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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울음뱅이 Nov 28. 2017

나와 너의 가성비를 따지는 불행

내일을 위한 시간, 다르덴 형제, 2014

일상에서는 ‘자본주의’라는 딱딱한 단어를 입에 올릴 일이 거의 없다. 그 내용을 정확히 아는 사람도 없다. 하지만 환하게 웃다가 카메라가 꺼지자마자 웃음을 거두는 아이돌 멤버를 보며 ‘자본주의 미소’라는 수식어를 붙이고, 모두가 이 말뜻이 뭔지 대충 안다. 이처럼 자본주의는 우리가 그것을 정확히 이해하기도 전에 익숙한 개념이 됐다. 어디 익숙하기만 한가. 다들 당연하다는 듯 자본주의에 숟가락을 얹고 산다. 별도의 가입 절차는 없었다. 나를 포함한 우리 모두에게 마치 모태신앙처럼 절대적이다. 존재 자체가 자본주의다. 거기서부터 이미 불행은 시작됐다. 점점 행복해지는 누군가와 달리 우리는 대부분 불행해진다. 그게 효율적이라는 이유로. 

<내일을 위한 시간>의 산드라(마리옹 꼬띠아르)는 우울증 치료를 마치고 몇 달 만에 복직하려 한다. 그런데 회사는 산드라의 복직 여부를 직원들의 투표에 부친다. 복직에 찬성하면, 보너스 1000유로를 포기해야 한다. 반대로 보너스를 택하면, 산드라는 그날로 일자리를 잃는다. 투표일은 다음 주 월요일. 산드라는 주말 동안 회사 동료들의 집을 차례로 방문해 설득한다. 그들에게도 사정은 있다. 아들 학비도 대야 하고, 담벼락 공사도, 결혼 준비도 해야 한다. ‘보너스를 포기해 달라’는 산드라가 불편할 수밖에 없다. 만남 자체가 고통스러워서 산드라를 피하는 사람까지 있다. 미안함, 서운함,죄책감, 부끄러움과 같은 감정들이 오가며 서로의 마음에 상처를 낸다. 하지만 월요일 아침, 투표가 끝나면 깔끔한 결과만 남을 것이다. O냐 X냐, 보너스냐 복직이냐. 

동료들이 자신의 입장을 해명할 때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내가 결정한 게 아냐.” 맞다. 산드라와 1000유로를 저울에 올린 건 사장이다. 그게효율적이니까. 피할 수 없는 선택 앞에서 더 중요한 질문은 잊힌다. ‘이 투표, 이 양자택일은 옳은가?’ “아팠으니까 예전만 못 할 거”라는 사장의 말에는, ‘효율 내기 위한 수단’으로 직원을 바라보는 회사의 시각이 드러난다. 기업은 최대한의 이윤 추구가 목적이니 그렇다 쳐도, 우리까지 그럴 필요있을까. 진짜 불행은 스스로 효율성의 원칙을 내면화하면서부터 시작된다.알바든 인턴이든 일을 하다 보면 내가 밥값은 제대로 하고 있나 불안할 때가 있다. 자연스레 나와 옆자리 동료의 가성비를 비교하고, 그것으로 그 사람 자체를 평가한다. 같은 카페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생이 일 배우는 속도가 더딜 때, 속으로 ‘민폐’라고 생각했던 적 없나? 그게 불행의 시작인 줄모르고. 옆 사람의 등을 떠밀고 얻어낸 ‘효율’이란 단어가 언제 내 등을 겨냥할지 모른다. 

이 집 저 집을 다니다 벤치에 앉아 잠시 쉬던 산드라는 말한다. “저게 나라면 좋겠어. 노래하는 저 새.” 자기 노래에 값을 매기지 않는 새들의 삶은 비효율적일지언정, 아름답다. 아이돌 멤버의 환한 미소 뒤에 숨어 있는 자본주의는, 아름다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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