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는 나를 잘 아는 사람이라면 절대 권하지 않을 옷을 가져와 내 몸에 대보며 잘 어울릴 거라 호들갑을 떨었다. 내가 좀 뚱한 표정을 지어 보이자 지금 내가 입고 있는 그렇게 칙칙한 스타일이 정말 마음에 드는 건지 물었던 것도 같다. 사실 나도 친구가 고른 옷을 입고 싶다. 하지만 나는 입을 수 있는 재질, 색깔의 옷이 있다. 조건에 맞는 옷을 고르려면 쇼핑에 꽤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것 같지만,오히려 아무 옷이나 입을 수 있는 선택의 폭이 넓은 사람들에 비해 아주 빠른 시간에 쇼핑을 끝낼 수 있다. 나는 꼼꼼하게 그 조건에 맞지 않는 것들을 제외한 옷들 중에서 옷을 고른다. 그러니 늘 내 눈에 들어오는 옷들은 그전에 입었던 옷들과 비슷한 스타일이 많다. 내가 옷을 고르는 기준은 예쁜 옷, 날씬하게 보이는 옷이 아니라 땀이 나도 잘 알아차릴 수 없을 만한 옷이다. 나는 다한증이 있다.
나는 꽤 오랫동안 나를 잘 숨겨 왔다. 친구들도 가족들도 대부분 내가 다한증이라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다. 그들 눈에는 내가 늘 비슷한 취향의 옷을 입는 건 그저 취향일 거라 여겼을 거다. 하지만 오랫동안 숨겨지는 비밀은 별로 없다. 내 다한증은 아주 심리적인 성향이 강한 긴장성 다한증이었고, 건강이 별로 좋지 않던 그즈음 가족들과 지인들은 공황상태로 온몸에 식은땀을 흘리고 서있는 나와 자주 마주치게 되었다.그저 아무 말없이 나를 바라보는 그들의 눈빛은 나를 경멸하는 것만 같았다. 나는 늘 누군가의 이해를 바랐고, 나를 나로서 온전히 이해받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시련은 급작스럽게 온다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었다. 언제인지도 잘 모를 어느 날부터인가 과도하게 땀이 나기 시작하면서 나는 사람들 앞에 서기 불안해졌다. 모든 병엔 원인이 있겠지만 그건 다만 추측일 뿐이다. 어떤 병이든 병의 원인에 대해 직접적으로 말하는 의사는 없다. 나는 세상 일에 늘 결과보다는 원인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이었고, 의사를 신뢰하지 않았다. 나는 이런저런 병을 진단받은 사람이었고 나에 대해 젤 잘 아는 사람은 나였다. 그러니 누군가에게 이해받는 대신 나를 드러내지 않는 걸로 결정했다.
한 삼십 년 전쯤,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얼굴에 비비탄을 맞았다. 인적이 드문 곳이었다. 바로 눈 아래에 맞는 바람에 킬킬대는 아이들 소리를 듣고도 그 아이들을 쫓지 못했다. 하마터면 눈에 맞아 실명할 수도 있었다. 사람들은 얼마나 악한가. 아무리 어린아이들이라 할지라도 자신들이 쏜 총에 맞은 이를 보고 어떻게 웃을 수 있나. 나는 성악설을 믿는다. 그 이후로 나는 비비탄 총을 들고 있는 아이들을 보면 피해 다녔다. 하지만 언제든 다시 시련을 맞닥뜨릴 수 있다. 그렇게 위험한 비비탄 총은 동네 문방구에서 쉽게 아무에게나 파는 거였다. 언젠가 어떤 아이들이 나를 향해 비비탄 총을 쏘고 있기에 주의를 주고 있었는데, 그들의 엄마로 보이는 사람들이 씩씩거리며 나를 향해 걸어왔다. 그들의 입장에선 내가 그들의 아이를 혼낼 권리는 없었다. 그녀들의 말처럼 다친 것도 아닌데 내가 유난이었다. 내가 전에 비비탄 총알에 맞아 실명할 뻔한 이야기는 그들에겐 상관없는 일이었다. 어쩌면 그들의 말이 맞는 걸지도 모른다. 병에 걸려야 병을 치료하지 않나. 걸리지도 않은 병을 치료할 수는 없고, 세상에 많은 병 중에 원인이 단 한 가지인 건 없다.내가 만약 실명상태였어도 그들에게 비비탄 총알의 위험성에 대한 명확한 근거를 댈 수는 없을 거다.
아무리 빈총이라도 사람을 향해 겨누어서는 안 된다
나의 다한증이 심리적이라는 걸 알게 되면서 나는 사람들과의 마찰을 줄이고 점점 집으로 숨게 되었다. 다한증이 체중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말을 들은 일반적인 사람들의 충고, 살을 빼면 다 해결된다는 그런 말로 고쳐지는 병이 아니다. 물론 그들이 불면증인 사람에게 그냥 아무 생각하지 않고 자면 된다고 말하든, 스트레스가 심한 사람에게 생각을 줄이면 된다고 말하든, 우울한 사람에게 밝은 생각을 해보면 어떻겠냐 말하든, 나는 관심이 없다. 기면증 환자인 내게 의지력이 약해서 잠을 참지 못하는 거라 말하는 사람도 있었으니까. 아마 내가 긴장성 다한증이라 말하면, 긴장을 하지 않으면 된다고 쉽게 말하는 사람도 있을 거다. 하지만 나는 그냥 내게 잘 맞는 옷을 입고 살아갈 거다.사람들이 나를 향해 겨눈 총에 상처받을 이유는 없다.왜냐하면 누군가 그들의 총에 상처를 받았다고 말하면 그들은 늘 그건 아무런 해가 없는 빈총이었다고 말할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