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개울음뱅이 Jan 11. 2019

친구가 인맥으로 대체되는 불행

소셜 네트워크, 데이빗 핀처. 2010

성공한 사람의 85%가 자신의 성공 요인으로 ‘OO’을 꼽았다. OO에 들어갈 말은 무엇일까. 재능? 노력? 재산? 자존감? 답은 ‘인맥’이다. 그러다 보니 『인맥 관리의 기술』·『인맥으로 승부하라』 같은 제목의 책이 꾸준히 출판되고, ‘대학생 인맥 관리 10계명’ 같은 글이 인터넷에 떠돌아다닌다. 인맥이 중요하긴 중요한가 보다. 

하지만 거꾸로 누가 나를 ‘인맥’이라고 여긴다면 썩 기분이 좋을 것 같지는 않다. 특히 내가 ‘친구’라고 생각했던 사람이라면 더더욱. 왠지 모를 배신감까지 밀려온다. 오버라고? 아니, 당신도 친구들에게 이렇게 말할 때 아마 나와 비슷한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넌 꼭 필요할 때만 연락하더라.” 취재원을 구하기 위해 지인들에게 쭈뼛쭈뼛 연락을 돌리면서 나 역시 저 말을 들을까봐 얼마나 노심초사했던가. 

인맥을 간략히 정의하자면 ‘필요할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인간관계’다. 그러니 언제든 연락해 도움을 청할 수 있도록 ‘관리’가 필요하고, 쌓아뒀던 인맥으로 결정적인 순간에 ‘승부’를 걸고, 그 승부들이 쌓여 ‘성공’까지 할 수 있는 것이다. 

친구는 인맥과 다르다. ‘친구 관리의 기술’, ‘친구로 승부하라’ 같은 제목의 책은 지금껏 본 적이 없다. 친구 덕분에 성공할 수야 있겠지만, 성공하기 위해 사귄 사람을 ‘친구’라고 부르기는 민망하다. 친구를 굳이 정의 내리자면 ‘딱히 도움 받을 일이 없어도 꼭 필요한 인간관계’다. 정의가 분명 다름에도 우리는 자주 인맥과 친구를 혼동한다. 클릭 한 번으로 ‘친구’를 요청하고 수락하면서 조금씩 헷갈리기 시작한 것 아닐까. 

<소셜 네트워크>는 페이스북 창립자 마크 주커버그(제시 아이젠버그)를 모델로 만들어졌다. 실제 인물을 영화로 각색하는 과정에서 부각되는 건, 세상을 바꾼 CEO 주커버그가 아니라 ‘친구’가 ‘인맥’으로 대체되는 과정에서 갈등을 겪는 20대 중반의 사회 초년생 마크다. 동업자 숀 파커(저스틴 팀버레이크)를 만난 후로 페이스북 이용자 수는 점점 더 늘어나지만 친구들은 멀어진다. 심지어 페이스북을 처음 만들 당시 공동 창업자로 이름을 올렸던 친구 왈도(앤드류 가필드)와는 소송까지 하게 된다. 

인맥과 달리 친구 사이에서는 마음만 먹으면 상처를 주기도 쉽다. 상대방이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어떤 상황에서 심리적인 타격을 입는지, 말하자면 서로의 ‘역린’을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니가 뒤처지게 될까봐 걱정된다”는 마크의 말이나, 회사 운영자금으로 쓰이던 계좌를 막아버린 왈도의 행동 이후로 둘의 관계는 돌이킬 수 없게 되었다. 

누군가와 친구가 되는 일은 인맥 쌓기보다 훨씬 어렵다. 관리의 기술이 아니라, 마음을 헤아리는 배려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갈수록 시간도 없고 해야 할 일도 많아지면서, 만만한 친구는 자꾸 후순위로 밀린다. 대단한 성공을 꿈꾸는 것도 아닌데. 뒤늦게 F5 버튼을 아무리 눌러봐야 ‘새로 고침’이 안 된다는 것도 아는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