치미만큼 그 맛은 끝내준다. 엄마 또한 본인의 음식이 맛있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오이지 국물을 꿀꺽꿀꺽 들이켠 엄마는 말한다.

“아우, 오이지 진짜 맛있지 않니?”

나는 엄마에게 물어본다.

“오이지는 어떻게 절이는 거야?”

“딱 세 개 들어가. 설탕, 식초, 소금.”

“그래서 비율이 어떻게 돼?”

“소금을 제일 많이 넣고 식초는 그것보다 덜 넣고 설탕은 식초만큼 덜 넣어. 소금이 제일 많이 들어가.”

엄마의 음식은 항상 이런 식이다. 오랜 경력에 축적된 비율에 대한 감이 엄마 요리의 전부다. 그걸 들은 나는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다. 엄마가 밑반찬을 만들 때 종종 나는 옆에서 지켜본다. 우리 집에 주기적으로 밥상 위에 올라오는 것은 진미채 볶음, 메추리알 장조림, 무생채, 콩나물무침, 그리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반찬인 꽈리고추 조림이다. 엄마의 손에서 일정하게 요리되는 음식들이다. 내가 음식을 하려 네이버 블로그를 열심히 뒤적거리고 계량기를 꺼내는 조금은 졸렬하고 부산스러운 준비를 할 때 그녀의 레시피는 무심하면서도 툭툭 망설임이 없다. 김치만두를 만들 때도 내 몸통만 한 스테인리스 그릇에 만두 속을 만드는데 고기를 얼마큼 익혀야 하는지 두부를 얼마나 짜야하는지 손끝에 스치는 감으로 그 무자비한 양의 만두 속을 만드는데 그 맛은 또 얼마나 기가 막힌 지. 휘적거리고 뒤적거리며 그녀의 민첩한 손놀림으로 만두는 완성된다. 그 모습은 때론 우아하고 마법적이다.

그런 완벽해 보이는 그녀의 요리에도 심심하고 싱거운 맛이 날 때가 있는데 그건 건강함을 생각한 그녀의 적지 않은 노력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우리의 건강을 생각해 짜지 않고 자극적이지 않은 음식을 만들려 심혈을 기울인다. 그로 인해 간이 덜 배 밍밍한 맛이 날 때도 있다. 예를 들면 우엉을 조릴 때 물엿을 거의 넣지 않아 쫀득쫀득하고 달콤한 맛이 없으며 간장도 간을 덜 해 우엉은 연한 갈색을 띤다. 떡볶이는 양배추와 당근, 양파를 넣어 떡이나 어묵보다 채소가 더 많아 이게 떡볶이인지 채소볶음인지 헷갈릴 정도다. 간은 아주 삼삼하여 떡볶이를 먹고 난 후에도 더부룩한 느낌이 없다. 그런 요리 앞에 우리가 조금은 아쉽게 저녁을 먹어도 엄마는 건강한 요리를 해줄 수 있음에 뿌듯함을 느낀다. 김치냉장고 위에 쌓인 간식들은 또 어떤지. 양파를 품은 메밀 칩, 두부와 인절미 과자 같은 한 입 먹어도 건강한 맛임을 바로 알 수 있는 과자들이 가득하다. 또한 엄마는 달달한 커피를 좋아하는 아빠를 나무란다. 그렇게 달게 먹는 커피는 몸에 좋지 않다는 것이 엄마의 신념이다. 엄마는 물을 좋아하지 않고 음료와 커피를 좋아하는 아빠 때문에 '건강 스무디'를 만들어 놓는다. 시판용 과일주스 대신 토마토와 바나나를 갈아 놓거나 얼린 블루베리와 바나나, 그리고 귀리 가루와 견과류 한 주먹에 우유와 물을 부어 만드는 블루베리 스무디는 아침 단골 메뉴다. 엄마는 내게도 집에서 이렇게 스무디를 만들어 먹으라며 냉동 블루베리와 호두, 아몬드, 마카다미아가 들어있는 견과류를 사주었다. 나는 엄마에게 배운 ‘건강 스무디’를 만들어 달걀부침과 함께 구름이를 위한 아침 식사로 내놓는다.

그녀가 끼니를 챙기는 일은 집을 벗어나도 계속된다. 어렸을 적 큰 돔형 텐트와 자동차, 그리고 그녀가 챙겨 온 음식들로 우리의 여행은 시작되었다. 여행을 가는 건데 이것저것 우리의 끼니를 책임지기 위해 챙기는 것들과 해야 할 일이 많았다. 큰 아이스박스에는 일회용 젓가락과 일회용 알루미늄 접시, 무생채, 오이지 같은 반찬들 그리고 과일과 과자가 가득 들어있다. 그 많은 준비물 때문에 그녀는 한두 가지를 꼭 빼먹고 만다. ‘어머, 과일을 깎아야 하는데 칼을 안 가지고 왔네.’ ‘제일 중요한 소금이 빠졌어.’ 결국 빼먹고 온 실수는 엄마 탓이 된다. 너무 챙길 게 많아서 그랬던 건데. 가족을 거느린 여행을 떠날 때면 엄마는 집을 떠난 뒤에도 제대로 쉰 적이 없다. 가족들이 다 먹는 중에도 부산스럽게 준비할 게 많은지 도통 자리에 앉을 생각을 안 한다. 그렇게 땀을 뻘뻘 흘리며 모든 식사 준비를 마친 뒤 맨 마지막에 앉아 엄마는 말한다. ‘그래도 잘 먹어주니까 엄마는 행복해.’

언제고 엄마 생일날 밀푀유나베와 스테이크 큐브를 해준 적이 있었는데 그 두 가지 음식을 하는데도 언니와 나는 요란하고 부산스러웠다. 생일 밥상을 받아 든 엄마는 어떤 생일날보다 가장 기뻐하는 모습을 보여줬는데 그 기뻐했던 일을 게으른 나는 단 한 번밖에 해주지 못했다. 누군가가 나를 위해 밥을 차려준다는 건 너무도 고마운 일이다. 요리를 한다는 건 소중한 이를 위한 사람이 아니고서는 할 수 없다. 그걸 나는 사랑하는 누군가의 끼니를 챙겨줘야 하는 노동 속에서 알았다. 너무나 마땅한 일처럼 보여 굳이 칭찬하거나 수고했다고 말하지 않는 일. 하지만 누군가는 꼭 해야 하는 일. 그 일을 엄마는 늘 당연하게 해냈다.

결혼한 지금도 그녀는 내가 집으로 돌아갈 때면 먹을 것을 챙겨주기에 바쁘다. 이마트에서 유통기한 날짜가 얼마 남지 않은 반값 할인으로 사 온 우유-유통기한이 지나도 일주일 안으로만 먹으면 괜찮다는 게 엄마의 지론이다-시장에서 사 온 손두부, 오이무침, 파김치, 나박김치 따위를 박스 상자에 가득 실어준다. 그러면 텅 비어 있던 집 냉장고는 풍요를 맞는다. 그녀가 챙겨준 음식들로 하루를, 한 끼를 더 든든하게 채운다. 하루 중 가장 중요한 일. 잘 먹는 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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