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꿈은 늘 같은 방식으로 이어진다. 우리가 꿈꾸는 미래의 희망 같은 것이 아닌 그저 잠을 잘 때 꾸는 정말 꿈말이다. 나의 꿈은 잠들때마다 한편씩 새로 이어지는 시리즈물 같다. 난 어제 꾸었던 꿈을 오늘 이어서 꾸기도 하며, '내가 살고있는 세상이 꿈인지, 내가 나비가 되어 하늘을 나는 게 현실인지 구분할 수 없다'던 '장자'처럼, 실제와 꿈의 세상에 대해 약간의 혼돈을 겪고 있다. 어떤 때에는 간혹 현실로 돌아오고 싶지 않을 만큼 멋진 꿈을 꾸기도 하지만, 다시는 잠들고 싶지 않을 만큼의 악몽이 대부분이어서 잠을 자는 건 내겐 너무 가혹한 일이다. 나는 기면증으로 인해 현실과 꿈의 일부를 제대로 인지하고 구분하지 못하는 장애를 겪고 있다. 그러니 내가 사는 세상은 내 꿈처럼 어디든 악몽이다.
최선을 다해야 잠들 수 있는 기면증 환자인 내가 잠들어서 하는 일이라곤 겨우 악몽에서 살아 돌아오는 일이다. 하지만, 그 꿈 속 세상도 나의 세상이며, 나는 점점 더 잠에 집착하게 된다. 잠들려 노력할수록 점점 더 잠이 오지 않으며 그로인해 더 악몽에 시달리게 된다. 내게 주어진 최선의 결과는 늘 상실이었다.
인셉션이라는 영화를 보며 놀란건 디카프리오의 외모가 아니었다. 그 영화는 마치 내 꿈을 화면 속으로 옮겨놓은 듯 했다. 다만 그 영화와 내 꿈의 다른 점은 나는 내 꿈을 조종할 수 없다는 거였다. 꿈의 세계에서 나는 신기하게도 꿈인걸 금세 알아채곤 하지만, 꿈이라도 내 마음대로 조종하려 든다면 오산이다. 타인의 꿈이 아닌 내 꿈도 내 마음대로 조종할 수 없다니 나는 꿈속에서도 참 하찮은 존재이지 않은가.그래도 꿈속에서 나는 늘 최선을 다해 상황을 바꾸려 노력했다.
최선을 다한다는 건 지금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기도 같은 거다. 내 기도를 듣는 누군가가 나를 더 나은 곳으로 이끌어줄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 같은 것 말이다. ‘내가 최선을 다해 잠들어 아침까지 깨지 않는다면, 다음날 내 무기력함이 사라지겠지’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은 근거 없는 믿음. 하지만 내게 주어진 밤이 늘 불면의 밤이었을지라도 희망을 버릴수는 없다.
우리는 최선을 다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지만. 최선을 다한 이후 그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는 알지 못한다. 최선을 다하기 전에 해야 할일은 최선을 다했지만 실패할수 있음을 아는 것과 최고의 자리에서 다시 내려올 수 있는 용기를 갖는 일이다. 최선을 다한다는 건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 아닐수 없다. 결과가 좋으면 좋은 대로 나쁘면 나쁜 대로 바람직하지 않은 결론이 도출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학창시절 모범생이었던 친구들은 시험에 늘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고 걱정했지만 그들의 시험 결과는 비교적 좋은 편이었다. 그때 당시에는 정말 꼴불견이었던 그 아이들은 최선을 다한 이후에 오는 상실감에 대해 알고 있었다. 최선을 다했다는 걸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 이후에 오는 어떤 결과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다는 걸. 그건 어쩌면 최선을 다해도 안 되는 일이 있다는 걸 인정하는 것보다 더 나은 일이다. 인생은 어느 한순간에 끝나는 단거리 달리기가 아니다. 어느 순간도 최선을 다해 살지 않는다면 더 오랜 시간 달릴 수 있는 힘이 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