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엔 살이 찌고 싶다는 사람보다 살을 빼고 싶다는 사람이 더 많아. 그게 무엇이든 넣는 것보다 빼는 게 더 어렵거든. 그래서 집 냉장고처럼 뭘 찾다가 포기해 버릴 수도 있어. 그래도 좀처럼 뭘 버릴 순 없지. 어쩌면 생각도 마찬가지 아닐까. 누군가를 마음에 담는 것보다 잊는 게 더 어렵잖아. 그래서 슬픔은 늘 한 곳에 고여있어. 그 슬픔을 빼내고 홀가분해지려면 얼마나 더 큰 슬픔이 내게 와야 할까. 아니 어쩌면 슬픔에 슬픔을 더해 차곡차곡 쌓여 돌덩이 같은 마음으로 살아야 할지도 모르지. 그러니 나이가 들수록 점점 마음은 무거워지는 거야. 온갖 마음들이 차곡차곡 쌓이거든. 슬픔과 아픔, 후회 같은 감정들 말이야. 그러니 치매에 걸리지 않고선 마음이 가벼워지는 일은 드물 거야. 그래도 마음대로 공중을 부유하는 가벼운 마음보다는 조금 나은가.
기억이라는 건 얼마나 얄궂은지, 잊었으면 좋겠는 감정은 끝까지 잊혀지지 않더라고. 첫사랑의 미소랄지, 그와 함께 했던 행복한 기억이랄지 그런 건 벌써 희미해졌는데, 실수했던 이야기들은 또렷이 기억하고 있어. 또 그게 문득 떠올라서 얼굴을 붉히고 말지. 그래서 참 다행일지도 몰라. 미숙했던 그때의 감정들을 아직도 곱씹느라 덕분에 가끔 너도 함께 떠오르니까. 그래서 얼굴을 붉히다가도 미소 짓게 되는 거지. 사람들이 우연히 그런 내 모습을 보면 미친 사람쯤으로 여길까.
그런 상상을 해봤어. 잊혀지는 건 어떤 기분일까. 블랙박스 메모리처럼 시간이 지나면, 모든 기억이 시간순으로 잊혀진다면 말이야. 그렇다면, 사람들은 너무 두려워지겠지. 그러면 어떤 사람들은 늘 카메라로 자신을 기록할지도 모르겠어. 생에 가장 소중한 순간을 꼭 남겨둬야 하니까. 그러면 세상은 혼란스러울 거야. 카메라로 내 기억을 담으려면 다른 사람의 기억까지 담게 될 테니까. 그러면 우리는 더 많은 것들을 알게 되고, 더 많은 것을 잊게 되겠지. 그걸 추억이라 부를 수 있을까?
치매환자의 대부분은 가까운 기억부터 잃는다고 하잖아. 어쩌면 소중한 기억은 아주 멀리 있을지도 몰라. 너처럼, 우리처럼 말이야. 그래서 괜찮아졌어. 우린 가까이 있지 않아서 더 소중한 존재가 될 수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