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지도 않는 책을 침대 옆에 쌓아두는 건 기만이 아니야. 언제든 책을 읽어야지 하는 마음만으로도 이미 절반은 성공 아닐까. 비록 한두 장 넘기다가 지쳐버리는 끈기밖에 없더라도 말이야. 무언가를 결심하고 행하기 이전에 그 마음가짐만으로도 내겐 그 의미가 충분하지. 낡은 앨범 속을 뒤져서 너의 사진을 꺼낼 용기가 없더라도, 그 사진들을 버리진 못하잖아. 구태여 들여다보지 못한 마음이라도 언젠간 볼 수 있을 거란 그런 희망을 갖게 되니까. 하지만 이미 추억 속에만 있는 존재를 서둘러 꺼내어 두지 않아도 돼. 추억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을 테니까.
예전에는 나중에 기억되고픈 장면을 기록하기 바빴어. 그래서 눈에 담기도 아까운 소중한 장면을 기록하느라 내 눈은 늘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었지. 언젠가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에서 나는 카메라를 들지 않고 온전히 눈에 담았어. 매번 나는 그들의 콘서트에서 멋진 사진을 찍지만, 자주 꺼내어 보지 않더라고. 그날 카메라를 들지 않은 건 너무 잘한 일이었어. 자랑하려 sns에 올리는 사진보다 더 값진 걸 눈에 담았거든. 나는 그날 기록대신 추억을 가지게 된 거야.
어떤 추억은 일상적인 날에서 시작돼. 그냥 우연히 들린 곳에서 본 예쁜 카페나 공원 산책 중에 만난 아름다운 풍경 같은 것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거야. 그건 우리가 인위적으로 만든 추억 같은 게 아니야. 그런 기억이 일상에 녹아들면, 특별한 기억보다 더 자주 생각날걸. 우연히 문득 비슷한 장면이 일상 속에서 추억이 되는 거지. 그게 바로 일상의 행복이 되는 거야.
꿈속의 너는 이제 특별한 여행을 준비한다고 했지. 놀이공원도 가고, 맛집도 가고, 그동안 못 간 해외여행도 실컷 한다고 했어. 하지만, 나는 들뜬 말투와는 다른 네 눈빛을 봤어. 사실은 너도 나와 일상을 보내고 싶었던 건 아닐까 생각했어. 앞으로 너에게는 내가 없는 하루하루가 매일 특별한 나날들이겠지만, 그저 나와 평범한 일상을 보내지 못하는 게 슬펐던 거야. 그래도 괜찮아. 너와 함께한 날들에 나는 기억보단 추억을 더 많이 만들었으니까. 너의 예쁜 미소와 멋쩍은 표정까지, 그런 게 하나하나 나만 알고 있는 추억이니까. 네가 어디에 있든, 언젠가 함께 꺼내어 볼 추억을 위해 조금 더 잘 살아볼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