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계를 위한 것 그 이상의 일
미술치료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친구 때문이었다. 미술을 전공하고 상담심리대학원을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관심은 타인에게 닿아있지 않았다. 미술은 나를 표현하기 위한 수단이었고 상담심리 역시 내가 궁금해서 배우게 된 것이었다. 내가 나라는 사람을 중심에 세워두고 관심을 가졌던 것들이 타인에 의해 그 쓰임이 생기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아마도 그것이 또 다른 직업이라는 개념 안에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직은 현재의 직업에서 전직을 생각하고 있지 않았기에 그건 내가 배운 것의 범주 안에만 속해 있을 뿐이었다.
그러다 자신의 삶에 있어서 복병과도 같은 난관에 부딪힌 절친이 자기 자신을 다독여가는 과정에서 미술치료를 권유받고 상담을 받아가던 과정에 흥미를 느껴 그 연장선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자신의 존재감과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발견해가는 과정을 보며 내가 배운 것으로 단정한 것들의 다른 쓰임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꼭 배웠다고 해서 그것이 직업이 되어야 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배웠던 것들을 되새기며 그것을 병합한 새로운 것을 배워가고 이를 타인과 함께 나눈다는 것은 생계를 위한 일과는 또 다른 차원의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 하고 있는 직업을 끊고 옮겨가야 할 이유도 없었다. 만일 어느 순간 그래야 할 정도의 비중이 되어 버린다면 그때 생각해도 늦지 않았다.
그림을 그리는 시간들 속에서 내 마음속의 번잡함을 잊고 몰입하는 가운데 숨통이 틔였던 지난 시간들을 떠 올렸다. 여전히 그림을 그리는 일은 일상에서 내가 아무 생각 없이 빠져 들 수 있는 것 중 하나다. 그림은 그린다는 행위 그 자체만으로도 도움이 된다는 건 내 경험이 말해 줄 수 있는 것이었다. 거기에 상담자와의 대화를 통해 은연중에 모습을 드러낼 수밖에 없는 무의식을 만나는 일, 그것은 자신의 깊은 내면에 자리 잡고 있는 목소리와 대면함으로써 미쳐 알지 못했던 나를 만나는 일이다. 자기 분석을 통해 내가 풀어내지 못했던 난제들을 하나씩 꺼내며 삶의 큰 전환을 맞이했던 경험은 그러한 시도가 유효하다는 인식을 내게 심어 놓았다. 내가 힘들었을 때 도움이 되었던 것들이 누군가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날 나를 알기 위해 배웠던 상담심리의 책을 다시 들춰보기 시작했다. 그때는 이론이라는 개념서로 다가왔던 것들이 지금은 세상과 사람을 아우르는 인문학이나 정교하게 잘 쓰인 소설처럼 보였다. 하나하나가 묵직한 울림이 있고 사람에 대한 애정이 묻어나는 게 느껴졌다. 이미 학위를 마친 지가 수년 전임에도 불구하고 이제야 그것과 무관하게 순수한 관심이 생긴 것이다. 그동안 내 삶에 없었던 타인이 관심의 범주안으로 들어온 것이기도 했다. 내가 그림을 그리는 게 아니라 상대가 그림을 그리며 자신의 어려움을 해소할 방향을 찾아가는 것을 돕는 일은 경험 안에 없는 것이라 학회에 가입하고 조금씩 배워가고 있다. 조금은 긴 호흡이 필요해 보이지만 하나하나의 배움이 소중해졌다. 그것도 충분히 좋다.
자기 자신조차도 자세히 바라봐주지 않았던 사람, 세상에는 그런 사람이 많다. 무수한 타인들에게 시선을 빼앗기며 마음을 바치고 결국에는 내면이 텅 비어버린 사람들. 어른 아이를 자기 안에 품은 채 사는 사람들. 나 역시도 그와 다르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하면 함께 그 사람의 삶과 마음을 바라봐 줄 수 있기를 바란다. 하지만 만일 내가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억지로 하려고 하지는 않을 생각이다. 타인의 삶을 함께 바라봐 주는 일이 하겠다면서 본의 아니게 어설픈 사명감에 휩싸여 도움이 아니라 상처를 줄게 되는 일을 하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배움의 속도를 의도적으로 느슨하게 가는 것은 그 이유이다. 내 안에 타인을 향한 마음이 무르익을 때를 기다리며 걸어가는 것. 어쩌면 그 자체로도 의미 있는 것이 될지 모른다. 내 삶 안에 타인이 들어왔다고 해서 당장에 이타적인 내가 될 수는 없다. 조금씩 타인의 자리를 넓히는 것은 내 삶 안의 나를 먼저 정리한 후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천천히 나를 살피며 자연스럽게 타인에게 손이 내밀어지는 때를 향해 걸어갈 것이다. 언젠가는 그것이 나에게 일이 될지도 모른다. 생계를 위한 것 이상의 무엇. 아니면 그때를 향해 걸어가는 과정 안에 또 다른 무엇을 찾게 될지도 모르고. 그러니 걸어가는 수밖에.
삶에서 지금, 등 떠밀리지 않고 유유히 걷기 딱 좋은 때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