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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초툰 Jun 13. 2024

1인 호텔, 그 시작

다시 만난 오페라

 로비에 도착하자. 션은 기다렸다는 듯 나를 아무도 없는 프론트 데스크를 지나 구석에 위치한 방으로 나를 안내했다. 문 앞에는 '어디서나, 언제나, 당신과 함께'에 줄임말이라며 '어언당'이라는 푯말이 걸려 있었다. 부서 이름도 참 예스럽네 싶었는데 문 밖으로 들리는 대화 내용이 더 구수했다.


"아니 순자야. 미자 어디 갔어?"

"언니! 어제 미자가 말했잖아~퇴사하면 말년은 실버타운에서 보낸다고."

"그랬시냐? 기억이 안 나는데..."

"언니도 참. 그래 이 참에 치매 검사 좀 받아봐. 깜빡깜빡하는 게 예전 같지 않아!"

"예전 같지 않은 게 한 두 개냐 이년아? 피부는 아주 짱짱한데, 속은 이미 문드러졌어. 어디 까서 보여줄까?"

"아이고 언니가! 누가 늙은 이 속살 보고 싶다야? 저리 치워! 깔깔깔" 


꺄르르르 웃는 소리가 문을 타고 넘어왔다. 분명 목소리는 소녀처럼 맑고 청량한데, 내용이 어딘지 목소리와 이상하게 섞이지 않았다. 순자와 미자? 아직도 그런 이름을 쓰는 사람이 있나 싶었지만, 이름은 뭐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니니까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들자, 열리는 문 틈 사이로 두 명이 까르르 박수를 치며 웃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끊이지 않는 그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총지배인 션은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아무 전화도 울리지 않는 조용한 방. 그게 어언당의 내 첫 인상이었다. 내가 낸 발걸음 소리가 방 안에 가득 울릴 정도 였으니까. 그 소리에 놀란 두명의 여자가 나를 향해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들의 미소에 나는 왜인지 모를 기시감이 느껴졌다.


'분명 어디서 본 것 같은 것 같은데....'

 

6명은 앉을 수 있는 넓은 라운드 테이블에 30대 초반이라고 해도 믿을 것 같은 하얀 피부에 짧은 머리에 빠글거리는 파마를 한 여자분과 검은색 긴생머리에 갈색 뿔테 안경을 쓴 여자분이 눈에 들어왔다. 빠글거리는 파마를 한 분이 먼저 말을 꺼냈다.


"아~신입?"

"네, 끝순님 신입직원 유라씨에요"

 

 총지배인 션이 나를 끝순님에게 소개했다. 나는 어떨결에 그녀의 손을 잡았다. 용광로보다 더 뜨거운 피가 흐르는 지 끝순님이 손은 방금 구운 붕어빵을 잡은 것처럼 뜨거웠다. 그런데 이상하게 직원이라고 하기엔 총지배인에게 말끝이 짧았다. 여기 문화인가? 싶었는데, 갑자기 끝순님 옆에 앉아있던 여자분이 마치 기다려 라는 명령어를 듣고 기다리다가 먹어 라는 말에 먹이를 향해 달려드는 말티즈처럼 왈칵 나를 껴안았다.


"어짜쓰까, 이렇게 애기가 일을 한데?"


다시 신기하다는 듯, 내 얼굴을 요리조리 쳐다보더니, 방갑다며 다시 나를 껴앉았다. 순식간에 나는 동물원에 처음 온 동물 같이 느껴져 몸이 굳어버렸다. 의례 호텔이라고 하면, 신입이 와도 뒤를 돌아보지 않고 자기일만 여념인 곳 오히려 신입 직원이 오면 자기 자리를 빼앗길까봐 경계가득한 인사를 하는 곳이었다. 하지만 다른 분위기에 순간적으로 몸이 얼었다고 해야 하나? 다행히 그만하면 됬다며 끝순님이 나에게서 반가워 꼬리치는 순자님을 간신이 떼며 말했다.


"아이구 그만 유난을 떨어. 그러다가 우리 후임자 출근도 하기 전에 도망가겠어~"

"그런가? 하도 오랜만에 신입이라서...나도 모르게."


후임자? 순간 난 그들의 미소가 왜 기시감이 든건지 떠올랐다. 퇴사 하루 남은 사람이 지을 수 있는 미소. 내가 직전 지었던 미소였다. 퇴사를 하면 보통 세가지 감정이 든다고들 한다. 처음에는 드디어 말했다는 기쁨, 그 다음엔 내가 여기 나가서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 또는 그냥 다시 다닌다고 할까?후회 하지만 꼭 마지막은 새벽 지옥철 열차에서 탈출하는 행복감. 그들의 미소는 분명 마지막을 가르키고 있었다.


"후임자요?"


당황한 나의 모습에 그들은 "얘 아무것도 모르잖아?"라는 표정으로 갑자기 자기끼리 속삭이더니, 황급히 싸놓았던 꽃무늬 장바구니를 어깨에 메기 시작했다. 그리고 끝순님이 먼저 나에겐 턱하니 옛날 전화번호부 같은 낡은 책을 건낸 뒤 내귀에 조용히 속삭였다.


"수고혀~그리고 션! 서울역 3번 출구 앞이야. 잊지마!"


순자님은 나에게 징끗 윙크를 보내더니 끝순님을 따라나섰다.사라지는 그들을 막지도 아무말도 못하고 있는 나를 보고 션이 안타깝게 말을 건냈다.


"호텔이 문을 닫는 줄 알고, 직원들에게 퇴사 통보를 했더니 다들 좋다고 관광버스를 대절했데요. 죽기전에 국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고 싶다고. 그래서 다시 직원들에게 차마 호텔이 문 연다는 사실을 말하지 못했어요. 저렇게 좋아하는 얼굴에 대고."

"그렇다고...저 혼자 어떻게 일을 해요?"

갑자기 벌어진 일에 식은땀이 목줄을 타고 흘렀다. 

"혼자라뇨? 저도 내일까진 있는데, 아 유라씨는 걱정할 것 없어요. 어차피 사장님은 폐업 직전의 호텔로 인해 국가 지원금을 받고 싶은거라. 우리는 굳이 수익을 내지 않아도 돼요. 이렇게 해봤는데 안됬다고 보고만 하면 끝이죠." 

"내일까지라고요?"

"사실 저도 그 관광버스 여행에 초대되어서, 그런데 정말 아무것도 아니예요. 폐업할 뻔한 호텔에서 무슨 할 일이 있겠어요. 유라씨는 그냥 앉아있다가 월급만 받으면 돼요. 심지어 작년에 계획해 둔 예산도 남아서, 여러가지 시도도 해봐도 돼요. 왜 그.. 호텔에 다닐때 해보고 싶었던 거 있을거 아니예요."

"하지만 저 혼자 어떻게..."

"어차피 통합 시스템도 다 유라씨가 다니던 호텔에서 쓰는 시스템이고, 예약도 없어서 끝순님이 주고 간 책도 필요 없을거예요."

 

나는 물끄러미 끝순님이 나에게 투척하고 간 책을 바라봤다. 겉표지에는 검은색 매직펜으로 오페라라는 한글이 적혀 있었고, 눈 대중으로 봐도 다 손으로 직접 적은 것처럼 군데군데 볼펜 똥이 묻어 있었다.


"아시잖아요? 오페라 시스템! 단축키 기억나시죠?"

 

총지배인 션은 양손을 모았다 피는 흉내를 내었다. 그의 행동은 뭐랄까. 아직 묶지 못한 개똥을 담은 똥주머니를 나에게 황급히 투척하는 것처럼 다급해 보였다. 나는 분명 여기서 도망가야 했다. 하지만 갑자기 오페라라니. 갑자기 떠오르는 기억에 손등이 따끔 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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