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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연 Oct 21. 2022

지금은 게을러진 나와 맞서 싸울 때


만약 한번 발행된 글은 수정할 수 없지만 내내 여유롭게 보내다가 마감시간에 맞춰 글을 쓴다, 그 글은 형편없는 글이 될까. 과연 그 글을 쓴 작가는 게으르고 책임감이 없는 사람일까.





많은 작가들은 마감시간 전 급박하게 글을 쓴다고 한다. 그 모습을 본 편집자 또는 누군가는 미리미리 써두면 좋지 않겠냐고 안타까워 하지만, 사실 무의미하게 보내는 일상 속에서도 작가들의 머리속엔 온통 글에 대한 생각뿐이다. 글을 쓰기 전 작가의 머리속엔 이미 그 글의 내용이 완벽하게 정리되어 있는 것이다. 여유로워보이던 평소 행동과 달리 머리속은 늘 분주하다. 럼에도 쓰기를 미루는 건, 사람의 뇌는 나른함을 즐길 수 있는 여유가 있을 때보다 급박할 때 더 잘 돌아가기 때문이다. 그건 아마 내 삶이 실패하는 걸 두려워 하는 마음 같다.


스스로 마감시을 정하기 어려워서 누군가와 계약을 한다든지 독자와의 약속을 하는 작가들도 있다. 글이라는 게 시간을 투자하는 만큼 결과물이 나오는 것이 아니니 아마 그 일 자체가 큰 모험이며 스트레스일테지만 말이다. 가 게을러지는 이유는 그런 것 같다. 나 스스로와의 약속으로는 부족한 열정 탓에 함부로 내 목표를 누군가에게 말하지 못하니 말이다. 그 누군가에는 나 자신도 포함된다. 나는 나 자신에게도 철저히 선을 긋고 있다. 하지만 그런다고 마음이 평화로워지는 건 아니다.


꼭 이루어야 하는 목표가 있다면 큰 소리로 말하는게 도움이 된다. 가끔은 마음안의 목소리보다 어느 한 공간을 머무른 목소리에 더 힘이 실린다. 생각만 하던 말이 이미 내뱉은 말이 되면 누군가 그 말을 들었든 아니든 약속이 된다. 나와의 약속도 약속 아닌가. 만약 자꾸 게으른 마음이 들거나 도저히 실천할 수 없을 것 같은 목표는 주위 사람들에게 말하는 게 도움이 될 때가 있다. 제는 그런 수동적인 목표가 아니라 능동적으로 살고 싶렇게 마음을 다잡아도 실패할까 두려워 용기를 내기 어려운게 현실이다. 내가 겪었던 실패는 늘 누군가의 웃음거리가 되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타인을 지나치게 의식한다면 난 아무것도 할수 없을 것 같다. 조금만 열정적이 된다면 나는 어쩌면 더 많은 것들을 할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 열정을 이제 스스로 불태울 때가 되지 않았을까.


내 삶의 모습을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살수는 없지 않은가. 누군가의 시선이 두려워 도전하지 못한 일이 얼마나 많았던가. 이제는 그 시선을 견뎌내야 할 때이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는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 그건 상대를 잘 정하는 일부터 시작다. 내가 경쟁하고 싸우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내 모습이 정해지니 말이다. 나와 자주 부딪히는 사람으로 내 모습을 알수 있다. 나보다 어린아이가 거슬려 그들와 싸우면 난 어린아이가 되고, 꼰대같은 사람이 싫어 그들과 싸우면 난 꼰대가 된다. 내가 싸워 이겨야하는 사람은 언제나 나라는 걸 잊지 말자. 



"이제는 타인이 아니라 내 안의 게을러진 나와 맞서 싸울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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