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라는 타래를 풀며

이제 나는 안 울어

by 얄리

요즘 아이들은 일찍부터 '진로탐색'이라는 것에 항시적으로 노출된다. 자신의 업으로 삼고 싶은 일은 무엇인지, 왜 그것을 하고자 하며 어떤 미래를 상상하는지, 그 일을 하려면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에 관해 아주 어릴 때부터 생각을 해야한다고 배운다.


성인으로서 최소한의 생계라도 유지하려면, 금전적인 소득을 가져오는 일이란 반드시 필요하다. 금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난 주인공이 내가 아니라면. 하지만 단순히 돈만 목적이 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성장하기 위한 경로를 확보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충분히 심사숙고할 필요가 있는 것은 맞다. 해서 자신이 원하는 모습을 미리 예측해 볼 수 있는 정보들은 전보다 훨씬 많이 제공되고 있는 것 같다. 아이들의 진로에 대한 탐구결과가 예전보다 훨씬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바뀌어 있는 것을 보곤 한다. 이를 테면 단순히 '의사'가 아니라 '개인병원을 운영하는 피부가 전문의' 같은 구체성이랄까?


하지만 쉽게 알려줄 수 없는 것이 있다. 일이라는 것의 뒷 모습, 외형적인 경로에서는 잘 보여지지 않는 부분들 말이다. 그것은 한 사람이 가진 삶의 흐름과 맥락을 같이 하고 있기 때문에 태어난 시기, 성별, 직업군, 특정한 경험을 하게 되는 주기, 건강상태 등 여러 요인에 의해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그 때문에 어떤 일목요연한 정보로 전달되기에는 무리가 있다.


나 자신도 기껏해야 '내가 겪은 일의 범주 안'에서 밖에는 일이라는 것의 뒷 모습을 알지 못한다. 그나마도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기도 하다. 한 분야에서 약 20여년, 일하는 사람으로서 첫 발을 떼는 신생아 같던 신입을 지나 열정과 집착을 혼동하는 실무자로, 복잡한 상하관계에 골머리를 썪는 중간관리자에서 누군가를 고용해야 하는 사람으로 변화해 왔던 시간들이었다. 꼬딱지 만큼 작은 무명의 회사와 대기업 그리고 중견기업 마지막엔 꼬딱지 보다 조금 더 큰 무명기업으로 자리를 옮기며 지내온 시간이기도 했다. 어쨌든 지금의 나는 수많은 과거들의 결과다. 다시 쓰고 싶어도 다시 쓸 수 없는.


넌 어떤 직장생활을 했으면 좋겠어?
-
내가 본 거는 엄마랑 아빠 뿐이라,
근데 지금으로서는 엄마가 나은 거 같아
시간의 융통성은 엄마가 많잖아?


과연 그럴까? 네가 보고 있는 그 융통성은 거저 얻어진 것이 아니야. 아빠는 무던하게 큰 부침없이 일을 해 왔지만 엄마는 00발광을 하면서 일을 해 왔거든. 그렇다고 나처럼은 일하지 말라는 것은 아니고, 너는 너 나름의 경로가 있을거야. 너는 나와 시대로, 성별도, 성향도 다 다르잖아. 나는 일하면서 놓친 것도, 잃은 것도, 엎어진 것도 많았어. 그러니 나처럼 일하라는 것도 아니야.


'일하는 사람으로서의 나'에 대한 것을 다시 한번 떠 올려 보게 된 것은 그때가 계기가 된 것 같다. 이제는 어제와 오늘이 별다를 것이 없는 일상 속을 살게 되었기에 잊어버렸던 과거, 한 사람이 태어나 성인이 되고도 남았을 시간. 이젠 한달에 한번 나오는 급여를 생선 바르듯 발라 먹을 때에만 '내가 일을 하는 사람이구나'를 알 수 있을 정도로 둔탁해진 지금, 이라면 감정에 덜 볶이며 돌아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일이라는 타래를 풀며


뭐, 이런 것을 '프롤로그'라고 한다지? 이제 과거를 비추는 거울 앞에 앉아본다. 어찌되었건 일이라는 것은 내 삶에서 꽤나 큰 비중을 가졌던 것이었다. 내 삶 속에 잠시 멈춰서 다시 바라봐야 했던 '어느날' 중에서 일을 가장 먼저 언급한 것은 그때문이었다. 내가 딱히 '워커홀릭'이었다는 건,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