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요즘 화를 내는 일이 드물어졌다. 나는 본래 화가 많은 사람이며, 큰일보다 작고 사소한 일에 더 화가 나는 사람이었다. 가끔은 나와 상관 없는 이들에게 감정이입을 하며 감정을 낭비하는 몹쓸 취미도 가지고 있었다. 그런 내가 화를 내지 않는 건 요즘 들어 마침 주변 사람들과 마음이 잘 맞거나 착한 사람이 된 건 아니다. 그저화가 나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자세히 설명하자면, 화를 낼만한 주체가 없다. 어느 누군가에게 화를 내려면 일단 그 사람과 친한 관계여야하지 않은가. 친하지 않으면, 애정이 없으면 싸울 수 없다.
사회에서 만난 친구나 학창 시절에 만난 친구일지라도 이미 어느 정도 거리를 두는 것이 편하다는 걸 느끼며 어느 순간 나는 나를 곤란하게 하거나 마음에 맞지 않는 사람들을 하나 둘 정리하기 시작했다.그 이유는 아무리 사소한 문제로 언쟁을 하더라도 서로의 입장차를 좁히는 건 쉽지 않다는 결론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그로인해 나는 수시로 감정을 낭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나고 보면 다 아무 일도 아닌 일들이 대부분이었다.
왜 수도자들이 혼자 인적이 드문 곳에서 사람들과 거리를 두며 수련을 할까에 대한 대답에 이런 비밀이 숨어있다. 수도자들에겐 애정이 있는 배우자나 친구의 존재가 수도 생활에 방해가 되는 거다. 애초에 수도자들도 사람이기 때문에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여러 감정이 들기 시작하면 수도자의 삶에 어려움을 느끼게 된다. 물론 나는 수도자가 아니니 이렇게 지나치게 감정 조절을 하며 살아가는 게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다. 나는 나를 스스로 외롭게 만들고 있을지도 모른다.
중학교 때 친구들과의 다툼이 잦았던 내 딸은 고등학교 진학 후에 학교생활이 평화롭다고 말했다. 그 이유는 코로나의 영향으로 온라인 수업으로 거의 대체되던 시기였기 때문에 학급에서 누구도 친한 관계가 되기 어려워서 누구와도 싸울 일이 없다고 말이다.
항간에 친해야 싸울 수 있고 싸워야 친해진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서까지 꼭 유지해야하는 관계는 없다. 화가 많이 나는 관계보다 화도 나지 않는 관계가 되는 것이 내 삶을 더 여유롭게 할 수 있다면 말이다.
누군가와의 잦은 다툼을 그저 친한 관계이기 때문이라고 위안을 삼을 필요는 없다. 의외로 그냥 안 맞는 관계일 수도 있지 않은가. 선조들의 말은 대부분 맞지만 맞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염두 해 둬야한다. 관계를 유지하는 데 가장 중요한 일은 바로 내 마음이라는 걸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