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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연 Sep 07. 2022

조울증 같은 삶


이 정도면 됐지 너무 훌륭해! 

것 밖에 안돼? 너무 형편 없잖아!


어느날엔 훌륭하 어느날엔 형편없는 조울증 환자의 일상이다. 특별히 달라질 것없는 다람쥐 쳇바퀴 같은 일상에서도 기쁨과 우울, 이 둘의 좁힐수 없는 간극 사이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마치 야생고양이들의 영역표시 구간이 너무 넓어져 차마 자신의 영역을 다 살필수 없는 느낌이랄까. 이는 나도 나를 잘 알지 못하는, 쉼없이 마음을 살펴도 다 알지 못할 것 같은 혼란의 마음이다. 그런 혼란한 마음을 원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원했 원하지  결과는 같다. 그런 마음 안에서 난 쉴 틈이 없다. 정해지지 않은 시간의 흐름과 함께 나 또한 언제 혼란스러워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SF영화의 타임슬립에서의 비정상적인 시간의 흐름에 갇혀 변화하지 않는 나와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의 흐름속에 비정상적으로 순응하는 주변인과의 괴리. 나는 그곳에선 현재에 머무를수도 그들과 함께 시간여행을 할 수도 없다. 나 혼자만 멀쩡하던가 아님 세상이 정상이고 나 혼자서 뒤쳐지던가 그런 명확한 경계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만은, 아무리 내가 옳고 세상이 틀리다고 한들, 결국 내가 이상한 사람이 되기에 충분하다. 어차피 지구가 네모라는 사람들 틈에서 지구는 둥글다고 자신있게 외칠 주제도 못되는 소시민 아니던가. 그렇게 용감하기엔 나 자신에게조차 확신이 없다.


늘 타인에게 좌지우지되는 삶 속에서 단순히 기분이 좋은 날과 나쁜 날의 경계를 잘 구분하지 못한다. 하긴, 애초에 그걸 눈치챌 수 있을 정도라면 조울증 같은 건 걸리지 않을 것이다.


가끔은 누군가 내게 충고를 하는 건지 조언을 하는 건지, 내가 잘 되길 원하는 건지 내가 잘 안되서 기쁜 건지 확실히 구분 짓기 어려울 때가 있다. 내 감정도 스스로 조절하지 못하지만, 그건 확실히 내 마음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이 웃고 있다고 해서 정말 웃고 있는 건지 억지 웃음인지 확실하지 않다.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사람은 늘 웃고 있는 람일지도 모른다.


모든 것이 혼란스러울 때, 나는 웃다가 우울해지고 울다가 행복해지는 조울증에 걸려 다행이다. 내가 인정해버린 조울증 때문에 내 감정변화가 오히려 그들에겐 더 자연스러운 일일테니 말이다. 세상 어떤 상황에서도 좋은 쪽으로 생각할 수 있으니 참 다행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치부를 가리려 급급하기에 결국 자신에게조차 확신이 없는 삶이 된다. 나는 늘 웃고 있는 사람은 되지 말아야지. 세상이 내게 늘 한결 같진 않으니까.



"늘 한결같은 기분으로 세상을 살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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