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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연 Oct 21. 2023

영혼의 감기 아니고 대상포진



영혼의 감기 아니고 대상포진





영혼의 대상포진




_ 몸은 자꾸 땅을 파고들고 정신은 하늘 위에 둥둥 떠있어요. 계속 몸과 마음이 따로 노는 것 같고, 지치고 짜증이 나요. 그런데 주변 사람들이 자꾸 견뎌내라고 해요. 우울증이 아닐 거라고. 우울증은 아무나 걸리냐고 묻는데 그 사람한테 나는 아무나도 아니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우울증에 걸리는 아무나는 어떤 사람일까요. 왜 나는 우울하면 안 되는 거죠. 


_ 우울증은 영혼의 감기라잖아요. 누구나 걸릴 수 있는 거예요. 면역력이 떨어지면 누구나 걸리는.


_ 감기요? 근데 감기는 시간이 지나면 잖아요. 왜 우울증은 낫지 않죠? 괜찮아졌다가 또 우울하고 괜찮아졌다가 또 우울하고. 감기보다는 대상포진 같은 거 아닐까요?



 열아홉 살, 식탐이 대단했던 내가 삼 일간 곡기를 끊고 방에서 나오질 않자 엄마는 다급해졌다. 엄마는 밖에 외출도 하지 않고 나를 감시하기 시작했다. 그 좋아하던 친구도 만나지 않고 언니와 무슨 작당모의를 하는지 내 방 앞을 서성였다. 환각증세도 심하고 남자친구와 헤어지기로 한 즈음이었다. 제정신으로 살아갈 수 없을 것 같던 날들이었다.







관심받지 않을 권리




 그때 나를 가장 힘들게 던 건 가족이었다. 그냥 나를 내버려 두었으면. 어린 시절에 울 때는 실신할 때까지 혼자 내버려 두더니 울지도 않고 묵묵히 견뎌내는 나를 들들 볶아 댈까. 언니는 엄마의 사주를 받고 내 일기장을 훔쳐보고 내 뒤를 캐고 다녔다. 환각증세는 가족들에게 말하기 싫었고, 일기장에 남자친구와 헤어진 이야기를 소상히 적었다. 그게 나았다. 내가 남자친구가 있는 걸 모르던 가족들이 남자친구에 대해 묻길래 나는 언니와 의절하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한동안 언니와 서먹한 관계를 유지했다.



 우울증에 걸가장 힘들었던 조금 이상해진 내게 보내는 주변 사람들의 나친 관심과 우울증에 대한 부정이다. 우울증은 영혼의 감기라는데 그걸 인정하지 못하고 원인을 찾으려 하기 때문이다. "자 왜 우울한지 이유를 함께 알아보자." 감기에 걸린 사람에게 감기에 걸린 이유를 묻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우울증에 걸린 이유에 대해서는 마치 죄지은  설명이 필요한 거다. 특히 가족들에게는 우울증의 원인이 당신이 아니라는 안심도 시켜야 한다. 영혼이 아픈 사람이 타인의 영혼을 달래주는 상황이 되어서야 느낀다. 앞으로는 우울증을 숨겨야겠다고. 우울한 사람은 누군가를 위로해 줄 기운이 남아있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우울증을 숨기는 건 그런 이유 때문이다.



 흔히 우울증을 영혼의 감기라고 하지만, 내가 의사라면 나는 우울증을 영혼의 대상포진이라 부르고 싶다. 태어나서는 면역력을 가지고 있지만, 엄마 품에서 떨어져 나와 걷기 시작하면서는 언제든 걸릴 수 있는 수두. 수두에 한번 걸린 후 면역력이 떨어지면 언제든 걸릴 수 있는 대상포진. 우울증에 걸리는 이유를 굳이 찾는다면 감기처럼 면역력이 떨어지기 때문이겠지만, 감기와는 달리 쉽게 낫지 않고 면역력이 떨어지면 언제든 다시 발병할 수 있는 대상포진 같은 거라고. 리 모두 우울증 보균자이고 예방주사를 맞아도 소용없다고. 우울증에 걸린 사람을 색안경을 끼고 보는 사람들에게 꼭 말해주고 싶다. 당신들도 언제든 우울증이 올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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