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난 엄마 이름이어서 엄마가 쓴 줄 알았지. 그럼 이 시 무슨 내용인지 좀 알려줘.”
조금 떨렸다. 그 시인의 시는 너무 어렵다. 한번을 읽고서 아이에게 말했다.
“엄마가 난독증이 있어. 조금만 더 읽어볼게.”
두 번, 세 번을 읽었지만, 무슨 내용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제목을 보고 대충 짐작했을 뿐. 잘 모르겠다며 아무렇지 않은 척 그녀에게 휴대폰을 돌려주었다. 좀 있다가 그녀가 자기 방으로 들어가면 다시 찾아봐야겠다며 제목을 외워두었다.
“아니, 엄마는 왜 시인인데 시 해석을 못해?”
“그건, 시는 해석하지 않고 느낌으로, 마음으로 읽을 때 더 아름답기 때문이지.” 용케 둘러댈 말이 빨리 생각나서 다행이다.
“아닌 것 같은데...”
사실 난 아무리 읽어도 모르겠다. 부끄러워 어떤 시인지 말하지는 못하겠다.
“그래 사실 잘 모르겠어. 다음에 혹시 이분을 만나면 엄마가 꼭 물어볼게.”
“아니야 괜찮아. 사실 별로 궁금하지도 않았어.”
아이의 표정에서 작가, 시인이라는 직업도 엄연히 계급이 존재할 거라는, 엄마는 아마 그 시인보다 더 낮은 계급일거라는 생각을 한다는 확신에 사로잡혔다. 도둑이 제 발 저리는 격이다. 분명 아이는 단연코 그런 생각이 전혀 없었을 것이다. 아마도.
사실 등단을 하고 싶어 여기저기 공모전을 알아본 적이 있었다. 공모전에 내 시를 보내기 전에 당선작들을 살펴봤지만, 다 그런 이해가 쉽지 않은 시들 뿐이다. 나 같은 사랑 시, 이별 시를 쓰는 작가는 백날 시를 써 봐도 등단이 어려울 것 같다. 순간 내 프로필의 시인이라는 직함이 부끄럽다. 작가라는 명칭으로 바꿀까 잠시 고민하다가 그만두었다. 그건 시인이라는 건 ‘시를 전문적으로 짓는 자’라는 국어사전에 반기를 드는 행동이다. 분명 시를 짓는다고 했지 ‘어려운’ 말이 들어갔다는 말은 없다.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아이에게 가서 시는 어려울 필요가 없다. 단 한 줄의 시라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감동이 있다면 그게 시라고 설명해주었다. 등단을 하기 위해 나조차도 이해가 가지 않는 시를 써야하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 중이다. 학창 시절 책을 많이 읽지 못한 나를 원망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