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과 불행 사이에는 엄청난 큰 벽이 있는 것처럼 보여. 마치 저 웃고 있는 아이와 그 바로 옆에 세상 다 잃은 것처럼 바닥에 주저앉아 울고 있는 아이처럼 말이야. 하지만 저 아이들 중에 누가 진짜 행복한지는 알 수 없지.”
"당연히 웃고 있는 아이가 더 행복한거 아니야? 울고있는 아이의 엄마 표정 좀 봐. 이제 저 애는 집에 가면 엄청 혼날 것 같은데."
"혼나는 게 뭐 어때서? 잘못하면 혼나야 돼. 그게 행복한거야."
예전 어느 티비 프로그램에서 본적이 있다. 아이들은 잘못을 저지르면서 스스로 잘못을 한 걸 알고 있다. 오히려 잘못을 지적해주고 알맞은 훈육을 해준다면 아이들은 정서적으로 안정을 느끼며 부모로부터 사랑을 받는다고 생각한다고 한다. 조부모의 손에 키워진 아이나 늦둥이로 태어나 오냐오냐 길러진 아이들이 오히려 애정결핍을 느낄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잘못을 감싸주는 것보다 올바른 길로 이끌어주는 게 부모의 역할이며 사랑을 주는 최선의 방법이다.
그가 그런 말을 하는 것일까? 그의 아버지는 매우 엄하신 분이라 들었는데, 그가 어린시절에 느낀 결핍이 무엇인지에 대해 나는 잘 모른다. 설명으로 느껴질 감정이 아닌 듯하다.
그 말을 하는 그의 눈가에 촉촉한 빛이 반짝였다.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는 듯했다. 사이가 좋지 않은 부모에게 잘 보이려 어렸을 때부터 늘 어른스러운 아이었던 자신을 말이다.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의 부모님은 결국 그가 성인이 되기 전에 이혼을 했다. 차라리 철없는 말썽쟁이 아이였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으로 엇나가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부모님이 결국 이혼을 결심 하셨을 때, 그는 다시 얌전한 아이가 되길 선택했다. 부모님의 불화를 잠재우기 위해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부모님은 이혼 후에 안정을 찾으셨고, 자신과 함께 살때보다 헹복해보이는 어머니를 보며 그는 큰 상실감을 겪었을 것이다. 그는 이후 점점 위축된 인간 관계를 유지했다.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있던 운동 잘하고 재미있던 아이는 '사춘기'라는 이름으로 사라졌다. 그의 청소년 시기는 부모님의 이혼이 자신 때문일 거라는 생각과 자신이 부모님에게 중요한 존재가 아닐거라는 죄책감과 후회로 엉망이 되었다.
‘우리는 타인의 어떠한 결정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잘난 사람이 아닐 거다. 그러니 자신의 결정이 아닌 일에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라든지, ‘불행이 있어야 그 다음에 오는 행복이 더 빛날 것이다’라는 말은 해주지 않는 편이 낫겠다. 그런 말을 들으면 어머니에게 자신이 그리 중요한 사람이 아닐 거라는 오해를 할 게 뻔하다.
행복과 불행은 단편적이고 명확한 상황으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에서 결정되어진다. 분명 그의 눈엔 환하게 웃고 있는 저 아이보다 바닥에 주저앉아 울고 있는 아이가 더 행복해 보이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