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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연 Feb 11. 2022

열심히 해봤자 칭찬밖에 더 듣겠어?

지금 마침 슬럼프가 왔거든요



 난 한때 농구의 광적인 팬이었다. 물론 하는 것이 아니라 관전에 관심이 많았다. 요즘엔 내 관심사가 아이돌 가수에 있지만, 그때는 농구시즌이면 늘 농구장에서 살았다. 그중 하나의 팀을 좋아했지만, 다른 팀들의 경기도 빠짐없이 보며 마치 내가 농구 감독 같은 느낌으로 선수들에게 충고까지 아끼지 않았다. 물론 아무도 듣지 않았겠지만 말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참 열정적인 사람인 것 같다. 뭐 하나에 빠지면, 좀처럼 헤어 나올 수 없다. 하지만, 무언가에 열정이 있다는 건 참 좋은 일 아닌가? 덕분에 아이들과도 소통을 잘 하고 있으니 말이다. 요즘 딸과는 아이돌 가수에 대해, 아들과는 래퍼들에 대해 대화하는 중이다.



 


 한참 농구에 빠져있을 때쯤, 나는 지금 아이돌에 빠져있는 것보다 훨씬 더 의욕적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팀의 경기를 보기위해 먼 경기장까지 다녔고, 경기장에 갈수 없거나, 티비에서 중계를 하지 않는 상황을 고려해 모 스포츠 사이트에 유료회원으로 가입도 하며, 그것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우리 가족들 중 아무도 스포츠에는 관심이 없지만, 이런 나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집에서는 농구시즌에는 티비가 내 차지가 되기 일쑤였기 때문에 가족들은 직접 관람하기를 더 바랬을거다. 그러던 이후, 어느 가수를 좋아하며 농구는 내 관심 밖이 되었다. 내게 농구라는 건, 한순간에 바뀔 수 있는 열정에 대한 낭비은 거였다.


 생각해보면 누군가를 사랑할 때도 마찬가지 아니었을까. 나의 사랑은 늘 그랬던 것 같다. 실속 없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집착 같은 것 말이다. 사랑에 늘 열심이었지만, 열심히 한 만큼 사랑은 더 멀어지는 것이다. 비단 사랑이 아니어도 무언가에 집착하는 상황에 바람직한 결과는 없다. 어느 날, 열심히 하는 무언가를 내려놓고자 마음먹었을 때, 나는 조금이 아니라 전부를 내려놓게 되었다. 나는 중간이 없는 사람이었다. 뭐든 중간의 위치에 있다는 건 어쩌면 최고의 자리에 있는 것보다 자기관리를 잘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봤다. 무언가에 빠져있을 때, 그 마음의 반대방향으로 가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알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특히나 어른들은, 열심히 하면 성공할거라 말하지만, 열심히 하면 성공한다는 말의 인과관계를 명확히 설명할 만한 근거는 없다. 내가 열심히 하는 일이 열심인지, 집착인지를 구분 지을 만한 명확한 선을 알 수 없는 것처럼. 우리는 무언가에 집착하고 있는 것에 열심인지도 모를 일이다. 뭐든 열심히 한다고 다 되는 건 아니다. 열심히 하면 칭찬밖에 더 듣겠나? 그 칭찬이라는 것도 누군가가 보기에 그럴듯한 일이어야 그렇다. 나 혼자 빠져 열심인 일에는 칭찬도 듣지 못하는 일이 대부분일 것이다. 어느 순간 열정 가득했던 일에 허무한 마음이 들 때는 잠시 뒤를 돌아보는 것도 좋다. 아니, 차라리 뒤로 걸어보자. 남들보다 뒤쳐진다는 두려움을 극복해냈을 때, 우리는 더 나은 방향으로 갈 수 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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