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작가에서 출간작가로의 꿈을 이룬 나는, SNS에 집착 중이다. 많지는 않지만, 그들은 내게 꽤 호의적이기 때문이다. 헌데 늘 아쉬운 점은 그들은 내게 늘 호의적이기만 하다는 것이다. 내가 내 글을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은 한가지뿐이다. 그건 바로 무관심이다. 난 그들을 이해한다. 나도 때론 그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 글들에 꽤나 무관심하다. 그래서 때론 작가님들이 아닌 분들과 더 친하기도 하다. 악플을 도저히 남길 수 없는 일상 계정 분들 말이다. 그들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나의 글들 중 일상적인 사진들에 더 많은 댓글이 달리는 걸 보면 말이다.
헌데 내가 본 온라인서점의 유명 작가의 책 리뷰에는 늘 악플이 발견되곤 한다. 참 이상하게도 난 늘 그랬다. 악플이 달린 책 리뷰를 보며, 변태스럽게도 난, 그 책이 무척이나 궁금해지곤 한다는 것이다. 작가가 되기 전이라면 당연히 책 리뷰를 읽지 않았을 테지만, 다른 작가님들의 리뷰에는 어떤 댓글이 있을까 궁금해지고, 또 참 이상하게도 그 중에 악플이 눈에 띄며, 부럽기까지 하다니. 사람 일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악플이 부러운 이유는 단 한가지이다. 내 지인이나 친척 혹은 가족, 또는 내 계정의 일부의 팬이 아닌 제3자의 시선으로 본 리뷰이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댓글이 악플이라면 한번 생각해 볼 문제이지만 말이다. 그들은, 정말 글만으로 평가를 받을 수 있는 내겐 한없이 부러운 사람들이다.
예전에 한번 ‘악플을 원해요’라는 글을 SNS에 올린 적이 있었는데, 별로 댓글을 많이 남기지 않는 작가님께서 내 글에 공감한다며 댓글을 남겼다. 자신도 요즘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며 자신의 계정에도 악플이 달리길 소원한다는 댓글이었다. 내 글에 공감을 하다니, 정말 이 작가님도 나만큼이나 독특한 사람이구나 생각하며 동지애까지 느껴졌었다. 평소에 그 분이 올리는 글을 자세히 읽지는 않았지만, 늘 나처럼 독특한 시선을 가졌다 생각은 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분이 올린 글을 우연히 읽게 되었다. 꽤 긴 글이었지만, 그날따라 유독 읽고 싶어졌나보다. 그 글의 내용은 이러했다. 단 하루 만에 시집 한권을 쓰는 방법에 대한 자신의 에세이를 무료 나눔한다는 내용이었다. 그 분은 등단시인도 출간시인도 아닌 에세이를 쓰는 작가였는데, 시인들일지라도 시를 쓰는 방법에 대한 내용을 누군가에게 가르치기가 힘든데, 그것도 단 하루 만에 시집 한권 분량을 쓸 수 있다니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나는 그에게 조심스럽게 악플을 달았다.
‘어떻게 하루에 시집 한권 분량의 시를 쓸 수가 있나요?’
이 질문에 그는 한술 더 떠 이런 답글을 남겼는데,
‘저는 한 시간에 300편의 시를 쓴 적이 있습니다.’
난 이 답글을 보고 한참을 웃었다. 그에게는 한 시간이 일 년처럼 흘러가나보다. 한 시간이라면, 단 한 줄의 시라도 300편을 필사하기도 벅찬 시간일텐데 말이다.
‘지금 이 답글은 기존 시인들을 농락하는 일이다.’라는 글을 남기고, 난 더 이상 그의 계정에 가지 않기로 했다. 악플을 원한다던 그가 그 이후에 내게 어떻게 했는지는 상상에 맡기고 싶다. 생각하지도 않은 일이니 말이다. 단, 나도 그에게서 받은 만큼 돌려줬으니, 후회는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원만한 사회생활을 하기 위해 못 마땅한 상황에 참는 것이 익숙해져있지만, 그러지 않기를 바란다. 결국, 나만 쉬운 사람이 될 뿐, 아무도 동정의 한 표를 주지 않는다. 그리고 타인의 악플도 신경 쓸 필요없다. 생각이 다를 뿐이니까. 다만, 누군가 내게 악플을 남겼다면 잘 생각하고 수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악플도 애정이 있어야 남길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악플을 잘 받아들이고 변화한다면 안티가 팬으로 바뀔수도 있는 일이다. 하지만, 타인의 시선보다도 내 앞에서 당당한 나로 살기를 간절히 바란다. 나도, 나의 아이들도.
여전히 난, 악플을 원한다. 물론 내 계정에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악플을 남기는 사람이 드문 이유도 있을 것이다. 내 소중한 글에 남겨질 대중의 차가운 반응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