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트 크롤러, 댄 길로이, 2014
SNS를 잘 하지 않던 친구가 페이스북에 글을 올린다. “오늘 낮에 OO기업 최종합격 통보를 받았습니다. 그동안 징징대는 거 받아주신 분들 고맙고 연수 들어가기 전에 내가 꼭 밥 살 테니까….” 같이 올라온 사진은 ‘최종합격’이란 말과 회사 이름이 함께 보이는 캡처 이미지.
갑자기 소화가 잘 안 되는 것 같다. 하지만 좋지만은 않은 마음을 감추기 위해 ‘좋아요’도 누르고, 감탄사와 느낌표를 남발해가며 댓글을 단다. “우와, 대박!!!! 진짜 축하해. 넌 될 줄 알았어!!!!” 그러곤 드러누워 자책을 시작한다. ‘이제 동기들 중에 나만 남은 건가? 아, 명균이가 있구나. 이번에도 다 떨어졌댔지…. 그나마 다행이다. 뭐야, 나 쓰레긴가?’
기어이 취시오패스(취업준비생+소시오패스)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취업준비생이 취업한 친구를 보며 배 아픈 정도야 자연스러운 일일 텐데.
나만 해도 취업한 애들 꼴 보기 싫어서 타임라인에서 죄다 빼버렸던 기억이 난다. 무의식적으로 친구의 업무 환경이 나쁘기를, 못된 상사 만나기를, 그래서 얼마 못 견디고 퇴사하기를 바랐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때의 내가 ‘소시오패스’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땐 불행이 좀 필요했다.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의 불행. 그래야 나를 미워하지 않고 버틸 수 있었다. 그 후론 더 이상 ‘남의 불행이 곧 내 행복’이란 우스갯소리가 우습게 들리지 않는다.
남의 불행을 자양분 삼아 살아간다는 점에서 <나이트 크롤러>의 루 블룸(제이크 질렌할)도 일종의 ‘취시오패스’다. 반(半) 백수처럼 살아가던 루가 새롭게 찾은 일은 사고 현장 촬영. 경찰의 무전을 도청해 현장으로 제일 먼저 달려가면, 생생한 영상을 방송국에 팔 수 있다. 현장이 참혹할수록 가격이 뛴다. 방송국 보도국장 니나(르네 루소)는 점점 더 자극적인 영상을 요구하며 루를 이용한다. 종일 차 안에서 누군가의 불행을 기다리고, 그 불행을 카메라에 담아 팔아먹는 일에 중독된 루는 결국 폭주한다.
니나가 루에게 준 미션은 하나였다. 최대한 자극적인 영상을 찍을 것. 보도 윤리나 공동체 구성원으로서의 책임감 같은 건 요구 받지 않았다. 그는 니나의 신뢰를 잃을까봐 두려웠고, 그저 미션을 완수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미친놈이네’라고 손가락질하면 그만인 걸까.
한국 사회에서 졸업을 앞둔 20대에게 주어지는 미션도 딱 하나다. 반드시 취업에 성공할 것. “친구를 소중히 여길 것”, “나를 사랑할 것” 등은 보너스 게임에 불과하다. 메인 미션도 통과하지 못했는데 보너스 게임 따위에 눈 돌릴 여유는 없다.
다만 미션을 완수하지 못하고 취준생으로 남아있는 나를 너무 미워하게 될까봐, 그게 두려웠다. 그래서 취업한 친구를, 정확히 말하면 친구의 취업을 미워했다. 취시오패스도 뭣도 아니다. 단지 두려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