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 중에 끼어들기를 못해 보복운전을 했다는, 또 간혹 뒤에서 울리는 경적소리에 흥분한 사람들에 관한 뉴스와 영상을 심심치 않게 본다. 사람들은 운전을 하면 용감해진다. 아니 사실은 운전이 문제가 아니라 외부와 분리된 자신의 작은 차 안의 안정감에서 나오는 객기일수도 있다. 도로에서 우연히 옆을 스쳐가는, 차에 타고 있는 나는 내가 아니라 그냥 차일 뿐이다. 도로를 질주하는 차에 운전자의 인격은 없다.
2022년 하이라이트 콘서트
몇 년전 하이라이트(비스트) 콘서트에 갔을 때의 일이다. 크리스마스 즈음 이었던 그날은 너무 추웠고 공연도 늦게 시작해서 거의 밤 11시가 다 되어 끝났다. 게다가 전날 눈이 오는 바람에 바닥은 온통 빙판길이었다. 그 덕분에 내 차를 세워둔 주차자리에서 출구까지 나오는데 거의 한시간이 걸렸고, 서울에서 인천까지 돌아올 생각에 짜증이 나던 참이었다. 그 곳은 사방에 주차공간이 있었기 때문에 합류지점에서 한 대씩 차례로 가던 중이었는데, 어디선가 한대의 차가 차례도 지키지 않고 내 앞으로 끼어들었다. 그때부터 나는 흥분했고 내 입에서는 자연스럽게 험한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학창시절 친구들이 입에 욕을 달고 살 때도 욕 한번 해보지 않았던 나는 운전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분노하기 시작했다. 핑계 같지만, 내가 욕을 하게 된 계기는 다 운전을 하기 시작하면서 부터이다. 그래, 다 운전이 사람을 망치는 거다.
한창 흥분하던 중에 보니 내 앞에 끼어들기를 했던 차 옆으로 플랜카드를 든 팬들이 모여들었다. 빠르게 상황판단을 해본 결과 그 차에는 하이라이트 멤버들이 탔을 확률이 매우 높았다. 그때 나는 날이 너무 추워 창문을 내리지 않은 것과 손이 빠르지 못해 경적을 울리지 못한 것에 너무 감사했다.
그래, 내 욕을 들은 건 조수석에 탄 내 딸 뿐이다. 평소에 잘 웃지 않는 내 딸이 옆에서 박장대소를 하고 있는 것이 조금 마음에 걸릴 뿐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제 3자를 의식했지만, 사실 내가 가장 신경써야하는 건 내 딸이 아니었을까. 가까운 사이일수록 더욱 조심스러운 게 인간관계다. 나는 빠르게 내 무례함에 대해 반성의 시간을 가졌다. 아니 지금 생각해보니 변명이라 해야겠다.내가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 그 곳을 벗어난 후에도 오랜 시간 변명을 늘어놓았으니 말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변명이란 건 참 간사스럽다. 하이라이트 멤버들이 탄 차량이 아니라 그냥 나와 같은 팬이었다면 아마 시간이 많이 지난 지금까지도 씩씩거리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지 않은가.
한적한 거리에서 만난 어떤 차들은 운전이 서툴러보이는 차가 깜빡이를 켜면 더 빨리 달려오고 차 바로 뒤에 붙어 위협운전을 해댄다. 사실 운전이 서툰 그 사람들에게 오히려 더 관대해져야하는 것 아닌가. 그에 비해 차가 너무 막히는 시내한복판에서는 경적을 울리는 사람들이 드물다. 서있는 차에 탄 사람은 쌩쌩 달리는 차에 탄 사람보다 안정감을 덜 느끼는 것 같다. 대통령이 탄 차량이 이동중 일때 신호에 걸려 차가 서있지 않게 경찰들이 신호등 시간을 조정하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 아닐까. 차가 막히는 도로에서는 옆에 있는 차와 잠시 스쳐갈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니 말이다.
생각해보면 차가 없이 만난다면 위협하지도 못할 사람들이 차안에선 다들 참 용감하다. 마치 익명이 보장된 인터넷 안에서 용감하게 막말을 해대는 사람들처럼 말이다. 나처럼 쫄보인 사람도 불특정다수인 상대 운전자에게 막말을 해대니 말 다했다.
우리는 안정된 공간에서 상대적으로 약해보이는 어떤 이에게 간혹 너무 무례해진다. 상대가 누구인지도 모르면서 말이다. 어쩌면 그 차에 탄 사람이 내게 정말 소중한 사람이 될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