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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이신 Oct 04. 2021

외국에 있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비싸도 계속 찾을 수 밖에 없는 한식

해외여행 이력이라면 지금까지 3번의 갱신한 여권 페이지가 입출국 도장으로 꽉꽉 채워져 있을 정도다. 그래서인지 여행지의 음식이라면 매우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편. 한식이랑 비슷해 보이는 음식은 최대한 배제한 채 어떻게든 그 나라 음식을 하나라도 더 먹어보려 하는 것이다.  

하지만 남편은 3박 4일의 짧은 동남아 여행지에서조차 한국음식 타령을 해댄다.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며칠만 버티면 실컷 먹을 한식, 굳이 여기까지 와서 찾아야 해??


하지만 한식을 찾게 되는 궁극적인 이유가 '해외 체류 총량의 법칙'이라도 있는 걸까?

종합상사 출신 남편은 신입사원 시절부터 출장이 매우 잦았다. 친구들과 짧은 여행 위주로 다니던 나보다는 장기 출장이 많았던 남편 쪽이 확실히 해외 체류 일자로는 우위다. 여행이 시작되는 공항에서부터 아니 짐을 쌀 때부터 들뜨기 시작하는 나와 달리 그는 공항은 물론 비행기를 타도 별 감흥도 없다. 기내식도 한국에서 떠나는 국적기의 비빔밥 정도나 적극적이랄까, 외항사의 기내식은 웬만큼 배고프지 않으면 거들떠보지도 않을 정도로 시큰둥하다.  


아이들도 경우도 그렇다. 첫째는 이제는 무조건 밥! 한식파, 둘째는 아무거나 줘도 가리지 않고 잘 먹지만 언제나 한식을 더 맛있게 먹는 모습이 포착된다. 이것도 3년 먼저 태어난 첫째(생후 6개월 때부터 여행기록 있는 프로 여행러)의 해외 체류 총량의 경험치가 쌓인 결과일까?


그렇게도 열렬한 외국음식 신봉자였던 나도 이제 '거주자로서의 여행자' 신분의 짬밥이 늘어나서 인지 어느 순간부터 한식이 불쑥불쑥 당기는 순간이 찾아왔다.

오히려 한국에 있을 때 파스타며 수제피자, 특색 있는 외국음식들의 레시피를 찾아 더 도전했지 싱가포르에 살고 있는 지금의 식단 지분은 80% 이상이 한식이다. 게다가 남이 해주는 한식은 왜 이리도 맛있는 건지. 집에서는 내가 하는 요리에 지쳐 입맛이 없어 깨작이는데 지인들에게 초대받아 간 집밥 한정식에는 열광하고 고봉밥 먹는 여자로 소문났다.

 

이렇게 토종 한국인의 입맛으로 바뀌고 있는 요즘, 싱가포르에서 한식당, 한국식 재료만을 고집하다 보면 마치 먹고 사는 데에만 여념이 없던 70년대의 엥겔지수처럼 회귀할지도 모른다.       

앞선 글에서도 언급했듯, 싱가포르의 한식당은 현지인들에게는 꽤나 핫한 플레이스이다. 저녁시간에는 웬만한 한국식 BBQ식당을 예약 없이 워크인으로 갔다가는 1시간은 족히 기다릴 각오를 해야 한다. 물론 식당에는 한국인보다는 현지인이 훨씬 더 많다는 사실. 그들의 테이블에 한국 소주와 맥주가 버젓이 놓여 있는 생경한 모습도 포착할 수 있다.    

삼겹살 4인 기준에 간단히 주류 1~2병을 포함하면 보통 150불은 기본. 그나마 BBQ식당의 경우 구워주는 수고로움을 생각하면 이해가 된다. 하지만 비교적 싸고 가볍게 먹을 수 있는 김밥, 떡볶이 등의 분식류는 물론 한국인의 소울푸드와도 같은 치킨, 짜장면의 가격을 한국과 비교한다면 쉽게 손이 가지 않는다.




닭강정 20불

치맥세트(치킨 2마리+생맥주 1.5L) 98불

보쌈세트(보쌈+쌈채소+쟁반국수+해물파전+떡볶이 등의 기본 구성) 86불

감자탕 50불

김밥 한 줄 9불, 떡볶이 12불


위에는 싱가포르 내 한인업소의 메뉴들을 무작위로 몇 개 추려본 것들이다.  

우리가 너무 잘 알고 있는 그 맛, 가격도 훤히 꿰뚫고 있는 그 음식들이 싱가포르에서는 대략 이런 실정.

한국과 마찬가지로 이곳 배달문화도 비교적 잘 발달되어 있는데 배달비가 은근히 들어가는 게 함정. 한식당에서는 '무료배달' 기준도 보통 100불 정도로 설정해놓고 있다.(배달비가 거리에 따라 12~20불까지도 나온다)

떡볶이가 간절히 당겨 어플을 열어보지만 12불짜리 하나 먹자고 15불을 낼 수가 없는 노릇. 그래서 울며 겨자 먹기로 배달비가 지원되는 선에서, 이왕 (이 돈 주고) 어렵게 시키는 거 냉동했다 다음에도 먹을 수 있는 종류로 주섬주섬 담으면서 100불 채우는 건 어느새 국롤이 된 상황이다.

처음 몇 달간은 손을 덜덜 떨면서 한식당을 이용했는데 이제 싱가포르 산 지도 2년이 가까이 되다 보니(덩달아 한국에도 못 들어가는 실정) 이런 금액들도 제법 익숙해져 버렸다.    



가뜩이나 살벌한 물가의 싱가포르에서 한식들의 가격조차 이런 실정이니 '이 돈 주고 먹을 바엔 내가 만들어먹고 말지'라는 취지로 주부들은 반 요리사가 되어가는 실정이다. 특히 물리적으로도 외식을 못했던 락다운 때는 이런 상황이 극에 달했다. 김치는 기본에 탕수육, 갈비탕, 자장면 & 짬뽕, 돈가스 등 직접 만들었다며 맘 카페에 올라오는 요리 수준들을 보노라면 그저 아연실색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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