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는 어떤 상황에서도 권리와 의무가 공존한다. 그건 인간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일 거다. 인간관계는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작은 사회라는 점에서 가정이나 국가와는 다르다. 그래서 더욱 이 같은 관계에서 책임감을 가져야한다. 하지만, 사실 사람들은 자신이 선택한 사람들을 자신의 이익에 따라 손절이라는 말로 언제든 버릴 준비가 되어있다. 그게 인간관계에서 골머리를 썩게 되는 것보다 더 이익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대부분의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어느 관계에서든 덜 주고 더 받길 원할 거다. 이는 가성비가 좋은 상품을 찾는 우리의 심리와 일맥상통 한다. 헌데, 어떤 상품이 아닌 인간 관계에서 덜 주고 더 받는 관계가 과연 바람직할까.
누군가와의 관계에서 내가 줄 수 있는 건 상대에 대한 배려가 최선이다. 상대에게 배려를 한다는 건 과하게 좋은 것을 주고 상대에게 더 친절 하라는 말은 아니다. 그저, 과한 요구나 하지 않으면 다행인 관계도 있으니 말이다.
자본주의사회에서는 더 가진 자가 더 많은 세금을 내고 복지는 더 못하게 받는 게 당연하지만, 누구도 이에 대해 불공평하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인간관계에서는 상황이 다르다. 내가 여유롭기 때문에 내 감정까지 낭비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평범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내가 준만큼 받고 싶어 하고, 간혹 내가 준 것보다 더 많이 받길 원할 거다. 누군가와 친해지면, 상대에게 편하게 대하지만 상대에게는 편안한 사람이 되어주길 바라는 것처럼 말이다. 내가 막말을 하면 장난이지만, 상대는 예쁜 말만 하기를 원하는 그런 관계 말이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때로는 관계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강요하기도 한다. ‘부모로써’, ‘친구로써’, 또는 ‘자식으로써’라는 말로 상대에게 권리보다는 의무에 대해 부각시키는 것이다. 우리는 은연중에 이런 말을 자주 한다. ‘부모인데 이것도 못 해줘?’, ‘친구가 그런 것도 이해 못 해줘?’ 이런 말들 말이다. 왜 우리는 상대를 이해하기 보다는 상대에게 이해 받고 싶어 할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식이었다가 부모가 되고, 또 누군가의 친구이기도 한데 말이다.
자신이 준 것보다 더 받고 싶어 하는 이런 사람들의 경우 자존감이 낮을 확률이 높다. 자존감이 낮을수록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더 높아지게 마련이니까. 하지만 이런 상황이 지속될수록 점점 더 상황은 악화될 뿐이다.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사람이 존재한다. 우리가 요즘 흔히 말하는 MBTI로 나누기엔 부족하다. 같은 성향의 사람들이라도 환경에 따라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 각자 다른 생각들을 하고 있으니 누군가와의 관계에서 그렇게 나와 잘 맞는 사람을 찾기는 쉽지 않다. 그렇게 천차만별인 성향의 사람들에게 우리는 일정한 기준의 잣대로 좋은 사람과 싫은 사람으로 편을 나누지만, 그렇게 좋은 사람 편에 서더라도 결국 우리는 그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은 되지 못한다. 나와 생각이 완벽하게 같은 사람은 없으며, 편안한 사람이 아니라 편한 사람이 더 익숙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편한 관계에서 편안한 관계로 발전할 수 있게 되는 건 아주 사소한 문제일지도 모른다.
간혹 어떤 이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편안한 상대를 찾지만, 상대의 말을 들을 준비가 되지 않은 자들이 있다. 자기중심적인 그들은 자신이 말할 때는 상대가 집중하기를 바라지만 상대의 이야기는 듣지 않거나, 혹은 자신의 의견을 고집하고 그로 인해 타인을 비난하기도 한다. 그런 이들과는 서로 존중하는 바람직한 관계가 되기 어렵지 않은가. 어쩌면 나와 의견이 다른 상대방의 말을 귀기울여 듣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아주 배려심 깊은 사람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상대가 내게 편안한 사람이 되길 바라는 것처럼, 나는 누군가에게 편안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