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걸음이 조금 빨랐는지, 뒤돌아보니 너는 멀리 있어. 있는 힘껏 손을 뻗어도, 큰소리로 널 불러도 닿지 않을 만큼. 넌 내가 걷는 동안 가만히 날 보고 있었던 거야. 늘 괜찮다고 말하던 너는, 꿈속에서는 괜찮지 않았던 거야. 다가가려 하면 넌 사라져. 내 뒷모습이 싫었던 거니. 난 매일 같은 악몽을 꿔. 어쩌면, 지금 이 현실이 더 악몽일지도 모르겠어. 현실에서는 너를 찾을 수 없으니까. 꿈에서는 멀리에서라도 너를 볼 수 있는데 말이야.
세상 어디에 네가 있든, 나는 널 알아볼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 네가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성형을 하든, 100킬로 가까이 더 살을 찌우든 상관없을 거라고. 너의 눈빛과 내음은 변치 않을 거라고. 사람은 각자 자신만의 체취가 있대. 세상에 같은 지문을 가진 사람은 없는 것처럼. 그래서 잠시 너를 놓쳐도 괜찮을 거라 생각했어. 나는 후각이 예민한 사람이거든. 하지만, 한 가지 간과한 게 있었어. 늘 곁에 있는 너를 알아보는 것과 세상 어디에도 없는 너를 찾아내는 건 다른 문제라는 걸. 네가 영영 어디에 숨을 수도 있다는 걸 예상에 넣지 않았지. 그러니까 한참 시간이 흐른 후에도 내가 널 알아볼 수 있으려면, 너는 내내 나를 보고 있어야 한다는 그런 전제가 있어야 하는 거야. 그런 자만에 빠져 있었어. 늘 너는 나를 보고 있을 거라고.
연락 없이도 언제든 볼 수 있던 네가, 몇 년 만에 만나도 어색할 것 같지 않은 네가, 어느 날 낯설어지기 시작했어. 너의 눈을 바로 보고 싶었던 날, 너의 눈이 다른 곳을 보고 있는 거야. 언제부터인지는 눈치채지 못했어. 그전까지는 늘 나의 눈도 다른 곳을 보고 있었으니까. 우리는 어쩜 타이밍이 맞지 않았던 거지. 그래도 오랫동안 서로를 놓지 않을 수 있었어. 누구든 한 사람이라도 서로의 모습을 놓치지 않는다면 언제든 만날 수 있었으니까.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마음은 없어. 처음엔 한시도 못 견딜 것 같던 날들이 지나고, 그리고 가끔 아픈 날들도 지나고, 이제는 가끔 생각이 나는 날들이 되었거든. 하지만, 가끔 네 생각에 숨이 안 쉬어지면 어쩌지. 네가 보고 싶어 못 견디게 힘들어지면 어쩌지. 나는 끝까지 이기적이게 내 생각만 해. 그러다가 어쩌면 너도 나와 같은 생각을 했을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