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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연 Aug 15. 2022

엄마의 고봉밥



많이 지치고 힘든 날 정성스러운 밥상을 보면 입맛은 없어도 괜시리 마음이 안정된다. 허나 그건 어디까지나 남이 차려준 밥상에서 느껴지는 감정이다. 마음의 여유가 없는 날엔 오히려 먹기 위해 밥상을 차리는 것보다 잠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더 많을 것 같다. 그럼에도 우리는 먹는 걸 포기할 수 없다. 옛말에 밥심으로 산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지치고 힘들수록 간단한 음식이라도 먹어야 한다. 그럴땐 잔소리처럼 들리던 엄마의 한술 뜨고 자라는 말이 그리워진다. 요리라는 걸 잘 모르는 시절 엄마가 한술 뜨고 자라는 말을 하면 나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간단하게 줘."고. 물론 내가 하는 '간단하게'라는 말은, 엄마의 입장에서 간단한 것이 아닌 내가 간편하게 먹을 수 있게 내 달라는 말이었다.





어렸을 적 나는 친할머니와 함께 살았다. 물론 부모님과 함께 였다. 실향민이셨던 할머니는 남편 없는 삶이 많이 고되고 헛헛하셨던지, 그 자그마한 몸집에 어떻게 그 많은 음식이 들어갈까 의아할 정도로 대식가셨다. 어렸을 적 기억이라 잘 생각나지 않지만, 할머니는 하루 세끼 이상 드셨던 것 같다. 내가 기억하는 의아했던 상황은 할머니가 혼자 드실 밥상을 차릴때였다. 할머니는 혼자 드실 밥려주며느리에게 미안했는지 을 차리는 엄마에게 "조금만 다오."라고 말씀하셨는데, 엄마는 이 말에 불만이 많으셨다. 조금만 드신다고 밥 차리는 수고가 덜어지는 건 아니다. 그러니 많이 드셔라 뭐 이런 내용이었던 것 같다. 그럴 때마다 할머니와 엄마가 사이가 좋지 않구나라고 생각했지만, 어른이 되고나서 나는 그 상황을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다. 할머니는 자신이 많이 먹는 것이 미안했고, 엄마는 그런 할머니가 안쓰러웠다. 그저 소통에 문제가 있었을 뿐이었다.


어쩌면 간단한 음식은 우리가 평소에 먹는 음식보다 더 손이 많이 가는 요리가 많다. 김밥을 만든다면, 차라리 그 재료를 그대로 식탁에 차려내는 것이 덜 수고스럽지 않은가. 내가 먹기 편한 음식은 만들기 불편한 음식이 더 많다. 하지만, 요리를 자주 하지 않는 사람들이라면 자신이 말하는 '간단히'라는 말이 오히려 상대를 위한 배려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우리는 아무리 이타적인 사람이라도 자신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판단하게 되니 말이다.



고봉밥_네이버퍼옴


친정에 가면 엄마는 늘 내게 고봉밥을 주신다. 나는 사실 밥을 반공기도 못 먹는 사람이고 엄마도 그걸 잘 아실텐데 왜 늘 내게 고봉밥을 줄까 이해가 안될 때가 있다. 늘 밥 양으로 실랑이를 벌이게 되는 게 짜증이 날 때도 있었고, 내 식성도 기억하지 못하는 엄마가 야속했던 때도 있다. 하지만 갈때마다 내가 좋아하는 반찬을 내 앞으로 밀어주시는 걸 보면 몰라서였던 건 아닌 듯 하다. 다만 결혼 후 우울증으로 인해 점점 수척해지는 내 몰골이 엄마의 큰 걱정거리였다. 뚝뚝한 내 엄마의 사랑은 밥의 양인 것 같다. 그 방법이 내가 생각한 것과 조금 다를 뿐이다. 


먹고 사는 일은 참 힘들다. 나는 그랬다. 경제적인 힘듦이 아니라 정말 밥 한숟가락 목으로 넘기는 게 힘들었던 때가 있었다. 사람들이 힘들때 쓰는 표현이 한결같이 '먹고 살기 힘들다'라고 하는 걸 보면 먹고 사는 게 가장 현실적으로 와닿는 힘듦인가 보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겪고 있는 경제적인 결핍에도 그렇게 말한다. 하지만 세상을 살다가 힘들다고 느끼는 일이 정말 경제적인 것 뿐일까. 쩌면 먹고 살기 힘들다라는 말의 근본적인 의미는 사랑이 부족해서 외롭다는 의미 같은 것 아닐까. 마음이 헛헛할땐, 엄마의 고봉밥이 그립다. 물론 다 덜어내겠지만 말이다.



"소통의 문제를 이해할 수 있는 건 사랑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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