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알아서 먹을게

인간답게 말고 사람처럼 살고 싶어요

by 김소연



늦은 오후, 머랭 쿠키를 봉지 째 먹고 있는 엄마를 보며, 딸이 한 마디 한다.


“엄마! 또 밥 안 먹었구나?”

“응. 시간이 없어서 못 먹었네.”

“하루 종일 집에만 있으면서 왜 시간이 없어? 차라리 밥을 먹어.”


이놈의 기집애, 또 잔소리다. 한숨을 푹 쉬었다. 난 밥을 좋아하지 않는다. 근데, 내 속으로 낳은 내 딸이 밥순이라니 정말 아이러니한 일이다. 난 주로 배달음식을 좋아하고, 그녀는 내가 끓인 된장찌개를 좋아한다. 음식에 애정이 없는 내가 한 밥이 맛이 있을 리가 없다. 헌데, 울 집 식구들은 엄마가 한 밥이 젤 맛있단다. 정말 어이없는 일이다.


“과자가 얼마나 칼로리가 높은 줄 알아? 다이어트 한다면서?”


“잘 생각해봐. 엄마가 젤 좋아하는 음식이 뭐지? 빵과 과자잖아. 엄마가 밥을 먹는다고 그걸 안 먹겠니? 그럼 밥도 먹고 빵도 먹으니까 더 칼로리가 높아지는 거야. 그리고 이거 봐봐. 이거 한봉 다 먹어도 100칼로리 밖에 안돼."


대충 이런 변명을 했지만, 딸도 알고 있을 거다. 엄마는 자기가 아는 세상 사람들 중에 가장 입이 짧은 사람이며, 가장 핑계를 그럴싸하게 대는 방법을 잘 아는 사람이다. 정말 내 말대로 삼시 세끼 밥을 잘 먹으면 배가 불러서 빵과 과자를 먹을 리가 없다. 왜 밥을 꼭 먹어야하는지 사실 난 잘 모르겠다. 누가 정한대로 내 삶을 살수는 없지 않나. 헌데, 그녀는 꼭 매 끼니마다 밥을 먹어야한단다. 내가 딸과 함께 사는지 엄마와 함께 사는지 모르겠다. 우리 딸은 정말 노친네 같다. 꼭 우리 엄마처럼.





명절마다 친정에 가면, 친정엄마는 꼭 내게 고봉밥을 준다. 아침부터 고봉밥을 꾸역꾸역 먹어야하다니 정말 별로다. 난 하루에 밥 한공기도 먹지 못하는 사람인데 말이다. 밥을 다시 덜어내고 다시 덜어주기를 대여섯 번의 실랑이를 하고 난 뒤, 엄마는 늘 화를 내신다. ‘그러려면 먹지 마!’ 그래도 먹어야한다. 정말 안 먹으면 섭섭해 하시니까.


‘밥 먹고 살기 힘들다‘라는 말은 세상살이가 만만치 않다는 말로 쓰이지만, 나에게는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정말 나는 먹고 살기 힘들다. 밥을 안 먹고도 살 수 있을 만큼 영양 가득한 ’젤리‘가 나온다면, 먹고 싶은 간식만 먹고 살아도 될 텐데 말이다.


사실 난 우울해지면 식욕이 없어진다. 티비에 나오는 대부분의 폭식증 환자들과는 정반대이다. 딸의 걱정이 어떤 것인지도 잘 알고 있지만, 안타까운 건, 내가 밥을 잘 먹는다고 우울감이 사라지는 건 아니라는 거다. 차라리 우울해서 밥을 못 먹는 것보다는 못 먹어서 우울해지는 게 훨씬 인간적이고 편안한 삶이라는 것을 잘 안다. 하지만, 억지로 한다고 되는 일은 별로 없지 않은가? 때론 걱정이 과하면 잔소리가 되고, 병이 된다.


그래서 난, 오늘도 당당하게 말한다.


“내가 알아서 먹을게.”


먹고 싶은 것만 먹고 산다면 참 좋을 것 같다. 그럼 욕먹는 일도 없을텐데 말이다.



keyword
이전 21화해결사는 필요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