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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연 Sep 16. 2022

사과 알레르기


탐스럽고 매끄러운, 한입 베어 물기도 전부터 벌써 향긋한 사과. 나도 모르게 입으로 가져가다가 깜짝 놀랐다. 난 사과 알레르기가 있다. 가장 좋아하는 과일이 사과지만 안타깝게 생각할 필요는 전혀 없다. 시기를 잘 맞춘다면 일 년에 두세 달은 사과를 먹을 수 있으니 말이다. 내 몸은 여름 풋사과와 가을 추석 전에 수확한 사과엔 알레르기 반응을 나타내지 않는다. 다시 말해 나는 묵은 사과에만 알레르기가 있는 셈이다. 내 사과 알레르기는 어느 날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처음 사과에 알레르기 반응이 일어났을 때 난 좌절했다. 그나마 아주 짧은 시간 동안에는 사과를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사과는 내게 애틋함을 줄 수 있는 대상이다. 인간관계가 아닌 일반적인 사물에 애틋함을 느낄 수 있는 건 어린 아이들이 늘 가지고 다니는 애착인형보다 덜 진부하지 않은가. 어쩌면 늘 함께 할 수 없는 이유로 애착인형보다 더 애틋한 대상이 될 수 있다. 이는 늘 함께 할 수 없지만, 어느 날 하루 온전히 허락된 사랑, 마치 칠월 칠석날의 견우와 직녀 같지 않은가. 시기를 잘 맞춰 일 년에 두세 달 쯤 먹을 수 있는 사과. 아예 처음부터 가질 수 없는 것보다 더 달콤하다.     


사과를 보면 백설 공주가 생각나는 건 나뿐이 아닐 것이다. 원래 우리가 알고 있는 고전 동화는 잔혹한 구전 설화를 근거로 한다는 주장이 있다. 그런 이야기를 알고 나서 조금 흥미로웠지만 애써 그런 생각은 그만두고 싶었다. 수많은 문학 장르 중에서 동화를 가장 좋아하는 나로서는 썩 알고 싶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내게 잔혹동화는 어린아이에게 산타 할아버지가 없다는 걸 전하는 것보다 더 잔인하다. 그런 잔인하고 반인륜적인 이야기를 굳이 아름답게 각색해서 동화를 만들 필요가 있을까하는 게 내 생각이었으나, 세상에 뭐든 ‘카더라’라는 말을 신뢰하지 않을 수 없는 놀라운 일이 많이 일어나는 세상에서 어쩌면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르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대부분 알고 있는 헨젤과 그레텔의 원작이라 주장하는 설화에서 보면 숲속에 살고 있는 마녀는 마을을 위해 기도하는 좋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주민들에게 신망이 두터운 그 마녀를 질투하던 다른 마녀가 주민들을 현혹해 좋은 마녀를 죽이려는 계략을 세우는 내용에 사람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사실은 그 이야기가 단순 설화가 아니라 실제 이야기라고 떠들어 대는 사람도 있으니 너무 끔찍한 일이었다.     


내 상상은 과연 왕비에게 백설 공주는 정말 눈엣가시였을까?라는 의문으로 시작 된다. 동화에서 왕비는 꽤 아름다운 미인이고, 백설 공주와는 나이대가 너무 다르다. 백설 공주는 아직 미성년자이고 이미 왕과 결혼을 한 왕비라면 여러 나이를 어울러 가장 미인일 필요는 없을 것 같다는 것이다. 사실 나는 청소년시기의 아이였을 때보다 30대가 외모의 전성기라고 생각한다.     


이야기의 시작은 이렇다. 백설 공주는 새엄마인 왕비와의 관계에서 불만이 많은 사춘기 소녀였다. 왕비가 아무리 잘해주려 노력해도 백설 공주는 반항심이 생겨 적응하지 못한 채 어느 날 가출을 한다. 그 일로 백설 공주가 걱정되었던 왕비가 사람을 고용해 백설 공주를 찾아내고, 백설 공주를 설득하기 위해 평소에 백설 공주가 가장 좋아하던 사과를 예쁜 바구니에 한가득 준비한다. 자신의 얼굴을 아는 백설 공주가 자신을 발견하고 도망갈까 염려되었던 왕비는 부득이하게 변장을 했고, 겨우 만나 사과를 건넨다. 백설 공주는 집을 나와 굶주리고 면역력이 떨어진 상태에서 사과를 맛있게 먹었고, 결국 사과 알레르기로 쓰러진다. 모든 건 오해로 시작되어 수습할 수 없을 만큼 일이 커진다. 백설 공주가 죽었다고 착각을 한 왕비는 자신이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에 대해 딜레마에 빠지며 스스로를 자책한다.     


알레르기는 누구나 있지만 모두 발현되는 건 아니다. 나는 실제로 알레르기 반응이 나타난 건 두 아이를 출산 한 후였다. 실제로 평소에 건강한 상태에서는 알레르기 반응이 발현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자신의 알레르기 식품을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백설 공주는 평소에 알지 못했던 사과 알레르기를 면역력이 떨어진 가출한 상태에서 알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오히려 왕비에게 감사해야 할 일 아닌가. 그로인해 어린 나이에 알레르기 식품을 알게 되었고, 덕분에 멋진 왕자님도 만나지 않았던가. 그런 결과적인 것이 아니라 자신을 걱정해 주고 설득하기 위해 먼 곳에 찾아온 왕비의 수고로움과 선의는 어떻게 보상해야 할까.      


간혹 우리는 바보같이 어느 하나의 단편적인 기억에 의존하며 살아간다. 자신이 평소에 봐왔던 세상이 전부인 것처럼 알고 있는 것이다. 새엄마는 전처의 아이를 싫어할 거라는, 예쁜 얼굴을 가진 사람은 선할 거라는 그런 편견 말이다. 어쩌면 백설 공주 이야기는 모든 사람에게 사랑 받고 싶은 자존감이 낮은 많은 백설 공주들이 만들어 낸 이야기 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세상은 그리 만만치 않다. 어느 하나의 단편적인 주장만으로는 인간관계를 파악하기 어렵다. 진실은 보는 각도에 따라 모습이 달라지기도 하니 말이다.     


나는 사과 알레르기가 있다. 하지만 어느 날엔 사과를 맛있게 먹고 있는 나를 보게 된다. 그게 현실이다.          



“진실 보는 각도에 따라 모습이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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