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야자 Sep 20. 2021

이야기의 힘이 만드는 마을여행

<슬기로운 평대생활> 19일째

“지금 담으시는 게 뭐예요?”

“아 이거 우뭇가사리요.”


아침 해변에는 마을 주민 서너 명이 쪼그려 앉아서, 요 며칠 백사장으로 밀려온 해초를 망태기에 담고 있었다.

궁금한 게 가득한 아이처럼 이것저것 물었다. 3주째 동네에서 지내고 있는 이웃이니, 조금은 친근하게 물어도 될 거라고 스스로 자격을 부여했다. 외지 사람에 쉽게 곁을 주지 않는다는 것을 은근히 의식하며 지내왔던 것이다.       

하나쯤 알만한 것을 발견해 확신하며 물었다.  

“어르신, 이건 미역이죠?”

“아니 그건 감태요.”

“자주 먹는데도 모르겠네요. 근데 오늘 같은 날 물질은 안 하세요?”

“이제 몸이 아파 물질을 못 해요.”

“아...”


웃음으로 꼬박꼬박 답해주던 할머니 얼굴이 잠깐 쓸쓸해지는 것 같았다. 그는 은퇴한 해녀였다. 물질을 그만두게 된 할머니가 할 수 있는 건 물가에서 해초나 보말(고동)을 걷는 일이다. 물에서 밀려 나온 해녀에게 물가에 밀려온 해초는 선물 같았다. 평생 물에서 고생한 이에게 바다가 불쑥 내미는 보너스 같은 거.   


인사를 하고 등대 쪽으로 한참 걸어가다가 문득 궁금했다. 파래, 청각, 청태 등 다양하게 밀려온 것들 중에 왜 우뭇가사리만 줍는 걸까.   


다시 석희삼춘이 안내하는 마을여행에 참가하게 됐다. 지난주 투어에 참가했던 터라 인근 올레나 걸을 작정이었다. “오늘 여행코스는 지난주 갔던 곳은 가지 않을 거야.” 삼춘이 통화 중에 ‘안 오면 손해’라는 뉘앙스를 깔았다.

나이 든 어멍들이 새벽에 나와 빈다는 ‘용왕당’은 늘 지나다니는 길가에 있었다. 주로 뭍에 나간 자식들의 안녕을 빈다고 했다. 낮은 돌담으로 둘러싸였고, 돌 사이사이에 기도의 흔적들이 남아 있었다. 간밤에도 누군가의 발길이 있었던 모양이다. 육지로 자식을 내보내는 것을 부모의 도리라 생각하는 건, 유전자에 기억돼 전수되는 것일까. 현대사를 지나며 생긴 트라우마 일지도 모른다. 캄캄한 새벽, 누구도 보지 않는 시간에 올리는 기도는 자신이 아닌 오직 자식을 위한 것이라고 석희삼춘은 설명했다. 자식 위한 기도가 때와 장소를 가릴 순 없겠지만 유독 제주에서는 특별하게 느껴진다.         


힘이 장사였다는 ‘부대각’이라는 인물은 실존 인물에 신화가 보태졌거나, 신화에 부씨 집안의 족보가 덧입혀졌거나 한 것 같다. 어쨌거나 그럴듯한 이야기가 ‘진짜’라고 증명이라도 하듯이 부대각을 위한 ‘망향비’가 도깨(비)동산에 떡하니 서 있었다. 이 이야기를 신바람 나서 들려주는 이는 역시 부씨 집안의 석희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었다.

전망이 좋아 ‘CU카페’라 불리는 편의점에 앉아 맥주 한 캔을 땄다. 날이 선명해 바다가 옥색과 짙은 남색으로 또렷한 층을 이루고 있었다. 바람이 기분 좋게 불어왔다. 길보다 반층쯤 높은 편의점 데크에 앉아 멀리까지 보이는 수평선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절로 “신선놀음이 따로 없네” 같은 어르신 멘트가 흘러나왔다. 즉시 대체하고 싶었지만 그 이상의 표현이 또 없었다. 이 정도 전망의 편의점이 대한민국에 얼마나 있겠나 싶었다. 그런 걸 감안하면 아주 저렴한 카페일 거다.  


석희삼춘의 마지막 이야기는 지난주처럼 무너진 초가에서 들려주는 ‘혹할아버지’에 대한 추억이었다. 말을 잃은 할아버지가 “혹~ 혹~”하는 것을 윽박과 욕으로 받아들인 사람들이 할아버지를 ‘욕 할아버지’라고도 불렀다. 할아버지의 “혹~”으로 마을의 싸움이 사라지게 됐다는 것이 삼촌과 마을 사람들 공통의 기억이라고 했다.

같은 얘기를 두 번째 듣다 보니 의문이 솟았다. 욕이라 여겼던 “혹~”하는 그 쇳소리가 정말 욕이었을까. 아들 잃은 아비의 울음이거나, 내 얘기 좀 들어달라는 하소연은 아니었을까. 이제 영영 누구도 그 말을 알지 못하게 됐다. 다시 듣는 이야기가 다른 말을 걸어왔던 것이다.        

석희삼춘은 뭍에서 대학을 졸업하던 날, 고향인 평대로 돌아왔다. 삼춘은 육지에서의 치열한 경쟁에서 버틸 자신이 없었다고 했다. 그가 돌아온 날 아버지는 그에게 밥상을 집어던졌다. “제주의 부모들은 자식을 뭍으로 내보내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을 갖고 있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4·3의 그림자다. 웃으며 말했지만 들으면서 따라 웃지는 못했다. 평대로 돌아온 삼춘은 농부가 되었다.   


석희삼춘은 수년 전부터 평대 바닷가의 작은 동산과 바다로 뻗은 코지, 골목 등 곳곳의 이름을 찾아 나섰다. 어르신들의 육성으로 이름을 복원했고, 거기에 얽힌 이야기를 수집했다. 더 늦어 어르신들이 돌아가시면 회복될 수 없는 마을의 이야기이자 역사를 찾아 기록해왔다. 그가 마을 여행의 ‘찐’ 가이드인 이유다. 그렇게 수년간 건져 올린 이야기가 지닌 힘이 건강하고 매력적인 마을 여행을 만들고 있었다. /yaja


이전 18화 떠날 수 있다는 희망이 그 자리를 견디게 하는 아이러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