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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자 Sep 24. 2021

깊이깊이 심심해지고 싶은 시간

<슬기로운평대생활> 20일째

이틀 전 걸어갔던 광치기해변부터 다시 걷기를 시작했다. 올레 2코스다. 길의 초반부 내내 성산일출봉이 시야 안에 머물렀다. 

오른쪽에, 정면에 보이다가 왼쪽으로 비켜나는가 싶으면 어느새 또 앞이나 옆으로 불쑥 나타나기를 수차례 반복했다. 전방과 좌우 시야에서 사라진 동안에도 두리번거리게 되었고, 다시 눈길이 닿으면 좀처럼 멀어지지 않은 일출봉이 환영처럼 어른거리기도 했다. 이상하게 마음이 쓰였다. 쨍한 날씨에도 주위로 처연한 기운이 감도는 게 기분 탓일까 싶기도 하고, 그 자체의 위엄 때문인 것도 같았다.     

일출봉을 등지고 걷는 동안 멀리 한라산이 흐릿하게 드러났다. 평대 바닷가에서는 목격된 적이 없는 한라산이다. 아니, 보여주지 않았다고 해야 하나. 모든 조건이 허락하는 날엔 평대에서도 볼 수 있지 않을까. 시계가 괜찮은 날이었지만 그럼에도 한라산은 능선의 윤곽 정도만 허락했다. 늘 거기 있는데 아주 가끔, 그것도 조금씩 보여주는 것엔 애타게 하는 매력이 있다. 신비해지고 특별해지는 것이다.    


걸으면서 외로움이라는 단어를 자주 떠올린다. 혼자라고 다 외로운 것은 아니고, 어울리며 무리 중에 있다고 안 외로운 것은 아니다. 관계의 긴장이 유발하는 필연적인 피로가 외롭게 한다. 직장 내에서 뿐 아니라 친구들, 가족들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없을 순 없다. 

혼자 걷는 길이 때론 참 외롭다 생각되는데, 이 외로움이란 게 또 아주 좋다. ‘외로움’이라는 단어의 쓰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설레는 외로움’ ‘즐거운 외로움’ ‘낭만적 외로움’ 같은 문구는 기존의 관념으로는 확실히 형용모순이다. 하지만 조금 틀어서 보면 그럴듯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을 것 같다.


‘깊이 심심해지는 시간’의 필요성 또한 절감했다. 그 시간이 확보된다면 스스로를 위로하고, 자존감을 회복하는데 쓰고 싶어졌다. 나 스스로를 부정하며 살아왔던 시간들이 꽤 많다는 걸 문득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씁쓸하고 아픈 발견이었다. 내가 잘하고 잘할 수 있는 것보다 내가 못하고 잘할 수 없는 것으로, 나의 장점들보다는 단점들로 나를 규정하고 그걸 내 정체성으로 받아들이며 살아온 시간이 아니었을까. 뭔가 알 듯 말 듯 희뿌연 안갯속에 있던 것이 어느 날 또렷하게 직시하게 돼버렸다고 할까. 지금 제주의 시간은 충분히 나를 긍정하는 시간이 되고 있는 걸까. 


덜 휘둘리기 위해, 덜 지치기 위해, 덜 미워하기 위해, 더 친절하기 위해, 더 나누기 위해, 더 사랑하기 위해, 궁극적으로 조금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깊이 심심해지고 싶은 것이다.  

오조리마을로 가는 길엔 거의 혼자였다. 햇살은 강렬했고, 목덜미와 팔다리가 따가웠다. 왜 이 더운 날 고생스럽게 걷느냐고 누가 물어온다면 뭐라 답해줄까. “이 걸음이 낯선 말을 걸어와서 좋습니다. 자연을 벗 삼을 수 있는 길이어서 정말 좋아요. 그게 좋아서 걷다가 가끔 걷는 게 좋아져서 또 걷습니다.” 그럴듯한 대답이라며 혼자 고개를 주억거리며 만족한다.     

골목에서 ‘B일상 잡화점’이라는 상호가 눈에 띄었다. 일상적이지 않은 혹은 B급의 정서의 잡화를 판다고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작명이다. 문이 잠겨 있었고, 제주의 상점은 언제 쉴지 예측할 수 없구나 하고 생각하다가, 오늘이 일요일이라는 걸 불과 몇 초 뒤에 깨닫게 되었다. 문에는 “집에 사 가면 엄마에게 등짝 스매싱을 맞을 것들을 모아 판다”고 쓰여 있었다. 내부를 들여다볼 수 없었다. 어떤 물건일까 보다, 도대체 어떤 사람이 이 가게를 열었을까가 더 궁금했다.  

더위도 식힐 겸 창고를 개조한 것으로 짐작이 되는 식당에 들어섰다. ‘돌담쉼팡.’ 메뉴가 여럿이었지만 먼저 눈에 들어오는 맨 위 메뉴, 보말칼국수를 시켰다. 허기에 별 기대 없이 국물을 거푸 두세 숟가락 떠먹었다. 눈이 반짝 뜨였다. 바다의 향이 코와 입으로 번지며 목구멍을 훑고 내려갔다. 행복해졌다. 세련되고 정제된 맛이라기보다 투박하고 정겨운 맛이었다. 그릇에 고개를 파묻었다. 한 방울의 국물도 남기지 않았다. 배가 뽈록해졌다. 다시 걸어야 할 이유가 생겼다.   

고성리 마을을 걷다가 멈춰 서서 얼마나 왔나 확인하려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동안, 동네 팔각정에서 쉬다가 막 몸을 일으킨 커플이 옆을 스쳐 지나갔다. 저만치 가던 커플 중에 남자가 뒤로 돌아서더니 나를 향해 다가왔다. “올레길 걸으십니까?” 경상도 사투리가 짙었다. 걸음을 멈춘 내가 길을 헷갈려하는 줄 알았던 모양이었다. 


“길은 좋은데 가게가 없습니다. 날이 워낙 더워서….” 


나와 반대편에서 2코스를 시작한 커플은 자기들이 걸어온 길을 걸어갈 나를 걱정해주고 있었다. 찰나지만 입을 달싹이며 다가오는 남자를 보고, 반사적으로 ‘저 사람 뭐지?’하고 방어적인 자세를 취했던 게 부끄러워졌다.  


“그럼, 잘 걸으세요~” 커플은 해맑은 웃음을 길 위에 흩뿌리며 발걸음을 돌렸다. 

“고맙습니다. 안전히 잘 걸으세요~”


1분도 채 안 되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말은 넘쳐나고 소통은 더 요원해지고 있는 모바일 시대에, 여행지에서 초면의 사람들과 잠깐 주고받은 몇 마디 말이 이렇게 ‘아름다운 소통’일 수 있구나 생각했다. 가슴 한쪽이 뻐근해져 왔다.    


평생 다시 볼 수 없을 이 커플의 건강과 행복을, 제주의 모든 신들에게 빌어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yaj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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