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인 딸아이의 손을 꼭 잡고 신신당부를 한다. 내가 고등학생이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딸이 고등학생이라니 만감이 교차한다.
“엄마 내가 아이인줄 알아?”
맞아. 나도 그 나이일 때는 내가 다 큰 줄 알았다.
“그리고 학교엔 싸울만한 친구가 없어.”
“정말 다행이다. 학교 애들이 다 착하구나?”
싸울만한 친구가 없다는 말에 ‘정말 다행이다.’ 생각한건 정말 잠시였다.
“친하지 않은 아이들과는 싸움이 안 돼. 서로 관심이 없거든.”
나도 겪어온 고등학생 시절을 잠시 잊고 있었다. 그러네. 친하지 않은 친구와는 말도 잘 하지 않는데 싸울 수가 없겠네. 아이의 표정을 잠시 살펴봤다. 아이의 감정을 잘 살피지 못했다는 미안함 보다는 아이의 기분이 괜찮아 보이는 것에 안심했다.
그래. 엄마라고 다 해줄 수는 없는 일이다. 특히나 인간관계는 자신이 알아서 해야 할 일이지 않은가. 딸은 학교에 친하게 지낼 친구가 없이도 괜찮다고 했다. 왜냐면 요즘 코로나 때문에 거의 온라인 수업으로 대체되어 정상적인 학교생활을 할 수가 없어 자신 뿐 아니라 다른 아이들도 싸울 만큼 친한 친구가 없단다. _딸아이가 다니던 중학교에서 지금 다니는 고등학교에 진학한 아이는 우리 딸 뿐이다. 그러니 다들 처음 보는 아이들이다._ 그래서 가끔 학교에 가면 평화롭단다. 웃어야할지 울어야할지 모르겠다. 차라리 자주 친구들과의 다툼이 생기던 중학생시절이 더 그리울지도 모르겠다.
학창시절에 가장 좋은 친구를 사귈 수 있는 건 아니라고 위로를 해주다가 멈췄다. 사회에서 만난 친구가 아무리 좋아도 오랜만에 만난 학창시절 친구만 하겠는가. 하지만 참 다행인건, 내 딸아이 말고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라는 거다.
가끔은 자신의 슬픔보다 더 큰 타인의 슬픔이 위로가 될 때가 있다. 그게 자신과 같은 아픔이라면 더 공감할 수 있다. 우리의 아이들은 내가 겪은 학창시절보다 더 크게 성장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