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만성우울증 환자다. 주변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하면, 사람들의 반응은 대부분 이런 식이다.
“우울증이 없는 사람이 어딨어? 내 주변에 행복하다는 사람을 본 적이 없어.”
“나도 우울해.”
이런 대답이면 양반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네가 우울할 일이 뭐가 있니?' 라든지, '그래서 원하는 게 뭐니?'라든지, '요즘 살만하니까 그렇지 먹고살기 힘들어봐 우울할 시간이 있는지.' 이런 말도 들어봤다. 물론 이런 말을 직접적으로 하는 사람은 드물지만, 그 말투나 표정에서도 어떤 말을 하고 싶은지 알 수 있지 않은가?
헌데 우울증이라는 건 먹고살기 어려울 만큼 가난해서도 아니고, 우울할 어떤 일이 있어서도 아니다. 최초에 우울증이 시작될 때, 정확히 자신이 무엇 때문에 우울한지에 대해 알고 있다면, 애초에 우울증이라는 병이 생길 리가 없다. 우울한 원인을 제거하면 되는 일 아닌가? 하지만, 꼭 알고 있다고 우울의 원인을 제거하는 일이 가능한 일인지 모르겠다. 세상을 살면서 마음대로 되는 일보다 되지 않는 일이 더 많은 게 인생이다.
어떤 이가 우울해보이거나, ‘힘들다’, ‘외롭다’라는 말을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을 해결해 주려고 애쓴다. 마치 해결사들 같다. 헌데 참 이상하지 않은가? 힘들고 외로운 사람 따로, 행복한 사람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닌데, 어쩌면 그들이 과거에 겪어봤거나, 앞으로 겪을 수도 있는 타인의 불행에 대해 그렇게 밖에 해줄 수 없는 이유 말이다.
사람들의 마음엔 잘못된 저울이 있는 듯하다. 자신이 가진 저울에 의해 행복은 더 작게 불행은 더 크게 부풀려지는 듯하다. 그래서 서로가 서로에게 서운한 감정이 쌓이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누군가 ‘나 힘들어’라는 말에 ‘예전에 난 더 했어.’라는 말이 나오는 것 아닐까? 사실 그 말을 하는 의도는 너보다 힘든 상황에서도 얼마든지 멋지게 이겨낼 수 있다든지, 상대의 고민을 해결해 주고 싶은 마음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듣는 사람의 입장에선 아무리 나보다 더한 슬픔이 있는 자가 있다 해도 자신의 슬픔이 치유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때론 상대가 원치도 않는 상대의 문제를 해결해주고 싶어 한다. 하지만, 결국 자신의 문제는 타인이 해결해 줄 수 없는 일이 대부분이며, 그저, 진심어린 위로가 필요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