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플 땐 웃어 봐

20화

by 김소연



요즘엔 거의 덜하지만, 드라마나 영화의 단골 소재였던 그 시절 주인공은 늘 불치병에 걸리곤 했다. 그 불치병에 걸린 주인공들은 얼마나 예쁘고 청순한지 보기만 해도 마음이 짠해졌는데, 어린 나이엔 불치병에 걸리면 예뻐지는구나 생각했다. 어린 시절 나의 꿈은 불치병 환자였고, 중년이 된 나는 불치병 환자가 되었다. 어린 시절의 꿈을 이뤘다고 해야 하나. 하지만, 예뻐지는 건 아니었으니 내 꿈은 참 부질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바라던 일도 시간이 지나보면 부질없는 일이 되나보다.


어느 날인가. 한창 무기력하던 나는 가까운 사람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 ‘너는 참 의지력이 약한 사람이라고.’ 그 말에 나는 화를 내지 못했다. 그 말이 진실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의 말이 나를 화나게 하기 위해서였는지 진심이었는지는 궁금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의 말처럼 나는 의지력이 약한 사람일지도, 그래서 주변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는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답을 찾기 위해 여러 날을 방황했으나 그에 맞는 답을 찾는 그 과정에서까지 나는 무기력했다. 그 이후 어느 날인가 기면증이라는 병을 진단 받 때까지 나는 늘 무기력한 명을 일삼았다.


보통 사람들은 마음이 아프면 몸이 아프기 마련이지만, 어떤 사람들은 몸이 아파서 마음이 아프기도 하다. 참 변명 같은 말이지만, 사실이다. 나는 마음이 많이 아픈 사람이었다.




우연히 내 무기력에 일침을 가한 그에게 반항이라도 하고 싶었는지, 나는 의심만 했던 그 병을 증명하기로 했다. 그 일은 생각보다 쉬웠다. 용기내어 병원만 가면 되는 일이었다.


기면증이라는 병명을 전해주며 담당의사가 웃었다. 나는 그녀가 왜 웃는지 궁금했다. 대학병원 의사가 환자를 향해 웃는 건 매우 드문 일이지 않은가. 그것도 저렇게 젊고 예쁜 의사가 말이다. 그녀에게 기면증이란 그저 별거 아닌 병이었다. 하지만, 몇 달 후 나는 같은 의사에게 뇌경색이라는 병을 진단 받았고, 그녀의 한결 같은 웃음에 기분이 나빠졌다. 내 병이 그녀 때문도 아닌데 그녀에게 마냥 화를 내고 싶어졌다. 30대의 나이에 뇌졸중 진단을 받은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을 텐데 어떻게 환자 앞에서 저리 해맑게 웃는단 말인가. 앞으로 평생 약을 먹어야 한다면서 말이다. 그때 나는 지금과는 달리 저체중이었다. 그래서 나는 뇌졸중이라는 내 병이 참 억울했다. 내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녀는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제가 처방해주는 약을 잘 복용하면 앞으로 뇌졸중은 물론이고, 심근경색 같은 심혈관 질환도 예방할 수 있으니 정말 다행이죠. 우리나라 사망률 2,3위인 병 때문에 죽을 일은 이제 없는 거예요. 정말 잘 된 일이죠?”


정말 잘된 일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너무 환하게 웃고 있어서. 그래. 저렇게 예쁜 사람이 어떻게 대학교수가 됐는지 알겠다. 그게 바로 긍정의 힘인가 보다. 예전에 본 텔레비전의 한 프로그램에 나온 웃음치료사의 말처럼 말이다.


그 웃음치료사는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불행한 시기에 웃음치료사가 되기로 마음먹었다고 했다. 앞으로 더 이상 웃을 일이 없을 것 같아서. 그렇게라도 웃지 않으면 웃는 방법을 잊어버릴 것 같았다고 말이다.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어서 행복해 지는 거라고. 그 말은 행복하지 않아서 웃지 못한다는 나의 핑계를 탓하는 것만 같았다.


그래, 그때 그녀가 웃어서 참 다행이었다. 그저 별거 아니라고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 같아서. 그녀의 말처럼 죽고 사는 병도 아니지 않은가.



“내가 웃는 건 행복해서가 아니라 행복해지고 싶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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