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의 책임

행복하지 않아도 괜찮아

by 김소연



“난 너한테 잘못한 게 없어.”

정신과 진료를 받고 나오는 그녀에게 그가 처음 한 말이다. 자신의 아내가 우울증이라니, 그것도 만성우울증이라는 말에 꽤나 놀란 모양이다. 그래도 막 상담을 받고 나온 아내에게 그런 말을 하다니, 너무 경우가 없다. 아무도 그에게 잘못했다고 말한 적이 없지 않은가? 혹시 그의 내면에선 자신이 아내에게 잘못한 일이 없는지에 대해 긍정과 부정 사이에 심각하게 싸움 중일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우울증의 원인이 단 한사람에 의한 것은 아니다. 그가 그녀의 말을 들었는지 아닌지 모르지만, 그냥 우울증이 아니라 만성 우울증이다. 그가 우울의 원인이라면, 결혼한지 불과 2년도 채 되지 않은 사이에 만성 우울증 단계까지 가는 일은 매우 드물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녀의 우울에 일말의 책임도 지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의 반응에 그녀도 적잖이 당황했다. 산후우울증인줄만 알았던 자신의 상태가 그 이전부터 꽤나 오랜 기간 우울증이 이어져 왔을 거라고 생각하니, 과거에 우울했던 경험이나 원인을 찾고 싶은 건 그가 아니라 그녀가 더 했을 거다.

“그래, 나도 알아.”


그 짧은 대답으로 그는 안심했을까. 이미 그녀의 우울감에 죄책감을 느끼는 것이 아니었을지 생각했다.

정신과의사의 말에 의하면, 만성우울증이란, 자신도 인지하지 못하는 우울감이다. 그 우울의 원인을 찾아 과거로의 여행이 필요하며, 그 당시의 기억을 찾아 치유하는 과정이 필요 하다.





어떠한 말도 들리지 않는 우울의 시기가 있었다. 그땐 우울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고 나의 우울을 알아주지 않는 사람들을 원망하기도 했지만, 주위 사람들은 그래도 잘 견뎌내는 나를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듯 했다. 그렇게 내 우울은 흔한 어리광으로 치부되었다.


요즘 사람들은 우울증이 없는 사람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우울을 토로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다들 '괜찮겠지.', '나도 가끔 우울해.'라며 타인의 우울에 대해 쉽게 치부해버린다.

맞다. 겉으로 징징대며 누군가에게 우울을 표시하는 단계는 그리 심각한 단계가 아니다. 하지만 정말 두려운 건 우울의 정체기이다. 이런 상태의 문제점은 정말 무서운 공포영화를 볼 때 소리조차 나오지 않는 것처럼, 정말 울고 싶어도 눈물이 나오지 않는 것처럼 무기력해진다는 것이다. 정말 괜찮은지 자신조차도 의심이 생길만큼 괜찮아 보이는 우울의 정체기, 그 무기력한 상태를 정신과전문의는 만성우울증이라 말했다. 만성우울증이란 자신조차도 스스로 우울한지 모르는 무기력한 상태이며 아주 작은 자극으로도 위험에 빠질 만큼 위험한 상태라, 꼭 치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우울증 진단을 받은 나보다 가족이 우울증이라는 사실에 우울해지는 가족을 위해 치료를 포기했다. 그 이후, 괜찮을거다. 자기 암시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치료되지 못한 상처는 덧나게 마련이다. 사실 지금막 생긴 상처는 아파도 치료가 될거라는 희망이 있지만, 오래되어 짓물이 나는 상처는 익숙해져서 많이 아프진 않지만, 그 부위를 도려내야 나을 수 있다. 시간이 지체될 수록 상처의 부위는 넓어지고 깊어지며, 언제라도 다시 아프기 시작한다면, 더 위험한 일이다. 상처가 덧나기 전에 치료를 하는게 최선의 방법이지만, 사람들은 자주 그 타이밍을 놓쳐버린다. 바로 정체기 때문이다. 산통을 겪을때 진통의 주기처럼 말이다. 마음이 아프다면, 점점 더 빨라지고 심해지는 통증의 주기를 잘 이해하고 다독여야 한다.


우울하다고 자주 말하던 어떤 이가 어느 날 괜찮아 보인다면 사람들은 이제 우울증이 다 나았다고 생각하겠지만, 그건 괜찮아진 게 아니라 참을 수 없을 만큼의 한계에 다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keyword
이전 02화행복하지 않아서 불행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