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게 무엇이 있고, 사람에게 무엇이 주어지지 않았으며, 사람이 무엇으로 사는지를 배워라. 이것들을 배웠을 때 너는 다시 천상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 _톨스토이
톨스토이를 좋아하는 그녀는 이 문구를 외우고 있다. 그녀는 자신에게 주어진 것과 주어지지 못한 것, 어떠한 삶을 살아야하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자신에게 질문을 한다고 했다.
그녀는 간호사이다. 대학병원에서 7년을 일한 그녀는 사람을 살리는 일은 현대의학이 아니라 사람의 사랑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처음부터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일이 그녀에게 중요했던 건 아니었다. 학창시절 그녀는 외교학과에 진학하여 외교관이 되길 원했다. 중학생 시절부터 외교관의 꿈을 꾸며 열심히 공부했지만 만족할 만한 성적은 나오지 않았다. 한 해만 더 공부한다면 꿈을 이룰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잠시 하기도 했으나, 형편이 그리 좋지 못하던 그녀의 부모님께 부담을 드릴 수는 없었다. 그녀는 결국 재수를 포기하고 성적에 맞춰 간호학과를 선택했다. 대학시절 내내 반수를 할지, 다시 시작해도 되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며 방황의 날들이 있었지만, 결국 그녀는 꿈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말을 듣는 내내 나에겐 이유모를 죄책감이 밀려왔다. 학창시절 지지리도 공부를 못하던, 아니 안하던 딸에게 우리 엄마는 당시에 꽤 비쌌던 재수학원에 보내주셨다. 아니, 그 곳에 나를 가두었을지도 모르겠다. 아침 7시에 시작해서 밤 10시에 끝나는 고등학생과 똑같이 관리해주던 학원이었다. 공부에 뜻이 없던 나로서는 매우 불합리한 처사였고, 원망도 많았다. 엄마는 그러면서도 공부를 열심히 하라는 말씀은 하지 않으셨다. 그 당시 친구들 중 대학을 못간 사람은 나뿐이어서 혹시나 딸이 기가 죽을까 생각해서 당시에 대학생이었던 언니보다도 더 많은 용돈을 주셨지만, 그럼에도 결국 나는 고3때보다 더 낮은 성적으로 대학진학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땐 성적이 떨어진데 대한 미안함 보다는 난 원래 이런 아이야, 삼수를 시켜도 어차피 안돼. 이런 말도 안 되는 반항을 하던 시기였다. 시간을 되돌린다면 달라질 수 있을지 생각해봐도 아직도 미지수다. 내가 가진 것이 무엇인지, 내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되었을 때는 이미 내게 두 아이가 있었다.
사람은 타고난 대로 살아야 하는 게 맞는 것일지, 노력해서 바꿀 수 있는지에 대해선 난 잘 알지 못한다. 사실 이제껏 노력이란 걸 해보지 못한 나로서는 이해가 불가능 한 일이다.
그녀는 꼬박 5년을 성실히 다니던 독서실에 책을 챙기러 가는 길이 천리처럼 멀게 느껴졌다. 단 5분 거리의 그 길이 그녀에겐 얼마나 멀게 느껴졌을지 생각해봤다. 독서실로 향하는 계단 하나하나가 마치 영겁의 세월을 거스르는 것처럼 발걸음이 무거웠으리라.
독서실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를 찾으러 오셨다. 5년 동안 다니는 내내 한 번도 오시지 않은 그 길을 딸이 걱정되어 오신 길이다.
“왜 그렇게 오래 걸리느냐.” 다그치듯 물으셨지만, 어머니의 마음은 곧장 그녀에게 전달되었다. 미안하다. 라는 말은 필요 없었다.
사람은 사랑으로 사는 게 확실하다. 집으로 오는 길에 고등학생 시절 늘 마시던 딸기우유를 하나씩 손에 쥐고 서로의 온기를 느꼈다. 더 해주지 못해 아쉬운 게 사랑이라는 그 흔한 말이 가슴에 깊이 박혀왔다.
지나간 세월을 가슴에 묻고 살아가는 건 열심히 살았던 자나 열심히 살지 못했던 자나 마찬가지이다. 누구나 지나간 세월에 후회되는 일이나 절망스러운 기억 한 두개쯤은 가지고 있으리라. 하지만 행복은 지나간 과거나 오지도 않은 미래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현재에서 찾아야 한다. 지금 행복하다면 다 괜찮다. 그녀는 지금 행복하다고 말한다. 현재가 행복한 그녀는 앞으로도 행복할 것이다. 언제부턴가 사람을 살리는 일이 그녀에겐 삶의 의미가 되었다고 한다. 이제 일상에 감사한다는 그녀가 더 행복해지길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